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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변만화 Dec 02. 2024

#1제발, 그건 생리통이 아니라고요

여러분, 잠시 DIE라는 질병의 이름을 주목해 주세요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누구이며, 이 연재를 왜 하는가    




 저는 지난 3월 심부자궁내막증(DIE)을 진단받은 서른아홉의 미혼 여성입니다.

약조차 없던 4기에 해당하는 환자였습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진단받던 그날의 아픔과 슬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환자 앞에 의사는 마치 "네 진단명을 찾아줬으니, 나 대단하지?"

라고 하듯, 의기양양하게 자기 말만 했고

그런 의사의 말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질문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쁘면서도 불행하면서도, 다행이면서도 억울했던,

지금 이 순간, 이런 그지 같은 진단을 받으며 왜 내가 이 진료실에

덩그러니 혼자여야 하는지

진료실에 이 사람들은 뭐가 이렇게 기분이 좋고 자신만만한 건지

(나중 그 이유를 알았지만;;;)

도대체 이제야 이 병명을 찾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동시에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더 불행해진다는 건지, 더 아파진다는 건지,

아님 다행이라는 건지, 낫는다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이

그저 진단명 하나만을 덩그러니 얻어 버린 듯한

그날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하기 전

그날의 저처럼 병명이 생소하실 분들을 위해 심부자궁내막증(DIE)은 어떤 질병인지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심부자궁내막증, 학명으로는 줄여서 DIE입니다.

대부분의 환자가 지독한 생리통을 수년간 인간의 한계까지 참다 참다, 산통을 훨씬 웃도는 고통을 받을 대로 다 받다가 진단명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DIE는 자궁내막증의 한 줄기이지만 심부자궁내막증은 내막증 환자 중에서도 단 몇 프로에 해당하며, 주로 난소에 혹의 형태로 생기는 내막증과는 달리 자궁경부(자궁에서 깊은 곳) 등에서 일어난 유착입니다.

 생리 때 제대로 배출되지 못한 생리혈(세포조직)이 자궁경부 등으로 역류하여 다른 조직, 다른 장기 등(저 같은 경우는 직장)과 유착되어 엉겨 붙어 파고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유착이 된 부위와 정도에 따라 환자의 병변(증상과 고통 등)과 치료 방법과 수술의 난이도와 예후 등도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심부자궁내막증이 꼭 자궁에만 생기지도 않습니다. 여성의 몸 어디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폐라든지 성대나 콧속이라든지ㅜㅜ;;;;) 이러한 이유로 심부자궁내막증의 발병 이유를 의학계에서는 현재까진 생리혈의 역류라고 짐작할 뿐, 명확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폐경이 되지 않는 한, 환자의 약 50%~80%가 재발하여 재차, 3차 수술이 빈번하며 약 복용과 수술 역시 완전한 치료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전지적 DIE 환자 시점!



 

제 생각에 지금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아마도 심부자궁내막증(DIE)을 진단받아 겪고 있거나 아니면 아끼는

누군가가 이 병을 겪고 있을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오래고 극심한 생리통을 당연한 고통처럼 진통제로만 누르며 무시하고 참아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그 원인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두의 공통점은 통증이 주는 고통을 떠나 굉장히 외롭고 슬프며 혼란스럽고 절박하고 막막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저처럼 오래고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자신과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답답함과 절박함을 넘어 극도의 절망감에 홀로 울다 싸우기를 반복하는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랬었습니다. 병명을 알기 전 시간은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마치 원인 모를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이 병이 주는 통증과 진단의 시간이 길어져, 결국은 현실적으로 모든 부분이 무너지고 막다른 길에 다다라 누군가 내가 삶을 놓아버리길 바라는 것은 아닌가, 운명마저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안과 절망에 의지를 놓고 쓰러지길 반복했었습니다.



(갑자기, 이 글을 쓰는 지금, 

제가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무언갈 도전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 복받쳐 오릅니다.

책상에 앉는 것은 고사하고 수많은 통증의 고통으로 몸도 마음도 가누지 못했던 제게

이런 시간은 다시없을 줄 알았고, 가능하리라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아플 때 그분들이 스치며 건넨 인사도,

찰나의 다정한 눈빛과 단순한 말 한마디도 제겐 크나큰 위안과 울림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이 통증으로부터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고,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는지, 왜 내게 이런 병이 왔는지, 왜 하필이면 나인지 질문하고 또 질문했었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고통과 혼란만 더 커졌었습니다. 결국 “절망”과 “불행”이란 단어를 이 병을 통해 오롯이 직면하게 되었던 겁니다.     


 저의 증상은 극단적이었습니다. 24시간 통증과 진통제 사이 어디쯤에 저를 잃은 채, 아침에 눈을 떠도, 한낮에 해를 보아도, 해 질 녘 붉은 하늘을 보아도, 푸르게 물드는 초저녁을 보아도, 캄캄한 적막의 깊은 밤을 보아도, 동이 트며 옅어지는 새벽 별을 보아도... 저는 저 베란다 문만 열고 떨어지면 이 통증이 끝난다, 아, 이것이 내 운명이구나,라고... 믿으며 죽어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온몸을 옥죄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은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통증이란 이름의 반 평짜리 독방이 떠오르게 합니다. 어느 순간 죽는 것만이 “낫는” 길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전에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지, 미래에 어떤 나를 꿈꿨었는지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DIE’의 가장 나쁜 예 중 하나입니다.     



출산을 한다고 걸리지 않거나 끝나지도 않습니다.
출산 후 2차, 3차의 수술로 너무도 고통스러워 하는 분들을 병원에서 보며 알았습니다.
제대로된 지식과 예방만이 최고의 치료라는 것을요!




때문에 저는 사람들에게 ‘심부자궁내막증(DIE)’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여성이

DIE를 일찍 알고 건강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처럼 이토록 후회되고 미련하게 그리고 아프고 힘들게 DIE를 직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저와 같이 이미 진단을 받은 환자라면 부족한 정보와 이 병 자체를 모르는 의사들로 인해 혼란과 고통만 가중되어 병변이 심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 연재를 쓰게 된 강력하고 절실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통증이 꽃처럼 피던 지난 3월, 사그라들지 않는

통증과 절망으로 인해 죽겠단 마음으로 들어온 한 사찰에서의 하룻밤이 가을로 물이

들어 이 연재의 초반 부분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제 글을 뚜렷한 목적을 갖고 보실 독자분들을 위해 앞으로 이어질 연재의 챕터와 각 챕터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쓰겠습니다.      



 제게 DIE는 단순히 어느 날 진단받은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서른아홉, 매 순간 위기와 한계를 대면하며 모든 존재가 오롯이 혼자임을 배웠고, 비로소 어른이 되는 시험을 치르는 것이란 걸 깨달았었습니다. 죽음만이 답이라고 믿었던 불행과 절망 속에서야 배우게 된, 누군가가 없이도 나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위로하며 쉬게 할 수 있는, 안전하고 단단한 마음. 그런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 세상에 나만 혼자이고 나만 죽고 싶었던 건 아닐 테니까요._다음 연재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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