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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Feb 22. 2019

인숙만필

황인숙 시인

내 어릴 적엔 매일 우리 집에 신문이 배달 왔었고,

엄마가 기다리셨다가 아주 열심히 읽으셨다.

엄마는 한글세대라 한문이 약하셨는데,

그 당시 신문에는 그런 엄마에게 수수께끼라도 풀라는 듯이 한문이 한가득 많았다.


당시 젊었던 엄마는

나에게 영어와 한문을 익히기를 강요하셨는데,

영어는 어린 내 마음에 수긍이 가도,

그놈의 한문 익히기는 짜증이었을 뿐이었다

허나, 엄마의 정성으로 나는 또래보다 많은 한문을 알았고,

그 능력이 빛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딴 것이 아무 쓸모없는 미쿡에 와서, 이젠 소멸되어버린 능력이지만 말이다.


그런 시절에  내게 시인으로 각인되어 들어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황인숙 시인이다.

내가 우리 둘째 중짜만 할 때, 

황인숙의 등단 기사와 인터뷰를 흑백의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아직도 있다.

그녀도 젊다 못해 어렸고, 그녀의 시를 1도 이해도 못했지만, 

시인의 앞머리 내린 프로필 사진은 내게 시인의 모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황인숙 시인은 독신으로 늘 남산이 내려다 보이는 옥탑방에 살면서,

동료와  친구들에게 후하며,   

해방촌 동네 길고양이들을 챙기면서 시를 발표하면서 산다.


나는 그녀에게서 초딩의 눈에 보였던, 

시인의 이미지를 지금도 훼손하지 않고 살아줘서 안도감(?) 애틋함 혹은 향수를 느낀다.

비록 시인의 일상은 내게 비추어진 그 이미지와 달리, 

모두에게 균등한 희로애락이 늘 통과하며, 

각각의 슬픔과 불안, 불편함과 회한이 빼곡히 쌓여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시인의 수필집을 이 곳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

참말로 고향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제목도 향수스럽게 인숙만필


황인숙 시인의 수필집은 특별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고, 예상하던 바 그대로 잠잠히 살고 있고,

비슷하게 예민하고, 선량하고,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벗들과 교류하며 사는 

58년 개띠 언니.

그 정직하고, 비위 약하고, 아름다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의 고지식한 인생관이 담겨 있다.


좋았다.

내 초딩때 아가씨 시인의 그 신선함이

내 중년에 결혼 안 한 띠동갑 언늬의 순진함은 그대로 또..

시인은 어찌 노년을 이끌어 갈까

나는 또 어느 날 어는 곳에서 시인의 글을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hvS2I6-M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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