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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Jul 25. 2019

앨리스의 결혼식 여행기-하편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17


앨리스의 결혼식장이 많이 멀어 가겠다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혜성처럼 등장한 초보운전 민익로봇이 흔쾌히 태워주겠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민익씨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뒤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그러면 자기도 결혼식에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그를 결혼식에 데려가는 게 부담스럽고, 그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불편하지 않겠어? 굳이 같이 참석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들러서 한두 시간 정도만 있다가, 선물만 금방 전해주고 인사하고 나올 테니 그동안만 밖에서 기다려줘.”


“그래. 그럼 되겠다.”


‘앨리스의 결혼식에 함께 참여할 것인가’를 주제로 벌어진 토의를 간단히 마무리한 후 당당히 예비신부 앨리스에게 연락을 했다.


“나 결혼식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남자 친구가 데려다 주기로 했어.”


“그래. 그럼 너 남자 친구도 같이 오는 거야?”


“아, 그건 아니고 남자 친구는 밖에서 기다릴 거야.”


“뭐????”


앨리스가 황당해하며 말한다.


“제니! 미국 결혼식은 진짜 오랫동안 해. 5-6시간은 될 텐데 남자 친구가 널 언제까지 밖에서 기다리게 만들려고 그래?”


차마 한두 시간 안에 집에 가기로 했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 그럼 남자 친구한테 한 번 물어보고 같이 갈지 결정해서 다시 알려줄게!!”


긴급히 같은 주제로 토의가 다시 열렸다.


“어떡하지? 앨리스가 결혼식이 엄청 길거래!!”


난 그때까지 미국에서 친구의 결혼식에 정식으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을 테니 커플이 하는 행사를 지켜보고 인사하고 축하하고 선물을 건네면 내 할 도리는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많고 북적일 테니 어느 정도 자리를 지키면, 떠나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 손수 이름표도 놓아주고, 음식도 나오고, 춤도 추고, 축사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액티비티(?)로 구성한 앨리스의 결혼식은 내둥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냥 같이 갈래?”


“그래.”


1초 만에 싱겁게 두 번째 토의가 끝났다.


앨리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남자 친구도 간대!”


“아.... 그럼 식사를 추가로 예약해야 하는데 내가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혹시 앨리스가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민익씨는 꼼짝없이 6시간 동안 차에서 마냥 나만 기다려야 하나 걱정이 된다.


“추가로 예약했어. 네가 처음에 남자 친구 안 데려온다고 해서 남자 친구 자리가 없었거든.”


“고마워. ㅠㅠ”


앨리스와 이렇게 자주, 많이, 같은 주제로 이야기가 오간 적은 처음이다. 사실 모든 친구들을 통틀어서 처음이다. 결혼식 준비하다 신부가 울면서 패닉에 빠지는 장면을 시트콤에서 많이 봤는데, 이제 이해가 간다. 내가 그녀의 패닉에 숟가락을 얹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기나긴 토론과 조정, 협상을 통해 드디어 앨리스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 우리 커플에게 이번엔 새로운 걱정이 몰려온다.


당시 민익씨는 차를 산지 2주 정도 되었고, 장거리 운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부디 살아서 결혼식장에 도착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결전의 날이 왔다.


빈 둥 빈 둥.


차가 있으니 좀 더 짧은 시간에 갈 수 있을 거란 초보운전이 갖기에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우리는 온 일요일 아침을 빈둥거렸다.


나는 앨리스 결혼식에 가기 위해 ASOS라는 브랜드에서 드레스를 샀다. 마치 발레리나가 입을 것 같은 튜튜 소재인데, 가슴께에서 시작해 무릎 정도로 갈수록 A라인으로 퍼지는 드레스다. 장미꽃잎을 말린 마브(mauve) 색이다. 결혼식에서 너무 튀지 않는 컬러고 실루엣인 데다, 어깨에 가느다란 끈이 꼭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달려있어 더욱 예쁘다. (반쯤 끊어진 채로 왔다.ㅠㅠ)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느낌의 투투 드레스. 정말 예뻤는데ㅜㅜ


색깔, 실루엣, 분위기, 길이 등이 모두 내 마음에 쏙 든다. 중요한 날마다 입어야겠다고 주문하고 아껴둔 옷이라 결혼식 당일까지 입어보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한참 빈둥대다 느지막이 부랴부랴 화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어여쁜 말린 장미꽃색 드레스를 입었다.


이런.


등에 있는 지퍼가 허리께에서 멈춰 더 이상 위로 안 올라간다.


55 사이즈를 시켰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나 원래 입는 사이즈인데. 연애가 만족스러우면 살이 찐다는데 내가 요즘 민익씨를 너무 좋아하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부터 단식투쟁이라도 할 걸. 아님 미리 입어보기라도 할 걸. 슬픔의 불꽃이 솟구친다.


슬픔의 불꽃은 민익씨에게로 튀었다.



“자기야!! 일로와 봐! 큰일 났어!!”


“무슨 일이야?!”


다른 방에서 준비하던 민익씨가 깜짝 놀라 뛰어온다.


“이것 좀 올려봐... ㅠㅠ”


만능 로봇 민익씨이지만 물리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아무리 지퍼에 힘을 줘 올려봐도 내 허리 근처에서 꼼짝도 안 한다. 숨을 최대한 들이마셔 보고, 엎드려도 보고 별 짓을 다했지만 지퍼는 올라갈 생각을 안 한다. 이러다 옷이 망가져서 환불이나 교환도 못 받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관두기로 했다.


“아, 어떡하지?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입을 옷이 없어... ㅠㅠ”


“그냥 아까 입은 옷 입으면 안 돼?”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저렴하게 득템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중국 사이트 ‘알리 익스프레스’라는 곳에서 8불 주고(한국 돈으로는 만원 정도예요.) 샀던 원피스다. 원래 한쪽 어깨 부분이 직삼각형 모양으로 가려져 민소매 형태로 된 원숄더 원피스였는데, 그 면적이 꽤 넓어 원시인 같아 보였다. 원숄더 부분을 잘라내고 몸통을 잡아주는 둘레에 밴드를 달아 오프숄더 원피스로 리폼을 했다. 하늘색 스트라이프에 잔꽃무늬가 있고, 가슴이 덮이는 러플이 달린 예쁜 드레스지만 결혼식에 가기엔 캐주얼하다. 그렇다고 드레스의 지퍼를 훌러덩 내린 채로 갈 수도 없다.


슬픔의 활화산이 터지는 중에 그냥 입던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지퍼가 없으니 뒤집어써서 입든 밑에서 올려 입 든 입어진다. 지퍼 대신 고무줄이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민익씨는 슈트를 차려입었다.

매번 후드 집업에 티셔츠, 통이 넓은 청바지만 입는 그가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정장을 입으니 조금 달라 보인다. 그런데 그의 슈트가 좀 크다. 아버지나 형제의 것을 물려받았나 싶을 정도다. 상처 받을까 봐 크다고 말은 안 하고, 그저 언제 어떻게 산거냐 물으니 백화점에 가서 바로 보이는 슈트 매장의 매점 직원이 그에게 추천해준 대로 샀단다. 좀 더 몸에 착 붙는 슈트를 입으면 너무 섹시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을 남들이 보면 좋을 것도 없으니까 교환하러 가자는 말은 안 했다. (^^;;;)



그렇게 우린 결혼식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고, 역시나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장거리 운전을 처음 해 본 민익씨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가지 않고 새로운 경로를 무수히 재창조했고, 조수석 초보인 나 또한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했대.’라는 말만 가끔 반복했다. 마치 정처 없이 떠나는 묻지 마 여행에 합류한 것 같다.


오랜 시간 네비, 그리고 고속도로와의 사투(?) 끝에 다행히도 무사히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프린스턴 대학교는 미국의 학교답게 커다란 땅덩이에 작은 건물들이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들이었는데 학교 내에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학교 밖에 동전을 넣는 주차 머신 앞에 세워둬야 했다. 시간당 돈을 내야 해서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5불 정도를 동전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해 넣어두었다.


주차장에서 결혼식장을 찾아가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부디 앨리스가 이 좋은 날에 우리에게 화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우리는 그렇게 계속 내비게이션을 켜 둔 채 걸어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주홍빛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정은 너무나 평화롭고, 흐드러지게 아름다웠다. 드디어 도착한 조그만 결혼식장도 작은 성처럼 예뻤다.


3시간이나 결혼식에 늦은 우리를 보고 통창 문 앞에 앉아있는 앨리스와 조나단 커플이 다행히도 웃는다. 평소 내가 잘 늦는 것을 알고 있던 앨리스이긴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나 보다. 그래도 웃어줘서 다행이다.


우리의 이름이 적혀있는 테이블에 도착하니 우리 학교를 나온 친구들끼리 모아놨는데, 한국인 친구 두 명은 이미 가고 없다.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어!’

잠시 합리화를 해 본다.  


우리가 앉은자리의 테이블 위에는 ‘Dominic’, ‘Jenny’라고 적혀있는 작은 상자가 있다. 열어보니 앨리스와 조나단이라고 쓰여 있는 은색 팔찌가 나왔다. 귀엽고 앙증맞은 커플이다.


역시 축하는 현금이지.

선물을 놔두는 곳에 당당히 한국의 멋, 돈봉투를 놓았다. 한국식 축하를 앨리스가 이해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캐시는 만국 공통이 아닐까. 나름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직장도 다니기에 100불을 축하 카드와 함께 넣었다.


‘커플의 시작부터 결혼까지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에 더욱 기뻐. 행복하게 잘 살고, 초대해줘서 고마워!’


미국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어, 웬만한 사람들은 카드를 받으면 굉장히 고마워한다. 앨리스는 결혼식에 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는 카드를 손수 적어 보냈다.(미국의 예신은 정말 힘든 직업인 것 같다.)


카드를 놓고 오니 바로 식사가 나왔다.


나는 소고기 스테이크, 민익씨는 치킨 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는 닭요리를 좋아한다. 늘 먹는 메뉴만 먹는 그가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차피 맨날 똑같은 거 시킬 거면서 메뉴판은 왜 보는 거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새로운 걸 시키고 싶을지도 모르니까!’라고 대답하면서 같은 걸 주문한다.


식사를 하니 어둑어둑 해지고 애프터 파티를 하는 시간이 왔다. 우린 밥시간에 맞춰서 갔고, 밥 먹는 시간이 끝나면 각자 춤도 추고 즐기는 파티 타임이 되는 것이다. 갑자기 어두워지니 집에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다.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장장 6시간이 넘는 미국의 결혼식을 한국식으로 참석한 느낌이다. (앨리스 미안....)


집에 가는 길은 어둡긴 했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어 비교적 마음이 느긋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날과 나를 위해 6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운전에 처음 도전해 준 민익로봇에게 고맙다.



“자기 오늘 너무 고마워. 이따가 내가 완전 열심히 마사지해줄게.”


퀭한 눈의 민익씨가 미소로 답한다.




마사지고 뭐고 도착하자마자 둘 다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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