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화) 나라는 습관
전남편을 만난 건, 내가 맨해튼에 있는 공익법률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이다.
가정폭력을 비롯해서 이민자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다루던 단체였다.
카운슬러부터 사회복지사와 법률지원단까지 모두 한 장소에서 일하며 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규모가 꽤 되는 단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은 바깥에서 입구를 찾기가 힘들만큼 아무런 표시도 없이 숨어 있었다. 이런 곳은 대부분 아는 사람만 드나들 수 있도록 특색없이 은닉하듯이 있다.
의뢰인의 임시 쉘터로 쓰이기도 해서, 평범한 사무실의 외양을 띠고 조용히 있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대부분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법적 보호자인 남편이나 가족이 사무실을 알아 내서 찾아와 문 앞에서 버티기라도 한다면, 그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다. 커다란 소란이 없어도, 마법에라도 걸리듯 스스로 걸어 나와 가해자와 사건의 현장인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제 발로 돌아간 피해자와 다시 조우하게 될 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대부분은 주로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되어서, 위험에 처 있을 때가 많은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함께 나타나서 가해자가 원하는 진술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이다. 즉, 지난 번에 단체에 연락해서 도움요청을 한 것은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착각해서 허위로 진술한 것이니, 그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한다. 가해자의 장래를 걱정하는 가해자의 부모가 주로 피해자와 동반해서 나타나는데, 피해자가 앞으로 혹시 모를 조력을 요청할 곳의 관계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단체는 간판도 없는 입구를 도어락으로 지키고, 안팎으로 씨씨티비로 철저히 확인한 후에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출입문 초엽에 간단한 접대공간을 지나면, 내부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고 계속 안으로 들어가면, 구비구비 끝 없는 미로와 같은 길들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방들이 이어졌다.
그런 과정들이 번거로워서 한번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퇴근 시간까지 나오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끔씩 나가서 먹는 점심시간은 그래서 특별한 일이었다.
보통은 일하던 책상에서 보던 서류들을 한 켠으로 밀어 놓고, 모니터를 쳐다보며 집에서 가져 온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웠다. 그러다가, 가끔씩 동료들과 근처 델리라도 나가서 점심을 먹을 때면. 숨이 트이고 활기가 샘 솟았다.
그를 처음 마주친 건, 그런 특식 먹는 날의 이벤트였다.
그날은 제니와 함께였다.
제니는 나와는 로스쿨 동기로 뉴욕시청 소속으로 있었다.
우리는 당시에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인이 운영하던 매춘굴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인포주에 강요로 강제로 일을 하던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제니가 자주 우리 사무실을 들렀다.
한인 포주는 한국내에 기지촌을 운영하던 방식으로 뉴욕시내에서 매춘굴을 경영했는데,
이곳에서도 그 착취의 정도가 심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인 곳이니, 어떠한 사업을 해도 그들만의 사는 방식으표출된다.
이 한인 포주는 사람을 고용하여 단순히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하고, 그 의지를 지렛대삼아 지속적으로 세뇌를 해서 영영 그 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돈을 벌게 하고, 그 돈을 모아서 떠날 수 없게 빚도 불리게 만드는 시스템 정도야 어느 매춘집단에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곳은 젊고 어린 아가씨들을 평소에 가족 구성원처럼 대하고, 서로를 가족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길들이고 감시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처음에는 어떨 지 몰라도, 그렇게 가족처럼 서로 호칭하고 대하면, 그렇게 가족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비지니스라면 불가능한 어느 무리한 요구도 가족이라는 영역속에서는 수용된다. 그들은 그렇게 이용당한다. 필요없어 질 때까지.
그 한인포주 밑에서 일했던 한 피해자는 쉘터에서 내내 창문밖만 한 없이 쳐다보고 있어서, 이곳의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그녀와 면담끝에 나온 그런 행동에 대한 설명에 모두들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엄마라고 불리는 포주와 이모라고 불리는 밥 해주던 아줌마와 삼촌이라고 불린 관리인이 그녀에게 언제 잡혀갈 지도 모른다며, 피해자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해서, 창문의 블라인드조차 걷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햇빛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 지 기억이 안 나서, 햇빛이 쏟아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계속 쳐다보았다고 했다.
제니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왔다.
책상 위에 보던 케이스를 그대로 펼쳐 두고, 재킷만을 들고 첩첩이 닫힌 문을 나왔다.
건물 밖은 맨해튼 건물 사이로 강쪽에서 불어 오는 칼바람이 우리가 나오기를 숨 죽이고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 들었다.
바람이 따가울 정도로 얼굴을 부비면, 방금까지도 우리를 짓 눌렀던 케이스들이 잠시 사라지고,
생기가 두 볼 위로 후욱 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바람이 흔들어대는 머리카락과 재킷을 이리저리 잡으면서, 우리는 큰 소리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무얼 먹을 지를 물었다. 대부분은 그런 의례적인 논의와 상관없이, 둘의 발길이 이미 근처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델리를 향했지만 말이다.
델리의 중앙에 놓인 음식 진열대애는 거의 모든 국적의 음식들이 담겨져서 손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음식을 고르면 무게를 달아서 값을 치르면 된다. 제니와 나는 몇가지를 골라 담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중이라 창가에 마침 빈 자리가 있었다. 제니는 평생토록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라 스시 몇 조각만 집어 왔다. 나는 그런 제니가 맛만 보겠다며 내 음식을 수탈해 갈 것을 알았기에 그녀 몫까지 넉넉히 집어 와서 펼쳐 놓았다.
평소와 달리, 속도를 영 내지 않던 제니가 입안 가득히 음식을 넣고 씹던 내게 뭐라고 속삭였다.
뭐라 말했는 지 잘 안들렸지만, 음식을 삼키느라 다시 묻지 못하였다.
그때였다.
부지런히 씹어 삼키며 눈동자만 굴리는 내 앞에서 제니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귓 뒤로 머리카락을 연신 올리면서, 다른 손을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향해 내밀었다.
그였다.
그들은 서로 오랜만에 본듯 했다.
"Is that you..?!"로 시작한 말들이 "Wow.."로 가기까지 내 밥상위로 그들의 지난 몇년이 흐르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반가움에 동조를 하는 듯한 미소를 간간히 띄우면서 눈치껏 밥을 먹었다.
제니가 나온 뉴욕근처 사립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이라는데, 정장셔츠 위로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은 모습이 근처 증권사에서 일하는 듯했다. 몇 차례 주거니 받거니, 둘이서 서로 알고 있는 학교 동창들의 근황이 오가고,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제니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부랴부랴 나를 소개했다.
그가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두번 나직히 말했다.
모든 행동이 매끄러 보이는 사람이었다.
#늘 다이어트중인 밥친구란?_잔치국수같은거
#탄수화물의 결정체_영양가읎음주의
#첫 번째는 헨리무어, 왕과왕비
#두 번째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