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주 목요일 #조르주 뒤뵈프 #스토리텔링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벌컥벌컥 들이켜던 와인, 지금은 우리 동네 편의점에
보졸레 누보는 ‘가메’라는 포도로 ‘보졸레’ 지역에서 만든 와인입니다. 와인에 관심이 없다면 보졸레 누보의 정체가 핼러윈이나 추수감사절처럼 가을에 챙기는 해외 출신의 어느 기념일로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시골 마을에서 그 해 만든 와인을 큰 통에 부어 벌컥벌컥 나눠 마시던 옛날을 생각하면 대단한 출세와 명예입니다.
스토리텔링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에서 '신비의 명약'이 된 에비앙, 솜씨가 없어서 망친 회를 '막 썰어서 더 맛있는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운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죠. 속내를 알면서도 발상이 흥미로우면 우리의 마음은 그에 대한 가치를 기꺼이 지불하며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수많은 아이템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반짝했다가 얼마나 많이 사라지나요. 그런데 1980년대의 발상이 세기가 바뀌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종의 의식으로 자리 잡은 건 그만한 내공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조르주 뒤뵈프, 이번 기회에 이름 하나 보고 지나갈게요. 보졸레 누보의 아버지라고 해두죠.
비싼 오크통, 시간과 노력의 가치, 장기 숙성은 어디로 가고, 갓 만들어낸 신선한 와인이라니
보졸레 누보를 만드는 '가메'는 깊은 맛도 부족하고 숙성 기간이 짧아요. 그래서 빨리 만들어서 빨리 마셔야 해요. 무슨 와인이 그래요. 보졸레 누보가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컨셉은 사실 와인으로서의 약점이었어요. 지금까지 귀한 와인의 정석이라 여기던 요소들과 다른 반전이 특징입니다. '시간으로 빚어서 만든 원숙미' 대신 '신선함'을 강조합니다.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신선한 와인'이라니 '발상이 신선'합니다.
가볍고 과일 향이 매력적인 가메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깊은 맛을 구현하기 위한 조르주 뒤뵈프의 노력은 세기가 바뀌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수천만 병씩 사랑받는 와인으로 보졸레 누보를 키워냈습니다.
와인은 기후와 날씨, 토양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메이커의 철학과 신념이 그대로 나타나는 참 정직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 좋은 와인을 고르기 위해 품종과 지역, 테루아, 빈티지에 와인 양조자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와인에 접근하기 어렵고 복잡한 이유였어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둘 살펴보면 모두가 중요한 정보라서 사소하게 넘어가기 어려워집니다.
18세부터 65세까지 즐기고, 18홀을 65타 안에 치라는 행운의 의미를 부여해서 국내에서 크게 히트친 와인이 있어요. 해당 와인을 수출하는 40여 개국 가운데 한국은 전체 수출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둘 다 성공한 마케팅의 결과물인데 이 칠레 와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으니 소비자의 까다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보졸레 누보가 '갓 내린 신선함'이 특징이기는 해도 11월의 와인이라 그런지 스산한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생각납니다. 원효대사와 설총이 함께 서 있던 분황사 앞마당도, 젖은 낙엽 신세라는 쓸쓸한 비유도 그렇고 어딘가 애잔합니다. '라포엠'이 지난해 가을에 발표한 <낙엽>은 아름다운 가사와 단단한 사중창으로 자칫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웅장하게 해줍니다. 샹송도 한 곡 준비했어요. 가을과 낙엽이 생각나실 거예요.
다 버리고 갈 거나
다 묻고 갈 거나
누구든지 밟고 가라고
누구든 가져다 태우라고
길에도 버리고 가게
강물에도 흘러가게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미워하거나
용서하거나
낙엽처럼만 낙엽처럼만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가게
<라포엠, 낙엽>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EO0TnyaWYY
https://www.youtube.com/watch?v=tINyMbNZy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