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0화) 나라는 습관
그가 같이 온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우리 쪽으로 다시 와 옆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순간 제니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지나가는 듯했다.
나는 제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 앞에 쌓인 음식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었던 페리에 탄산수병을 그제야 열어 마시면서,
그가 자연스레 우리와 함께했다.
제니가 대화를 계속 주도했다.
뉴욕 인근에 사립학교를 어릴 때부터 쭈욱 같이 다녔던 그들의 지인들의 근황을 생각나는 대로 업데이트하기도 하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현재의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는 중간중간 제니가 가볍고 의례적으로 질문처럼 남자의 신상을 파악할 물음들을 던지기도 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제니의 심문 기술이 곳곳에 녹아 있는 듯했다.
그는 느긋이 앉아서, 제니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물음에 맞는 답을 적절한 수준으로 해주기도 했다.
나는 먹었다. 줄곧.
그와 대화에 빠진 제니는 입맛을 잃은 지 오래라, 자신이 집어 온 초밥마저 깨작거리고 있었다.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제니는 양 볼은 아까부터 상기되었고, 내 두 볼은 꾸역꾸역 채워진 음식으로 내내 팽배했다.
잠시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던 그가 우리에게 소다라도 마시겠냐고 물었다.
제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원래 탄산음료는 마시지 않는 제니와 달리, 나는 그 물음이 반가워서 열광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피식 웃으면서 일어나 카운터 옆에 음료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줄을 서서 계산을 하는 사이, 제니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가 차가운 콜라를 한병 들고 다가와서 내게 건넸다.
연신 땡큐를 외치면서, 덥석 받아서 병 모가지를 비틀어 마셨다.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그가 문득 기억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도 제니는 그리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냐고.
마침내 입 속에 가득했던 콜라가 그의 상반신을 향해 뿜어나갔다.
멀리서 제니가 오노.. 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관계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다. 유지되는 관계와 그렇지 못한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혼 후에 내내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전남편과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의 서사를 복기했다.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하도 돌아가서, 비가 내리는 옛날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결혼도 세상 일이라, 승리한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일상을 위해 진도를 빼느라 바쁘다.
그들에게는 과거를 돌아볼 틈이 없다.
패배한 사람들만 혼자 남아 지난 일들을 꺼내 놓고 맴돈다.
그중 각인된 일들을 틈날 때마다 고쳐 쓰고 또 고쳐 써 가면서 말이다.
나는 왜 그를 선택했을까.
아니, 나는 왜 그의 선택을 받아들였을까.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아니, 혹시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늘 다이어트 중이었고, 습관적으로 내 몫의 음식을 덜어 먹던 제니는 밥을 먹기에는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알면서도, 제니와 기껍게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제니가 그 시각에 나와한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제니라는 존재가 그러 했듯이, 그도 그렇게 내 주변에서 나를 좋아했던 남자였다는 이유로 결혼까지 이어진 것 같았다.
결혼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최고의 기준이고, 취향을 나타낸다는 말은 너무도 옳다.
너무도 옳아서 나를 아프게 한다.
일생의 일상을 함께 할 반려를 선택하는데,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취향까지 돌아본다는 건 , 얼마나 부내 나는 일인가.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허겁지겁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를좋아하다니?_취향저격
#그림은앙리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