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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Feb 21. 2019

설중 독서 (雪中 讀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눈이 왔다
푸근한 날씨라 금방 녹았다
아이들은 휴교를 하루밖에 안 하니 엄청 슬퍼했다  


밖에서 눈을 지치고 온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한 사발 대령했다

눈이나
추위
혹은 외로움에도
맵고 따뜻한 것은 진리다  


고로,  

유난히 맵고 따뜻한 음식이 많은 우린

무척이나 춥고 외로운 사람인 게 맞다


눈이 쉬이 녹으니
우리 집의 매화 세 그루

늘 빨리 피는 집 옆 매화보다 늦게 피는 뒤뜰 매화는 
눈인지 꽃인지 모를 봉오리를 몽골몽골 매달고

가던 길 계속 갈 요량으로 피우던 꽃 계속 진행 중이고..


옆 마당 한창인 매화는 지칠 줄 모르는 패기로
눈 따위에 기죽지 않고  아름다움을 뿜뿜하고 있다


젊고 이쁜 것들은 쌩쌩한 호연지기가 제대로 있어야 맛 맞고

인생 직진이라는 거

선비 아니라도, 매화를 보며, 기상을 배운다.


말 많고, 지필묵 접근성 높았던 선비만 요란법석을 떨며 매화 예찬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

그 선비들 뒷바라지에, 부엌에서 장독대로, 장독대에서 빨래터로 오종종 걸음이 바빴을 당대 아낙들도

이리 꽃 귀한 시즌에 핀 매화를 보며, 삘이 깊었으리라.      


글 올리는 이곳에

보여주는 것들은
맨날맨날 꽃
맨날맨날 눈
맨날맨날 하트 라도..

지금 우리 집엔
수도관 고장에, 가스레인지 교체에, 뭐에 뭐에
하루가 멀다고 고장이고
인건비는 비싸고 귀한 이곳 미쿡은 

약속을 잡고 또 잡아도 
눈이 오니 휴교고, 
눈이 오니 서비스맨은 캔슬이고...

하여, 기 털린 나는 책을 읽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김만중이 석사 논문이었다는 작가답게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썼던 시대와 작가의 처지를  제대로 써내려 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구운몽보다는 사씨남정기에 대해 뜨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뭔 당대의 작가이자, 당대의 노론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던 철학자가

조강지처를 내치고, 첩을 들인 가정사를 숙종의 장희빈 로맨스에 빗대어서까지

되돌리려고 했는지. 좀 별거별거 다한 능력자에 대한 눈살 찌푸림이 있었다.

정철의 미인곡 시리즈도 그렇고..

알고 보면, 다 권력과 파벌에 기인한, 

왕에 대한 연모(나 좀 써 줘) 혹은, 왕의 회심을 위한(우리 파 국모를 제자리에) 

글쟁이의 몸부림으로 보여, 스스로가 가진 위상에 비해 좀 걸쩍지근하다

자신의 계파와 계파의 대의 말고 무엇이 있었는가 말이다.

이런 내 시각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도 언급되어 있어서,  아주 속 시원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그 책의 존재 자체로

Before와 After로 나눠질 수 있으리라.

대중화되지 않았던 역사서를 가지고, 자신의 관점으로만 해석해서

이리저리 음모론이나, 한 계파의 이해에 몰입된 해석으로 약을 팔 수 없게 되었으니깐.



암튼, 이 작품에서 모독이라는 출세길이 막히자, 

글재주로 소설 써먹고사는 사람이(이들을 매설가라고 한다)된다.

그는 어느 경지에 이르자, 자신의 스승이 되어 줄 비슷한 처지의 선생을 찾고,

그런 연줄로 남해에 귀양 가서 있는 김만중에게도 인연이 닿아

그의 제자이자 동료로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과

소설이 바라보아야 할 지점, 

그리고, 그 당시에 유행했던 인기 소설들에 대한 비평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오래되고 좋은 옛 시들이 많이 나와 있고,

김만중이 당대의 문인, 친구, 가족 등등과 주고받았던 편지나, 

읽었거나, 가슴에 두었거나 해서, 인용했던 시들이 훌륭해서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작은 이야기, 소설

어찌 17세기라고 없었으며,

그 이전이라고 없었으랴


넓고 막막한 세상사도 그렇고

일개 필부나 아낙의 인생도 그렇고

그들 모두를 통과하는 것은 유한한 시간 속의 희로애락이고

그것의 기록들이고,  서사이고,  이야기이다.


무가치해 보이고, 뻔히 보이는 그 작은 이야기들속에

압축된 다각면의 사람들이 촙촘히 들어서, 

치고 받고, 웃고 울리고, 티키타카 다 하신다.


그러니, 빠지기 쉽다

그걸 경계하여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라는 말도 했겠지.


좋았던 구절 하나를 기록으로 남긴다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


시경에 나온 말이라는데,


즐겁더라도 음란하지 말며,

슬프더라도 마음 상하게는 하지 말라는..




훌륭한 말이다


앞에 음란하지 말라는 말은

글쎄 애를 셋을 낳은 아쥠이 보기엔 허허..하고 패스 할 말이지만,

뒤에 슬픈데, 그래도 상하게 말라는 말은 두고두고 새길 일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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