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하지 않기 #바로 마시기
와인이 집에 있으면 참 든든합니다.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 같은 먹는 건데도 여타 식료품과는 다른 소장의 가치와 기쁨이 있어요. 그런데...
좋은 날,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와인을 개봉했는데 뜻밖의 참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포도의 생산부터 와인으로 숙성되어 우리 집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온 건데, 사소한 몇 가지를 몰라서 마지막에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너무도 속상한 일입니다.
와인의 풍미를 최고로 즐기기 위해서는 '잘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으면 됩니다.
기본이 갖춰지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되니까요.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정답이 나옵니다. 온도, 빛, 진동 등의 주의 사항을 찾아보다가, 일반 가정집에서는 나무 상자나 스티로폼 박스도 좋다지만, 결국 와인셀러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집에 온 와인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손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마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보관하지 마세요. :D
마시는 속도가 와인을 입수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보관이 필요하게 되는데요, 그럴 경우의 주의 사항들은 차차 알려드릴게요. 개봉하고 남은 와인은 잘 막아서 냉장고에 두는데 3일을 넘기지는 않도록 하세요. 저는 봄이나 가을에는 상온에 보관하는데 괜찮더군요. 구체적으로는 책꽂이 가장 아랫단의 구석 자리에요. 여름이나 겨울에는 실내 온도가 높기 때문에 냉장고에 둡니다.
혹시 냉장고에 두고 깜박 잊어서 3일을 넘겼다면 요리에 활용하세요. 당분간 그럴 일이 없다면, 작은 유리병에 흑설탕을 가득 담고 빠듯하게 잠길 정도로 와인을 부어서 상온에 두세요. 며칠 후면 끈적해지는데 티스푼만큼 손에 덜어 얼굴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보들보들 해져요. 욕실 수납장에 두고 쓰면 편합니다. 젊었을 때는 이걸 만들려고 조금씩 남기기도 했는데 정작 관리가 필요한 지금은 그마저도 귀찮아서 남김없이 다 마셔버리니 어쩌면 좋아요.
새 와인이라면 냉장고는 직행하지 마세요. 그늘지고 안정된 구석에 보관하세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좋은 명분을 드린 걸로 마무리할게요.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와인을 보관하는 최상의 방법은, 보관하지 않는 겁니다.
이 곡을 만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이내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몇 번 듣다가 멈췄습니다. 가사가 너무 슬퍼서 마음이 저며왔어요. 이미 새겨진 멜로디를 잊지 못해 인스트루멘탈 버전과 바이올린 커버곡으로 들었지만 라라 파비안의 목소리가 없으니 그 쓸쓸하고 가슴 아픈 아름다움이 채워지지 않더군요.
다른 여자에게 내 남자를 보내는 여자의 마음이라 그런가 싶어, 조시 그로반의 목소리로도 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로 바뀌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아프네요.
78장의 타로카드가 가진 의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미련'입니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이 우리 감정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시간의 강물 위에서 사는 한 '과거, 미련, 후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현재'를 잘 보내서 '미련'을 되도록 작게 만드는 거죠. 오늘 밤 그렇게 카푸치노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기대하고, 믿고, 영원을 전제로 '나중'으로 미룰 수 있을까요.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 후로는 내일 두 개의 마시멜로보다는 지금의 한 개라도 제대로 챙기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지금'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사랑도, 와인도.
Broken vow, 라라 파비안과 조시 그로반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조시 그로반 곁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안드레아 보첼리가 <Champagne>을 부를 때도 무대에 함께 있던 데이비드 포스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8k1rY-Fq8
https://www.youtube.com/watch?v=-TWBiLGh8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