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꼬질이들 Dec 21. 2019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파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도 같아서


나는 파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리과정에 파를 넣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된 파를 먹는 것을 싫어한다.

입맛에 안 맞고 뭔가 입속에서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요리할 때 파를 유용하게 쓰지만 막상 요리된 파를 입에 넣었을 때 향과 식감이 싫은 것이다.

주문한 해장국에 파가 많이 들어가 있으면 일일이 골라내고 먹을 정도다.


나에게는 스스로를 심하게 사랑하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파를 싫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파가 왜 싫지?’


스스로를 미워하는 친구에게

스스로를 그 정도로는 미워하지 않는 친구가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노력해봐.’라고 하는 말은


누군가가 나에게

‘파를 좋아하려고 노력해봐.’라는 말과 같다.


‘스스로가 왜 싫을까?’


어려서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일 수도 있고,

계속적인 실패를 경험했을 수도 있고,

부모님의 양육방식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냥 별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파를 싫어하는 이유처럼 말이다.


우선 나의 반파 지향성 편식에 관한 솔루션은

지금처럼 요리할 때는 파를 넣고 요리된 파는 안 먹는 것이다.

내가 싫은 건 안 먹으면 되니까 간단하다. 혹시나 파 신령님이 있거나 편식하는 어른을 싫어하는 분들이 보신다면 진노할 일이지만.


하지만 그 친구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다.

식재료인 파야 싫으면 빼면 그만이지만, 스스로를 본인의 삶에서 빼버릴 수는 없다.


친구는 자기 자신을 일상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되는 말을 듣거나, 조금이라도 본인이 느끼기에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본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초조해한다.


틈만 나면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책망한다.


‘파가 왜 싫지?’


나 또한 예전에 나를 심하게 좋아하지 않았던 적이 있기에 친구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본인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막을 치고, 정작 형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그것은

‘편식을 심하게 하면서 파를 좋아하려는 노력도 안 한다.’고 책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친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내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을 이야기해봤다.


“네가 잘하는 일을 적어보는 게 어때?”

“일기를 써 보는 건 어때? 감정일기 같은 거 말이야.”

“평범한 일상에서 조그만 성취를 쌓아 가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

“넌 충분히 있는 그대로도 멋진 사람이야. 네가 언젠가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난 네가 참 좋아. 너 말대로 네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겠어?”


얼마 전 직장동료가 하는 말에 무너져 내린 친구에게 말을 하는 도중에

마치 내가 파를 좋아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어도 파가 싫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사실은 많이 없는 것이다.


그저 그 친구가 힘들 때 가만히 안아주고

‘네가 힘들 때 내가 곁에 있어줄게.”라고 다독이는 것 밖에는.


가끔은 나 스스로도 지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버거울 때가 있다.


거리감과 친밀감.


이 두 가지는 인간관계에서 키를 잘 잡아야 하는 요소 같다.


내가 파를 싫어해도 밥만 잘 먹듯이,

그 친구도 언젠가는 자신의 아픈 마음 또한 스스로의 일부라고 받아주며, 스스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으로 악플을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