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빛나는 앙코르 #사랑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로마네 콩티에게 웰에이징의 비결을 물으며 시작한 여정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저마다 다른 가치를 부여받기까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포도로 태어나 성장하고, 수확 후 와인으로 숙성되는 과정을 보면 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포도가 자리 잡은 토양에 물이 부족하면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다양한 지층으로부터 영양분과 함께 흡수합니다. 날씨가 너무 더우면 수분을 증발해서 온도를 조절하고, 그러다가 말라서 죽을 것 같으면 과감하게 당분을 포기하기도 해요. 온통 비에 젖고 곰팡이가 습격해도 햇빛을 기다렸다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달콤함을 잉태합니다. 강추위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빛나게 될 날을 말없이 기다립니다.
어떤 순간에도 포도는 최선을 다합니다. 뜨겁거나 춥거나, 습하거나 메마른 날씨에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살아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망가진 모습에도 견딥니다. 햇빛과 비와 바람은 그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받아내며 견디는 포도가 안쓰러웠나 봅니다. 세상 곳곳에 있는 다양한 과일의 이야기를 포도에게 전해줍니다. 싱그러운 풀 내음도 전합니다. 혹독함은 자연이 포도에게 건넨 마법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어려워도 지혜롭게 방법을 찾고,
필요하면 과감하게 도전하고,
휘둘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남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보졸레 누보처럼 신선한 감각으로 바로 뛰어드는 용기도 필요하고,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두운 지하 창고의 오크통 속에서 작은 틈으로 조용히 호흡하며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절제와 인내도 필요합니다.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귀한 가치로 빛나게 하는 비결은,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면 나를 힘들게 하는 척박한 환경도 선물을 주고, 천사도 내려와 도와주고 갑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세상도 나를 아끼고 귀하게 여깁니다. 비록 지금 초라하고 변변치 못해도 언젠가 반드시 빛나게 될 나를 알기에 스스로를 믿고 응원합니다. 내 삶을 향기롭고 다채롭게 만드는 비밀, 시간이 갈수록 농염해지는 아름다움의 비밀이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남은 여운이 아쉬워 큰 박수로 앙코르를 청합니다. 무대 위의 모두가 기량을 최대로 발휘하고, 협연의 팀워크, 관객과의 호흡마저 완벽했다면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의 마음도, 이에 응하는 연주자들의 마음도 흡족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이번 생에 주어진 여러 악장을 멋지게, 만족스럽게,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힘겹게, 그렇게 하나 둘 넘다 보면 언젠가는 삶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겠죠. 연주를 모두 마친 저 자신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줄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뜨겁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다음 생을 한 번 더 청하고 싶습니다. Bis!
드넓은 포도밭을 보며 HAUSER의 매력적인 연주로 시작한 곡이었습니다. 여정을 마친 지금,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갈채에 보답하며 지휘자가 준비한 '특별히 아름다운' 앙코르 곡으로 들어봅니다. 종심을 넘은 지휘자의 평온한 얼굴에서 예술을 향한 진심과 열정의 무한한 깊이와 세월을 느낍니다. 모든 선율과 영혼이 하나가 된 듯 우아한 몸짓이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로마네 콩티에게 물어보며 시작한 여정의 답을 이렇게 찾았습니다.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의 연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84-9XtfKUg
* 이미지 : 2023 교보 노블리에 콘서트, 앙코르 곡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중 한 장면, (지휘 정명훈, KBS 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