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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Oct 03. 2024

매혹적인 달콤함에 드라이한 매력까지

#리슬링 #드라이와인부터 스위트와인까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화이트와인의 드라이함과 산미는 매력적입니다. 도시적이고 쿨하죠. 


그런 기억을 되살려 리슬링으로 다른 와인을 주문했다가 달콤함에 당황할 수도 있어요. 드라이 와인부터 스위트 와인까지 모두 가능한 리슬링의 매력입니다.


사랑스러운 달콤함에 매혹되기도 해요.


인공감미료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자연의 단맛은 정말 큰 기쁨입니다. 과즙이 터질 때는 감동적이기까지 해요. 아이스와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늘씬한 병에 담긴 황금빛을 보며 본능적으로 달콤함을 감지할 수 있었어요.


독일에서는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포도의 완숙 정도를 달리합니다. 완숙될수록 당분이 많고 아로미와 풍미의 퀄리티도 좋기 때문에 숙성 정도가 중요해요. 수확할 때 포도 과즙의 당도에 따라 6개로 등급을 나눕니다. 리슬링으로 주문하면서 취향에 따라 드라이나 스위트로 소믈리에의 추천을 받아도 되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겠어요. 드라이한 것부터 점점 스위트해지는 순서예요.




카비넷(Kabinett)

가장 덜 단 와인으로 드라이 또는 오프 드라이에 가깝습니다. 수확기가 시작된 후 바로 수확하고 일주일을 넘기지 않아요. 가볍고 신선한 과일향(레몬, 라임)이 나고 산도가 높아요.


슈패트레제(Spatlese, 늦게 수확한 포도)

일주일 정도 늦게 수확해서 좀 더 숙성한 포도로 만들어요. 카비넷보다 향과 풍미가 깊고 바디감도 조금 높아요. 


아우스레제(Auslese, 선별된 성숙한 포도송이)

잘 익은 송이만 골라서 수확합니다. 이전 단계보다 당도가 더 높고 향도 더 풍부해요.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BA, 과숙한 포도알)

아주 잘 익은 포도알만 손으로 수확하니 생산량이 적고 귀해요. 스위트 와인입니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enauslese·TBA, 초과 완숙해 건포도에 가까운 포도)

나무에서 건포도처럼 마른 포도만 선별해서 만들어요. 귀부와인이라고 불리는 사연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룰게요. 스위트 와인이고, 세계에서 비싼 화이트 와인 중 하나랍니다.


아이스바인(Eiswein, 언 포도)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포도를 수확해 만들어요. 당도는 매혹 자체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늦게 수확해서 당도가 높은 포도'를 사용했어도 만드는 과정에서 발효를 많이 하면 '단맛이 적은 와인'이 돼요. 리슬링의 잠재력은 이제 시작입니다.


리슬링은 풍부한 향과 높은 산미를 기본으로 이에 더하여 떼루아의 특색이 더해져 더욱 매력적인 와인이 됩니다. 서늘한 독일에서는 사과, 배의 향이 특징이에요. 오스트리아, 알자스처럼 따뜻한 곳에서 늦게 수확을 하면 감귤류, 핵과류의 풍미가 나고, 호주의 리슬링은 라임, 레몬 등 새콤한 과일향이 나요. 리슬링 한 알에 세상의 모든 과일을 다 품은 것 같네요. 

 

과일향 다음으로 리슬링이 가진 독특한 풍미가 있는데요, 바로 석유(Petrol) 향입니다. 모든 리슬링 와인이 그렇지는 않고 잘 숙성된 리슬링에서 나는 편이에요. 


복합적인 과일향, 은은한 꽃향에 페트롤까지 다양한 매력을 담은 리슬링은 포도밭의 위치, 경사, 방향마다의 차이, 매년 다른 기후 조건,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영향으로 해마다 다른 캐릭터를 타고납니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일관성에 반하는 이런 조건들은 오히려 다양한 매력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렇게 무한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가진 리슬링을 시도하지 않고 관성대로 똑같이 만드는 건 일종의 의무를 저버리는 거라고 하네요. (바인굿 마르쿠스 몰리터의 설립자, 마르쿠스 몰리터)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의무에 충실했을까요. 어릴 때는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성인이 되어 삶의 주체가 저 자신이 된 후에 과연 어떤 태도였는지 되돌아봅니다. 나는 크게 될 사람이라 믿고 여러 방면으로 가능성을 시도했었는지, 아니면 주어진 만큼도 해결하기 벅찼던 건 아니었는지 답이 시원스럽게 바로 나오지는 않네요. 작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작게 만든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요.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 가운데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평소에도 이 곡을 들으면 울먹거리는데, 오늘은 울고 싶어서 이 곡을 들어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MdRxeZEkQ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중 2악장 / 조성진



https://www.youtube.com/watch?v=HDgrwoFeKjE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중 2악장 /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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