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통의 비밀 #오크 숙성 #와인의 향과 풍미
바닐라, 견과류, 토피, 훈연, 초콜릿, 모카 향의 비밀
분명 포도로 만들었는데 그토록 다양한 과일의 특성과 푸른 채소의 내음을 머금고 있다니 와인의 향과 풍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참 신기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과일, 식물이라는 범주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바닐라, 크림, 아몬드, 캐러멜, 스모크, 카카오와 커피 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오크 숙성, 오크 향, 오크 풍미
와인의 양조와 아로마, 부케를 말할 때 늘 등장하는 표현들입니다. 지하 창고에 엄청난 규모로 쌓여 있는 오크통은 와이너리의 상징적인 이미지입니다. 무슨 이유로 오크통에 와인이 들어 있는지, 그 안에서는 어떤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오크통의 역할은 요리사와 비슷합니다.
식재료는 요리사의 손을 통해 먹기 좋게 조리되고 향신료와 양념으로 미각의 매력이 완성됩니다. 오크통은 포도에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아로마와 부케를 더하고 질감도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와인을 강렬하게
오크통 속의 물과 와인은 오크통의 수많은 숨구멍에 흡수되었다가 표면에 닿으면서 증발합니다. 이렇게 천사가 가져간 덕분에 탄닌, 풍미 성분, 산은 더 농축되면서 와인의 품질과 숙성 잠재력이 높아져요.
와인을 부드럽게
오크통으로 계속 숨을 쉬는 과정에서는 천사가 가져가는 증발과 더불어 틈을 통해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와인은 아주 천천히 산화되고, 이때 일어나는 화학반응 덕분에 어린 와인의 거친 특성이 다듬어지면서 부드러운 질감을 갖게 됩니다.
와인을 향기롭게
오크에 들어있는 미묘한 풍미 성분과 탄닌이 서서히 우러나오면서 와인은 기분 좋은 풍미를 띄게 됩니다. 특히 새 오크통일 수록 강해요. 이때 느껴지는 토스트 향은 코냑이나 비번 위스키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해요.
와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풍미 중에는 버터 향도 있는데요, 오크통의 영향도 있긴 한데 젖산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생성됩니다. <브레드앤버터>를 처음 본 게 2018년 즈음이었어요. 그때 프로모션으로 와인을 구입하면 P브랜드의 토스트용 식빵을 함께 주기도 했어요. 따뜻하고 고소한 빵에 부드러운 버터를 발라서 먹는 느낌을 와인으로 마시고 싶다면 브레드앤버터 레드와인입니다. 글 쓰면서 와인 추천은 처음이네요. <무똥까데 리저브 메독>과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와인 중 하나입니다.
가을에 와인을 글로 쓰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어요. 계속 생각을 하니까 밤마다 어찌나 한 잔이 간절한지요. :D
새 술은 새 부대에
유명한 로스터리에서 나왔다는 커피 드립백을 설레는 마음으로 개봉했어요. 개당 단가가 높은 편이라 기대를 했는데 향과 농도가 어찌나 강하던지 한 번만 내리기가 아까워서 곧바로 다른 잔에 한 번 더 내렸더니 보리차가 됐어요. 첫 잔의 강렬함으로는 서너 번은 내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드립백 안의 풍미가 아무리 짙은들 1회용이었습니다.
오크통은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가격도 상당하기 때문에 여러 번 쓰면 좋으련만 새 오크통의 강렬한 풍미는 사용할 때마다 점점 옅어지다가 4년 정도 되면 아무런 특성이 없는 중성 상태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새 것만 쓰면 와인이 너무 강해지기 때문에 해마다 적게는 20%, 많아도 절반 이하로 새 오크통의 비율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크 풍미에 과일향도 살리면서 복합적인 느낌의 와인을 만들 수 있어요.
모든 와인은 다 오크통 안에서 익어갈까
고급 와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방식으로 새 오크통에서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치며 오크 풍미가 우러납니다. 스테인리스스틸 탱크에서 완성되는 저가 와인이라 해도 오크의 풍미를 배제할 수는 없으니 선택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크 조각이나 막대를 넣는 거예요. 장인 정신이 깃든 전통 기법과 인스턴트 스타일은 고추장, 된장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어요.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의 가치만큼 가격 면에서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와인에 차별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담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건 저가 와인이 지닌 훌륭한 가치입니다.
음악도 그래요. 고전적인 안정감과 본연의 매력도 좋고, 때로는 그의 공연 제목에 쓰였듯이 '반란'에 가까운 도발과 일탈도 좋습니다. 한 사람 바로 떠오르네요.
그렇잖아도 바이올린 선율이 아프도록 파고드는 'Secret Garden'의 'Song from a Secret Garden'을 첼로에 담으니 가을의 정취가 더해져 깊고 깊은 마음속 동굴까지 울립니다. 그러다가 여름 해변으로 순간 이동해 Cha Cha 리듬에 둠칫거리게 만드네요.
그의 품에 어떤 첼로가 안겨 있어도 소리와 표현에 차이가 있을뿐 '강렬하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선율에 차별을 둘 수는 없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SJvyBag8A&list=RDqZSJvyBag8A&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dQW6uSLn-Q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