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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Oct 07. 2024

천사의 몫, Angel's share

#숨쉬는 오크통 #사라진 위스키와 와인은 어디로 #지혜로운 마음으로 

오늘은 와인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는 동안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드릴게요.  




와인의 숙성에는 오크가 큰 역할을 하는데요,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신의 선물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위스키입니다.


오크가 함유하고 있는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은 위스키에 단맛, 색상, 바닐라 향을 입혀주면서 복합적이고 우아한 맛을 부여합니다. 산화 작용을 통해 위스키의 거친 맛을 없애고 과일향과 기분 좋은 향으로 덮어주니 양조에 있어 정말 이상적인 재료죠.


오크통에는 수많은 미세한 구멍들이 있어요. 날숨에는 알코올과 수분을 밖으로 밀어내고 들숨으로 외부 공기를 오크통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위스키의 증발이 일어나는데 이를 ‘Angel’s share’라고 합니다. 오크통에서 공기 중으로 증발되는 위스키의 비율은 스코틀랜드의 경우 1년에 약 2% 내외로 봅니다. 와인 숙성 과정에서도 '천사의 몫'이 있어요. 


이렇게 증발되는 알코올 때문에 술에 약한 사람은 위스키 숙성 창고에 들어가면 취하기도 해요. 취중에 실제로 천사를 본 사람들도 있고, 숙성 창고 속에 사는 유령들을 보기도 한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과정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위스키와 와인이 얼마나 맛있으면 하늘에서 내려와서 탐을 낼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위스키의 증발량이 많을수록 산화가 빨라져서 술이 빨리 익어요. 극단적인 증발량을 보여주는 싱글몰트위스키 카발란은 15%라는 어마어마한 증발량 덕분에 3년 숙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원숙미를 보입니다. 가져간 만큼 미안하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체면도 있고 하니 돌려주고 가는 게 아닐까요. 


잃은 것에 대해 아까워하고 미련을 갖기보다는 천사에게 주었다고 여긴 옛날 사람들의 마음이 곱고 예쁩니다. 




천사들이 부른 천사의 노래가 듣고 싶어집니다. ‘리베라 소년 합창단’이 부른 <Angel>이라는 곡이 있어요. 눈을 감고 들으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에 떠오르고 어디선가 예쁜 종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이 사랑스러운 곡을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가 불렀는데 처음에 음원만 듣고 도입부는 소년 합창단의 음원을 그대로 사용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강형호, 조민규, 배두훈,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부르더군요. 천사가 화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그러다가 등장하는 고우림의 따뜻하고 묵직한 음성이 참 포근합니다. 


리베라 천사들은 어려서 음주가 안 되고, 남자 어른들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감미롭게 노래하다니 귀한 와인이 있다면 아낌없이 포레스텔라의 몫으로 나눠주고 싶어집니다. 청아한 목소리의 지분이 가장 많은 조민규씨에게는 한 잔 더 드릴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r2HIbTQb8IA

Angel, 리베라 소년합창단



https://www.youtube.com/watch?v=c_JCnseNfbM

Angel, 포레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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