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머물기 좋은 곳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가을이 좋은 계절인데는 맑은 하늘,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는 자연의 운치와 더불어 활동하기에 참 편안한 온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사계절 중에 가장 숙면하는 계절이기도 해요. 레드와인도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의 낮 기온에서 가장 잘 지냅니다.
레드와인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와인 냉장고라는 게 있다는데 여기 둬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에 일반 냉장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있어요. 냉장실 온도는 2~3ºC 가량 되는데 나중에 밋밋해진 맛에 실망한 후에는 차라리 상온 보관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레드와인은 추위도 더위도 잘 견디지 못해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한 햇빛은 빨래 말리기에는 좋은데 와인에 내리쬐면 맛과 향이 사라집니다. 실내 인공조명을 많이 받으면 때로 퀴퀴하고 묵은 맛이 나기도 해요. 장마철, 눅눅하고 덜 마른 빨래 신세가 됩니다.
이런 저런 신경 쓰지 않으려면 필요할 때마다 사는 게 가장 편하고, 아니면 빛이나 온도를 조금 타도 그다지 아깝지 않은 무난한 와인을 몇 병만 사서 수일 내로 마시는 게 방법입니다. 고급 와인을 오랫동안 여러 병 소장할 계획이라면 보금자리도 함께 마련하세요. 집안 어딘가 연중 15ºC를 유지할 수 있는 그늘진 곳이 있지 않는 한 고급 와인의 가격과 가치를 생각했을 때 와인셀러는 필요한 선택입니다.
어둡고, 습하고, 서늘한 곳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와인이 오래 지내기 좋은 환경은 '어둡고, 습하고, 서늘한 곳'입니다. 이런 조건을 갖춘 어떤 공간이 떠오릅니다. 동굴과 감옥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입니다. 그는 27년간의 투옥 생활 동안 '분노와 복수의 침전물'을 걸러내고 '진실과 화해로 숙성'시키며 '자유와 평화를 실현'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레드와인을 좋아했어요. 남아공의 와인은 어쩐지 그를 닮아 강인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1994년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니더버그 매너하우스 까베르네 소비뇽’을 함께하기도 했죠. 남아공의 와인을 마주할 때면 넬슨 만델라의 메시지가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남아공 와인이 생소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남아공 와인은 유럽의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해서 독특한 맛과 향을 캐릭터로 갖고 있습니다. 보르도의 향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자유를 노래하고, 아프리카를 노래하다
1988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넬슨 만델라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며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당대 슈퍼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공연이에요. 아는 얼굴들이 몇몇 보이는데 모두 젊은 모습입니다. 리처드 기어는 수수한 모습인데도 참 잘생겼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넬슨 만델라는 자유를 얻고, 리처드 기어는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2013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의 CBS 장례식 방송에서 주제곡으로 쓰인 곡은 'TOTO'의 <Africa>라고 합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곡이 추모곡으로 쓰였네요.
저에게도 TOTO 앨범이 한 장 있습니다. <Africa>, <Rossana>가 기억에 남고, 가장 좋아한 곡은 <Lea>입니다. 별빛 가루를 뿌리면서 시작하는 듯한 노래의 감성이 참 달콤했어요. <Africa>는 노란색 지프 랭글러를 타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면서 들으면 잘 어울릴듯합니다.
표지가 심플한 자주색이었던 것 같은데 앨범 제목이 가물가물합니다. 대부분의 CD들은 어두운 곳에서 장기 보관 중이에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인터넷으로 손쉽게 찾으니 아쉬울 게 없었는데 오늘은 기억과 현실의 부조화로 신경이 쓰입니다. <Africa>를 듣다보면 "I know that I must do what’s right."라는데, 이 시점에서 제가 해야 하는 옳은 일은 무엇일까요.
추모곡이었다고 하니 웅장한 느낌으로 듣고 싶어 오케스트라 버전을 준비했습니다. 저처럼 예전 감성을 추억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원곡의 뮤비도 준비했습니다. 여름밤을 달콤하게 물들이던 <Lea>도 들어봅니다. 와인 보관 장소로 적합한 '어둡고, 습하고, 서늘한' 곳을 말하다가 '밝고, 쾌적하고, 따뜻한' 기억 보관소에 도착했네요. 여기까지 왔으니 <Rossana>도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oE4ZYasfrlM
https://www.youtube.com/watch?v=FTQbiNvZqaY
https://www.youtube.com/watch?v=VXMbiiw6soM
https://www.youtube.com/watch?v=qmOLtTGvs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