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온도 #코르크는 촉촉하게 #연습마저 작품으로
지난 시간에는 와인을 입수하는 즉시 마시는 게 최상의 보관 방법이라는 기분 좋은 명분을 드렸는데요, 우리는 나 좋자고 지금 바로 마시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날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때를 위하여 좋은 가격에 좋은 와인을 만나면 넉넉히 사둬야죠.
와인은 서늘하고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합니다.
모든 식품이 그렇지만 와인도 잘못 보관하면 풍미가 떨어지고 맛이 변질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결함이 생기기도 합니다. 온도 변화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보관하거나 마실 때 이 부분을 기억하면 와인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요즘은 상온이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두기가 어려운 게 같은 계절이라 해도 냉난방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실내 온도의 차이가 커요. 그래서 와인 보관에 대한 포괄적인 원칙으로 '서늘하고 일정한 온도'를 기준으로 드립니다.
와인이 가장 맛있는 온도도 기억하세요.
마실 때 적정한 온도를 고려하는 것도 와인의 향과 풍미를 최상으로 즐기는 방법입니다. 와인 스타일에 따라 마셨을 때 가장 맛있는 온도가 좀 다릅니다. '그 정도 수준'의 온도로 기억하시고 비슷하게 맞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점점 차가워지는 순서입니다.
레드와인부터 볼게요.
중간 바디, 무거운 바디 와인은 15~18ºC에서 즐기는 게 좋아요. 스산한 가을의 낮 기온과 비슷해요.
보졸레 누보처럼 가벼운 바디를 가졌다면 좀더 서늘하게 마시는 게 좋습니다. (13ºC)
화이트와인입니다.
오크 숙성한 샤르도네처럼 무거운 바디는 10~13ºC가 좋아요. 약간 차가운 정도입니다.
가볍거나 중간 바디의 화이트와인이나 로제 와인은 7~10ºC에서 차게 즐기세요.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은 더 차갑게 즐겨야 제맛입니다. 6~10ºC가 좋아요.
달콤한 스위트 와인은 6~8ºC로 가장 차게 즐기는 와인입니다.
와인 순서는 기억나는데 차가워지는 건지, 따뜻해지는 순서인지 헷갈리신다면 이렇게 스토리텔링을 해보세요.
레드와인은 팥죽처럼 따뜻한 색상이니까 가이드라인 안에서 가장 높은 온도로,
화이트와인은 투명한 식혜같이 시원하게 마시고,
스위트 와인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게 마신다고 도움 말씀을 드리면 더 복잡해졌나요. :D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온도로 권장한 가이드라인이긴 한데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달리해도 괜찮아요. 뭐든 편하게 즐기는 게 가장 좋습니다.
코르크도 온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냉장 보관을 오래 하면 코르크가 단단해지고 탄력을 잃게 돼요. 먹다 남은 식빵을 냉장고에 두면 그렇게 되잖아요. 쫄깃한 탄력과 부드러움은 어디로 가고, 봉지에서 꺼내면 가루가 부서집니다. 이렇게 된 코르크는 마개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조밀하게 막고 있지 못하니 그 사이로 공기가 침투해서 와인 맛이 밋밋해지고, 스파클링 와인은 그 소중한 탄산이 날아갑니다.
서 있는 것 보다 누워 있는 게 편한 건 와인도 마찬가지
나이가 드니 자꾸 어딘가 기대고 눕고 싶어집니다. 개봉하기 전에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와인도 누워서 기다리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와인과 코르크가 서로 닿게 됩니다.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하기 위함입니다. 코르크가 마르지 않도록 합니다. 와인과 계속 닿게 해서 촉촉한 감을 유지하게 해야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고 봉인 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픈할 때도 부드러워요.
운동선수나 연주자들에게서 다양하게 회자되는 표현이 있죠.
연습을 하루 안 하면 자신이 알고,
이틀 안 하면 비평가(스승, 스태프)가 알고,
삼일 안 하면 관객(전세계)이 안다.
꾸준함으로 감을 유지하는 건 마스터리의 경지에 올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인가 봅니다. 작심삼일로 끝나고, 매번의 다짐은 시지프스의 돌이 되고, 돌고 돌아도 원점인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히는 일반인으로서는 한 번도 내려놓지 않는 그들의 삶이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초등학교 3학년, 피아노 학원에 처음 갔을 때, 언젠가 근사한 콩쿠르 무대에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농을 열심히 연습해야 되더군요. 콩쿠르는 하농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가르쳐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니 왜 하농이 필요한지 알겠습니다. 발성 교정, 발음 교정할 때 '아야어여, 가갸거겨'를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 이유가 있듯이 말이죠. 코칭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수강생분들이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할까 싶은 마음에 서둘러 득음하시기를 응원합니다.
하농이 아닌 쇼팽의 <에뛰드>가 교재였다면 저의 피아노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에뛰드>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손가락 연습곡조차도 작품의 경지로 미려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 경이감마저 듭니다. 쇼팽의 <에뛰드>는 '연습'이 아니라 '감상'을 위한 곡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같은 <에뛰드> 작품을 두 사람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맑고 투명한 조성진, 강렬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매력을 각각 느껴보시죠.
임윤찬이 연주한 넘버는 '손가락 연습곡'이라기 보다 '감성 연습곡'에 가깝게 들립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높은 선율을 들으니 버터보다는 잘 숙성된 크림치즈가 생각나는데 베이글이 있으면 굽고 싶네요. 2관왕의 연주에 먹을 생각을 하다니 예술은 허기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E82wwNc7r8
https://www.youtube.com/watch?v=jg91_MDzo7s
https://www.youtube.com/watch?v=gLE0lE8rD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