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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Oct 15. 2019

아기 단계 도민익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25


평소 민익씨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있다.


하도 좋아하길래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민익씨가 그의 영상을 볼 때 옆에서 함께 봤다.


생각해보니 사귀기 전부터 민익씨는 종종 자기가 보는 ‘유튜버들의 분쟁 상황’을 내게 설명해줬었다. 나에게는 워낙 관심 밖의 이야기라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당시 이야기들을 종합해 추정을 해 보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매덕스라는 유튜버가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방송을 한 잔뼈가 굵은 유튜버다. 매덕스는 어떤 계기로 딕이라는 친구와 함께 방송을 한다. 매덕스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 딕은 그와 방송을 할 때 불편함을 느꼈다. 딕은 결국 그와 함께 방송하는 것을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매덕스의 흉을 보았다. 소식을 들은 매덕스는 화가 나서 딕과 함께 자신을 욕한 사람들을 모두 법원에 거액으로 고소를 했다. 모든 일은 무혐의로 판명 났지만 변호사를 선임해 항변하는 상황에서 몇몇은 경제적 위기에 처했다.


민익씨가 좋아하는 유튜버는 그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개그맨이다. 이름은 코코노우즈란다. 마치 ‘코는 영어로 노우즈’라고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개그용 이름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 본명이란다. 왠지 재미있는 사람일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어깨너머로 본 바로는 그의 개그는 하나도 웃기지가 않다. 그와 함께 개그를 하는 듀오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멍키 존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더욱 안 웃기다.


‘내가 미국식 개그를 못 알아듣는 건가?’


다시 자세히 잘 들어보았다. 대체 뭐가 웃긴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민익씨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과 민익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 좋아하는 개그 코드가 나와 맞지 않는다니 큰일이다. 나는 개그 코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애를 할 때 같은 일을 보고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여태까지는 민익씨의 개그가 나에게 잘 먹힌다. 그는 말이 많지 않지만 한 번 입을 열면 나를 빵빵 터지게 한다. 갑작스러운 지금까지 생각해 온 개그 코드의 오류에 혼란이 온다. 다행스럽게도 그 영상을 보면서는 민익씨도 웃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꿋꿋이 보고 있는 것을 보니 다시금 혼란스럽다.


“이게 재밌어?”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응.”


등골이 오싹하다.


민익씨는 웬만하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비평을 안 한다. 나는 좋아하는 티비쇼를 그와 함께 보고 있으면 대체로 저 세상 평론가가 된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열심히 분석하고, 이 사람을 저럴 것이네, 아이고 그랬으면 안 됐는데, 이렇게 했으면 더 좋을 텐데, 쟤는 저기서 왜 저러나. 거의 등장인물 수준으로 감정이입을 한다. 박막례 할머님 하고 이야기가 잘 통할지도 모른다. 민익씨는 내가 하는 말에 ‘그런가?’ 정도로 대꾸를 할 뿐 먼저 무엇을 가타부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성격들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도 재밌지 않고 불쾌한 개그를 하는 개그맨들을 좋아하는 것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래?”


예상한 반응이다. 이 남자 성격은 한식으로 치자면,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육수 없이 무만 넣고 끓인 무 국 같고, 서양식으로 치자면 무염으로 가공한 땅콩버터 같다. 나름 건강한데 뭔가 밍밍한 맛이다.


불길한 느낌이 엄습한다.


그가 좋아하는 다른 유튜버들도 확인해보기로 한다. 딕이라는 작자의 유튜브 영상도 봐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다. 이 사람이 웃기면 그래도 인정이다.


행운은 오지 않았다. 딕의 방송을 보니 더욱 불쾌해진다. 그는 소리만 빽빽 지르고 무슨 일에든 화를 버럭버럭 내는 방송을 한다. 어디까지나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지만, 혹시 이 남자가 겉으로는 온화한데 화가 많은 남자일까?


연애를 할 때 영혼까지 끌어모아 상대방을 분석하는 버릇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함부로 사랑했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발동되는 보호기제다. 나에게 누군가를 아무 생각 없이 열렬히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화면 오른편 아래쪽에는 그의 심장박동수도 나온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데 가관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는 화를 내는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의 장르가 있는데 ‘트롤’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민익씨가 좋아하는 유튜버 두 명을 동시에 비난했다. 그 날 이후 그는 내가 없을 때만 그들의 영상을 보거나, 내가 나타나면 보고 있던 그들의 영상을 끄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야. 왜 숨어서 봐?”


내가 생각해도 어쩌라는 건지 이해가 힘든 여자 친구다. 미안하긴 한데, 웃기지도 않고 정신건강에 좋지도 않아 보이는 방송을 보는 남자 친구가 걱정스럽다. 아무리 그래도 숨어서 보다니 세상에...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희한한 감정이 든다.


어느 날 그가 상기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코코노우즈가 맨해튼에 온대!”


“그래? 무슨 일로?”


“미국 순회 콘서트 같은 것을 한대.”


“우리도 보러 갈까?”


“응? 자기 그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잖아. 가보자.”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해 보자. 그가 내게 하는 것처럼.


토요일 저녁 8시 공연이라고 한다. 민익씨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1월 말이라 공기가 차다. 나는 그래도 공연인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겠지 싶어서, 한쪽 어깨가 드러난 빨간 드레스에 메이크업도 하고 꼭 맞는 패딩을 입었다.


“아니, 왜 이렇게 하고 나왔어?”


그가 놀란다.


“그래도 공연이잖아. 내 공연 방문용 의상이야.”


그가 민망한 듯 웃는다. 웃음의 의미를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코코노우즈 일행은 놀랍게도 한인 타운에 있는 고층 빌딩에 장소를 대관했다. 코리안 타운의 카레 전문점에서 카레를 먹기로 한다.


카레집에서는 매운맛의 단계를 선택할 수 있다. 1단계는 아기 단계, 2단계는 신라면 단계, 그 이후는 내 선택권 밖이라 기억이 안 난다. 그에게 신라면 단계는 어렵다고 생각해 아기 단계를 권했다.


“베이비 레벨??? 아기들을 위한 메뉴를 먹으라니! 절대 안 먹어!!!”


아기라는 단어에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안 매운 것은 안 먹겠다고 투정 부리는 모습이 아기 같다. 그는 끝끝내 신라면 단계를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나는 아기 단계를 골랐다. 예전에는 아기 단계가 아니고 백인들을 위한 레벨이란 뜻으로 화이트 레벨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인종 차별 문제가 제기되어 아기 단계로 바뀌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스프라이트를 연달아 마시면서도 하나도 안 맵다고 한다.


“그렇구나. 대단하네. 나는 아기 단계도 조금 매운데.”


오늘은 너의 날이란다.

아가의 기를 한껏 살려주기로 한다.


근처에 있는 한국에서 건너온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서 따뜻한 레몬티를 마신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급히 서둘러 올라간다.


민익씨가 웃은 의미가 이제 이해가 간다.

작은 교실 같은 규모의 방에 아주 작은 무대가 앞에 있다. 온 사람들은 20명 남짓이다. 내가 상상한 코미디쇼와 다르다. 게다가 관중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심상치 않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하늘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남자, 머리를 파랗게 물들이고 만화 등장인물처럼 꾸민 여자, 게임에 나올 법한 캐릭터 분장을 하고 등장한 남자들 등등.


느낌이 온다. 이곳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민익씨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오픈 마인드라고 자부해 온 내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코코노우즈가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면 다들 깔깔거리고 웃는다. 나에게만 재미가 없는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마치 중학생 무리에 혼자 섞여있는 보호자의 느낌이다. 게다가 멍키 존스는 기숙사에 살면서 등록금을 내지 않으려면 룸메이트가 자살을 하면 된다는 해괴망측한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에는 그들도 많이 웃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현기증이 난다.

나와 맞지 않는 공간에 왔다. 나가고 싶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레모네이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밖으로 나간다. 하는 일 없이 화장실에 오래 머물러 있는다. 아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코코노우즈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가 그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줄 알고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홀린 듯이 유유히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친구들에게 구원 요청을 했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 들이다.


‘여기 너무 이상한 것 같아.. 어떡해...’


‘그 정도예요? 민익씨만 두고 빨리 나와요 언니.’


친구가 해결책을 준다.


나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있기로 하다 민익씨의 관람에 방해가 될까 싶어 공연이 끝나갈 때쯤 들어간다.


“괜찮아?”


오랜만에 들어오니 민익씨가 묻는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다.


코코노우즈는 세상에서 제일 매운 사탕을 먹으며 몸개그를 하고 있었고, 그 후 전기 충격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를 차고 청중들에게 눌러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줬다. 민익씨도 당연히 그 무리에 줄을 섰다.


더 이상은 놀랄 힘도 없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향연이다.


코코노우즈는 민익씨의 차례가 되자 사탕이 너무 맵다며 무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아기는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조금 실망한 눈치지만, 좋아하던 유튜버를 만났다는 사실에 그저 신나 보인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전기충격에 관한 이야기는 유튜브에 관련 영상이 있다고 한다. 공연의 마지막에 그들은 다같이 바에서 모여 뒤풀이를 한다는 공지를 한다.


민익씨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다.


“자기야, 나는 여기랑 안 맞는 거 같아. 자기 혼자 뒤풀이 가. 난 먼저 집으로 갈게.”


“아냐. 자기가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 나는 도저히 어울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 재밌게 놀고 와.”


아기는 끝까지 내가 안 가면 본인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안내했던 바에 함께 가 보기로 했다.


눈에 익은 몇몇의 사람들이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회식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무리는 뿔뿔이 흩어진다.


‘뭐지. 이들만의 독특한 정모 방식 인가.’


점점 더 괴리감이 커지던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 남자는 정상일까. 사회의 소수자로 마음에 분노가 가득한 사람인가? 오타쿠 검사를 했을 때는 온건한 정도의 오타쿠 레벨이 나왔다. 내가 오늘 그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 걸까?


온갖 생각이 들던 찰나에 민익씨가 말문을 연다.


“나는 게임처럼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는 학과를 나와서 이런 사람들에 많이 익숙해. 근데 자기한테는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아. 이런 데 데려와서 미안해.”


아가는 내 표정만 보고도 내 기분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아냐. 내가 오자고 했는데, 뭐. 그래도 이해해줘서 고마워. 오늘은 난생처음 경험해 본 일이라 적응하기가 좀 어려웠어.”


내가 알던 그가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푹 묻는다. 내가 아는 좋은 냄새가 난다.


“너무 힘들었어.”


이번엔 내가 투정을 부릴 차례다.


토닥여주는 그의 손을 붙잡고 다정하게 돌아간다.


“집에서 만화 보자. 그리고 오늘 본 유튜버들 방송은 그냥 계속 나 몰래 봐.”


그가 알았다고 웃는다.


훗날 민익씨는 코코노우즈가 영상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구독을 취소했다. 그리고 멍키 존스는 6년 사귄 여자 친구를 두고 그 날 공연에서 내 눈에 띄었던 파란 머리에 만화 캐릭터처럼 분장을 한 여성과 바람이 나서 요즘도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기 말이 맞았어. 그 사람들 이상한 것 같아.”


아가가 드디어 맞장구를 친다.










아가에게.
이 세상에는 온갖 풍파와 고난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래서 조금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게 좋아. 난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느라 인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경향이 있어. 가끔은 지나칠 만큼 예민하게 사람을 분석해서 스스로가 피곤해질 정도야. 그런데도 틀릴 때도 많아서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기도 해. 하지만 이것도 다 직접 겪어봐야 길러지는 거라서, 우리 아가가 언젠가는 스스로 깨우치길 바라. 가끔 헷갈릴 땐 이 누나가 도와줄게!

... 가끔 이런 마음가짐으로 남자 친구를 보살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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