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뇽 블랑 #Splendor in the grass #차이콥스키
신의 물방울에서 보던 아로마와 부케의 세계로
처음에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할 때 풍미와 향을 이렇게 설명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말의 땀 냄새, 부엽토 타는 냄새의 세계로 들어갔어요. 과일향도 디테일합니다. 자두 향도 붉은 자두, 검은 자두, 말린 자두로 나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특한 표현도 그 경계가 있어 아무거나 만들어서 갖다 붙이는 게 아니었어요. 해당 범위 안에서 가능한 표현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컨센서스가 이루어져야 와인의 맛을 유지하고, 즐기고, 추천할 수 있으니까요. 토스트나 버터 뉘앙스의 오크 숙성향을 지닌 레드와인이 좋다, 파인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향이 나고 산미는 적당한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야 소믈리에가 취향에 맞는 맛있는 와인을 추천해 줄 수 있겠지요.
시음을 마치고 나면 자신이 느낀 결과를 말하곤 합니다. 훈연 향, 가죽 냄새, 새 신발의 고무 냄새 등 다양합니다. "혹시 젖은 신문지 향은 없나요?" 전형적인 향의 묘사를 벗어날 때면 조심스러워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어봅니다. 강사가 킁킁거리면서 그 비슷한 뉘앙스도 있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합니다. 저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시간을 제외하고는 받아 적기에도 바빠서 그렇게 창의적인 시도는 하지 못했어요.
한 번은 파마약 냄새가 난다고 우기던 수강생 때문에 수업 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분위기도 안 좋아진 적이 있어요. 강사가 주말 동안 미용실에 가서 확인해 보겠다고 하면서 상황을 종료시켰는데 혹시 그 수강생이 소믈리에가 되더라도 와인을 추천할 때 굳이 파마약 냄새가 난다고 설명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 또 하나의 새로운 표현을 들었습니다. "갓 깎은 잔디 향이 나요." 강사가 놀라면서도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확한 묘사였던 거죠. 놀라운 후각의 소유자였을까요? 그는 전직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평생 익숙한 향이었던 거죠. 경험만한 스승이 없어요.
소비뇽 블랑은 지금 막 깎은 잔디밭의 향기, 아스파라거스, 피망과 같은 짙은 녹음의 향기를 지닙니다. 상상만 해도 싱그럽고 신선합니다. 이 독특한 풍미를 살리기 위해 루아르 지방 같은 곳에서는 오크 숙성을 시키지 않아요.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와인은 과일 풍미를 즐기기 위해서 어릴 때 마시는 게 좋습니다. 단, 온난한 지역에서 재배할 경우나 다른 품종과 섞어서 와인을 만들 때는 오크통 숙성을 통해 아주 섬세하고 풍부한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을 만듭니다.
이 품종이 가진 풍미의 매력을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숙성도가 낮은 단계부터 높아지는 순서로 볼게요.
허브, 꿀, 녹색 피망, 아스파라거스
딱총나무 꽃
레몬, 라임, 구스베리, 청사과 (소비뇽 블랑의 전형적인 풍미)
복숭아 같은 핵과류, 열대 과일 (시계꽃 열매, 패선후르츠)
오크 숙성하면 토스트 바닐라, 향신료, 감초
손을 뻗어 와인 잔 가득 담아 모든 감각으로 향기로움을 느끼고 싶어집니다.
소비뇽 블랑이 갓 깎은 잔디 향이라면, 잔디가 자라는 소리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이 노래를 들어야겠습니다. 간주에서 들리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도 오리지널로 들어봅니다. 키신이나 아슈케나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세계적인 수준의 감상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조성진, 김정원의 연주로 들어볼게요.
마침 오늘 임윤찬이 영국 <그라모폰 뮤직 어워드>에서 피아노 부문과 특별상 '올해의 젊은 예술가' 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있었죠.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해요. 스무 살 청년의 쾌거가 자랑스럽습니다. 하정우 배우가 좋아한다는 그 와인으로 축배를 들고 싶은 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L-_DiZlrUI
https://www.youtube.com/watch?v=3CRg3fQNUhk
https://www.youtube.com/watch?v=izLXxt04QIY&t=32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