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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Nov 28. 2019

처음으로 악플을 받았다

아니 이 기분은...?!


2018년 2월 19일 브런치에 첫 글을 썼다.


미국에서 지내며 느낀 점들을 소소하게 풀어내며 앞으로 미국에서 지낼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내가 미국인과 연애를 하면서 느낀 문화 차이도 한국 사람의 시선에서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남자의 채널을 비롯한 국제 연애를 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봐 왔고, 연애 이야기를 적은 브런치의 글들을 구독할 때 즈음이었다.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우리 커플을 예쁘게 바라봐주셨다. 나의 거친 미국 생활에 더불어 미국인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험난한 연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항상 응원해주는 분들이나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을 기억하고, 꼭 챙겨보고, 댓글이 달리면 늦게라도 답글을 열심히 달아온 것은 여태까지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는 아이디의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나는 최근 패션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기 전, 내게 ‘혹시 달릴지도 모르는’ 악플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다. 정작 구독자도 없는데 악플부터 고민하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혹시라도 내게 달릴 악플에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공공연하게 나 자신을 공개할 만큼 떳떳한 사람인지, 딱히 크게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지만 서도 내 일생의 일대기가 눈 앞에 펼쳐지며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참고로 내가 본 악플에 대처하는 유튜버들의 유형은 약 네 가지로 나뉜다.


1. 정면돌파 선전포고 형(고소형)


댓글 단 사람의 어떤 부분이 오류가 있는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묻거나, 해당 내용이 선정적이거나 원색적인 비난일 때는 “캡처해두었으니 지속되면 고소하겠습니다.”와 같이 고소형으로 진행이 가능한 대장부 유형


2. 난 몰라 지워버리자 선택적 삭제형


말 그대로 악플은 지우는 유형. 지우다 지우다 통제가 안 되면 1번 유형의 카드를 들기도 한다.


3. 근원을 차단하는 댓글창 없애기 형


지우기도 귀찮기 때문에 악플이 달릴만한 느낌이 들면 답글 다는 창을 아예 닫아버리는 유형


4. 넌 떠들어라 무응답 형


‘악플러에게는 관심을 주면 안 되고 무시가 답이다’라는 어쩌면 가장 맞을지도 모르는 유형


5. 유머로 대응한다 개그맨 형(아직 이 유형은 못 봤지만 나의 워너비 이기 때문에 만들었다.)


재미나게 받아치는 유형!



처음으로 내게 달린 악플을 보는 순간, 저 모든 선택지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되었다.


1번 옵션에 따른 결과물:

제가 정말 자존감이 낮다면 혹시 보태주신 게 있나요? 나는 남자도 아닌데 저 단어 선택은 무엇이며 내 남친은 괜찮다는데, 왜 님이 인신공격이라고 느끼십니까? 과연 님의 자존감은 안녕하신지 모르겠네요~! 재미를 위해서 가끔 과장되게 글을 쓰는 경우가 있어요. 상황의 전후 문맥도 잘 모르시잖아요? 그리고. 몇 살인데 반말이시죠? 이거 캡처했으니 자꾸 이러시면 고소할 거예요! 빽!!!


... 이 옵션을 택하자니 나의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아깝고, (물론 지금 다 사용하긴 했다) 이 분이 짚어주셨듯 자존감 낮아서 나의 에너지를 풀로 가동해 화를 펄펄 내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분이 아마 가장 원하시는 답변이 아닐까. 그래서 1번은 패스.


2번 옵션:

지우자니 악플도 관심인데 조금 아쉽다.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는 건 어떻게 보면 나의 글쓰기에 발전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다소 자학적인 생각이 든다.


3번 옵션:

브런치에는 댓글 차단 기능이 없다. 그리고 유일한 악플 때문에 내 글을 애독해주시는 몇 분들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하트)


4번 옵션:

2번과 같이 대응을 안 하자니 아쉽고, 대응을 하자니 없어 보인다. 그래도 무응답이나 지우는 것이 가장 나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5번 옵션:

와우~ 닉값하시네요~!

혼자 웃기다며 좋아했지만 자칫하면 화난 사람을 더 부추겨 악독한 악플러가 되게 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사람의 기억력은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오래간다 했다. 신기하게도 좋은 댓글들만 봐 왔는데 이 안 좋은 댓글 하나가 한 동안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내 구독자도 아니고,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흘리고 간 말인 데다, 그저 그 사람에게 나의 글이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쁘게 느껴진 것 같다. 필터링이 안 돼서 그렇지 좋게 말하면 “자존감을 키워서 그런 일 정도는 의연하게 대해라.”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어딘가에서 소심한 사람들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나는 생각이 많은데,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글로 접근하는 것을 즐긴다.


그 이유들 중에 하나는 혹여 성급하게 말했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둘째는 너무 논쟁적이거나 말이 많은 사람처럼 비칠까 봐,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나의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심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떠올렸다.

이 사람은 왜 내게 그런 답글을 달았을까 이유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넘길 부분은 그냥 넘겨야겠다.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의 구독 목록을 훑어보니, 글쓰기와 여행에 관심이 많은 20대 혹은 30대 독신주의 싱글남이다. 최근 연애가 잘 안 되었을 수도 있고, 인신공격을 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 고생을 하셨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조금은 여자를 혐오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남자 친구와 비슷한 입맛을 가져서 그를 공격한 것을 본인과 동일시한 것일 수 있다.(가장 유력)


여러 모로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간다.

사실 악플도 관심이다. 어찌 됐든 끝까지 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줬다는 거 아닌가?


그래도 소심한 사람은 비판에 대응하는 것이 서툴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여러 명이지만, 그 악플을 받는 사람은 한 명이라며 서럽게 울던 유튜버 한 명이 떠오른다.


일곱은 내게 관심 없고, 둘은 나를 미워하고, 단 하나만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인간 세상사라 했다.


마음이 즐거운 상태로 즐겁게 글을 쭉쭉 써 내려가면 신기하게 읽는 분들도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지고,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기억을 거슬러 긁적긁적 쓰다 보면 보는 분들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통계로 배우고 있다.


내가 나중에라도 글로 먹고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나에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그래두 부디 이뿌게 봐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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