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16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뉴욕의 온갖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견학을 하는 수업이 있었다. 이름도 멋진 ‘아트 인 뉴욕(Art in New York, 뉴욕의 예술)’.
MoMA(Museum of Modern Art), 일명 모마, 혹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같은 전 세계적인 전시회뿐 아니라 유대인 박물관, 쿠퍼 휴잇 박물관(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등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전시회를 돌아다니는 알찬 수업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출석했던 나는 약간 실망을 했다. 서른 명 넘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수업 시간 내내 끊임없이 쉬지 않고 말씀을 하시는 교수님의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분이 얼마나 아는 것이 많고 박학다식한 분인지는 가늠할 수 조차 없었지만, 코딱지만큼 보이는 교수님의 대머리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잘 들리지도 않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두 시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가히 고역이었다.
나는 하고 싶던 것도 하라고 하면 하기 싫고, 억지로 하게 만들면 지구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라도 안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다.
게다가 나는 전시회를 물 흐르듯이 돌아다니며 보는 스타일이다. 작가가 누군지, 제목이 뭔지, 어떤 재료로 그렸는지를 위주로 보는데 그것도 눈길이 가는 작품만 자세히 본다. 유명한 작품이든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든 내 마음에 들면 사진을 찍고(전시관이 허락한다면. 아주아주 가끔은 허락하지 않아도 몰래 찍고 직원이 다가오면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눈에 담았다가 보내주는 느낌으로 작품들을 관람한다. 물론 고흐나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등과 같이 내가 좋아하고 굉장히 궁금해하는 화가나 예술가의 개인전에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듣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그저 물은 물이로다 이것은 예술이구나 자세를 고집한다.
이 수업은 내가 지향하는 모든 전시회 관람법에 역행한다. 교수님은 그림 한 점 한 점 모든 역사와 배경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는데, 이야기가 논외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흠칫할 정도로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시며 괴기스럽게 웃기도 하셔서 내 집중력은 5분도 안돼 뭉게뭉게 공기 중에 산화되었다.
혼자 무리를 빠져나와 미술관의 맨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휘적휘적거리며 작품을 대충대충 봤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사진도 찍고 가만히 앉아서 감상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것도 수업이라 생각하니 이내 지겹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먼 길을 오느라 정신도 없고 피곤에 절어있다.
다음에 다시 올 망정 오늘은 그냥 놀다가 교수님 몰래 빠져나가야겠다는(!) 계략이 스멀스멀 나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기회만 엿보던 찰나에 단발머리에 스모키 화장을 한 한국인 같지 않고, 미국인 같지도 않은 동양인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Are you taking Art in New York class?”
(너 아트 인 뉴욕 수업 듣니?)
그녀의 이름은 앨리스.
본인 또한 강의가 지루해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하는 중이란다. 우린 그렇게 가는 전시관마다 카페테리아를 점령하고 느긋이 브런치를 즐기며 온 전시관을 활보하시는 교수님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며 조용히 땡땡이치는 반항아들이 되었다.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지만 의미만큼은 똑 부러지게 전달하는 앨리스는 기구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부모님은 앨리스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에 이민을 오셨고 오빠도 미국인 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부모님이 잠시 한국에 가게 되었을 때 앨리스를 한국에서 낳게 되어 앨리스만 한국인 국적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대학 갈 때 미국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거부당해 그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걸 딸내미 대학 갈 때까지 안 알려주신 부모님도 신기하고, 그걸 알고서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 친구도 신기하다. 아무튼 그 친구는 LA에서 패션스쿨을 다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학교를 그만두고 1년 정도 일을 해서 돈을 모아 뉴욕 패션스쿨 1년 과정을 지원했단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딱 봐도 생활력은 나보다 훨씬 강한 친구 같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어른스럽고 성숙해 우린 그렇게 친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가족들은 모두 미국에 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에 혼자서 가야 한다는 현실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가혹한 일이다. 어떻게든 미국 시민이 되고 싶었던 앨리스는 미국 남자랑 결혼해서 시민권을 따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앨리스는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목록으로 적고 매일같이 기도를 했는데 그 목록의 1위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 했다. 나는 앨리스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길 바랐다.
94년생의 앨리스는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93년생의 조나단이라는 남자를 만나 5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조나단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앨리스가 첫 여자 친구였고 그 또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조나단은 나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꽤 있는데 정말 진국이다. 교수를 하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원에 재학 중인 수재에다 부자 부모님을 두었지만 학업 외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 생활력이 대단하다. 늘 손수 재료를 사서 긴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조근조근하게 말하며 단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생활력이 강하고 똑똑한 둘은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렸고, 어린 나이에 너무 급하게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주변의 염려가 무색하게 3년이 지난 지금도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
혼인신고를 해서 더 이상 한국에 돌아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앨리스에게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똑순이 앨리스는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구했고, 일을 마치면 학교로 웨딩드레스를 만들러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청첩장이 왔다. 스탠퍼드 대학교 내에 있는 작은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최대한 가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앨리스에게 전화가 왔다.
“최대한 가보겠다는 게 무슨 뜻이야?”
“응? 내가 그 날 출장이 있을 수도 있어서 말이야.”
“그럼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알려줄 수 있어? 결혼식을 준비할 때 참석자 표시가 많이 중요하거든.”
한국은 30분에 한 번씩 결혼식을 찍어내는 결혼식 공장이 있는 반면, 미국의 공장은 오전반 오후반 하루 최대 2회 운영한다. 결혼식엔 돈봉투로 합리적인 축하를 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선물, 돈, 기타 등등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가져간다. 혹시 가져가는 선물이 겹칠까 봐 선물 리스트를 신부가 하객에게 보내주고 각자 겹치지 않도록 기입해서 신부에게 전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선물은 결혼식 당일에도 전달할 수 있지만,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
웨딩 샤워라고도 해요.) 결혼식 전 신부 측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여했을 때 전달해도 된다. 보통 선물과 함께 카드에 이름을 적어서 선물을 놓는 공간에 다 같이 올려두고, 행사(?) 중간에 함께 열어보며 신부가 고마워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이는 아이를 가진 것을 축하하는 베이비 샤워에도 동일하다.
나는 지금 한국의 결혼식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미국은 결혼식을 신부의 날이라고 여겨 비용을 신부 측에서 부담하는 대신 모든 결정을 신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브라이드 메이드(bridemaids) 그룸스 멘(groomsmen)은 신부와 신랑 측의 친구들이 짝을 맞춰 그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신부 측에서 정해준 옷을 입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다. 보통 신부 측 신랑 측이 각각 5-10명 정도가 주인공 곁에서 사진도 찍고 하루 종일 함께 붙어있는데 신랑 측의 그룸스 맨 중 한 명이 사회를 보며 1인 2역을 하기도 한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신랑 신부의 소중한 측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주고 결혼식에서 부각된다는 측면에서 괜찮은 문화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신부가 돋보여야 하는 날이라 브라이드 메이드들은 모두 신부가 골라주는 안 예쁜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이 이유로 아마도 평생 브라이드 메이드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또한 그들은 결혼식 직전에 배출러 파티와 배출라렛 파티를 하기도 하는데, 유부남 유부녀가 되기 전 마지막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는 의미로 친구들과 함께 스트리퍼가 나오는 클럽에 가기도 하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유흥을 즐긴다. (서로의 애인이 결혼식 직전에 그렇게 유흥을 즐기는 것이 꽤나 싫을 법도 한데 서로 눈감아주는 것을 보면 나는 도저히 아직도 이 쿨내가 풀풀 나는 문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앨리스의 브라이덜 샤워는 뉴저지에서 열렸는데, 내가 사는 맨해튼에서 1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다행히 기차역에서 많이 멀지는 않았지만 내리쬐는 태양볕과 찌는 듯한 더위에 가는 길이 고역이었다.
알뜰한 부부답게 식당을 빌리지 않고 본인의 친구가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다 좋았지만 선풍기조차 없는 데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뙤약볕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는데 바비큐를 구워서 연기까지 풀풀 나 내가 지금 지옥훈련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도 축하를 마치고 사진까지 찍고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다급히 만들어 낸 할 일 일수도 있다.) 가봐야겠다고 인사를 전한 뒤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는 브라이덜 샤워가 고행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청첩장에 따르면 그녀의 결혼식은 심지어 두 배가 넘는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뉴저지 중에서도 스탠퍼드 대학이 있는 곳인데 기차를 타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는데 차로도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결혼식에 참여하고 싶긴 한데 거리가 너무 부담이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잔뜩 예민해진 신부는 짜증을 냈다. 다들 먼 거리에 놀라 혹시 쉬운 교통편이 있는지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앨리스 친구들은 카풀을 구하기 위해 난리가 났다. 나는 한 발 늦어 함께 타고 갈 차를 구하지 못했다. 민익씨는 차가 있지만, 그와 함께 결혼식을 가자고 하기가 꺼려졌다. 왠지 그가 부담을 느낄 것 같기도 하고, 나 또한 그가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그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며 앨리스의 짜증이 극강에 달해 우리의 우정을 위협하던 순간에 민익씨에게 나의 상황과 곤란함을 털어놓았다.
“뭐? 정말 그래 줄 수 있어?”
“응.”
이렇게 쉬운 것을.
이 남자는 항상 나를 허탈하긴 한데 고맙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담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