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7화) 나라는 습관
처음부터 진수덕 화백은 모든 법적 권리를 언니에게 위임했다.
언니가 오랜 기간 진화백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면서 모든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도 언니 이정선을 통하지 않고는 진수덕 화백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 공적인 삶에서의 언니의 통제는 몇 년 전부터 가족들의 관계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언니는 김경주가 엄마를 보기 위해 집을 방문하거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전화하는 것들까지 조금씩 제한해 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삼 년 전부터는 김경주와의 모든 접촉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하도 그러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걱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엄마와 언니가 사는 아파트를 무작정 찾아갔어요. 얼굴이나 보고 이야기하려고.”
그녀가 말을 이어 갔다.
“그랬더니, 언니가 경찰을 부르더군요.”
말 마무리가 한숨과 섞여 나왔다.
잠시 그녀가 숨을 골랐다.
“어이가 없죠."
"전화를 수 없이 해도 받지도 않고, 그래서 편지를 쓰고, 난리를 쳤는데.."
"얼마가 지난 후에야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공증까지 받은 편지였어요.”
“제가 엄마의 그림들을 허락 없이 가져가려고 해서, 제 방문을 막는 거라고 쓰였더군요."
"더 이상 연락도, 접근도 말라면서요. 만약 내가 계속 찾아오고 그러면, 접근금지 신청을 정식으로 요청하겠다고..”
“그 서류 내용에 동의하는 엄마의 싸인도 있어요. 엄마는 원래 언니가 내미는 서류에는 뭐든 사인하세요.”
나는 정변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팩트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언니 이정선 씨는 수십 년 동안 진수덕 화백의 충실한 에이전트였다.
지금도 그 사실은 유효하다.
또한, 언니가 김경주 씨의 접근을 거부하며 보낸 편지에는 진수덕 화백의 친필서명이 공증되어 동봉되었다.
그렇다면, 김경주 씨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도 이 케이스는 승산의 확률이 낮다.
법원이 판단하기에 부유한 노부모를 평생 돌 봐온 싱글 자녀를 두고,
뒤늦게 나타나서 딴지 거는 자식 이야기로 들리기 좋다.
언니가 특별히 자신에 대한 엄마의 신뢰를 악용한 이력이나,
엄마를 학대했거나 돌보기를 소홀하여 방임한 증거가 없다면 말이다.
물론 소송을 걸어 언니가 진수덕 화백을 정서적으로 가족 내에서 고립시켰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승률은 글쎄였다.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에서 덧셈과 뺄셈을 하고 있을 때, 김경주 씨가 말을 잠시 멈추고 정면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쎄라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가 도움이라고 했다. 도움.
“엄마는 오랜 기간 동안 언니랑 둘이서만 살았어요."
"언제나 같이,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어서, 지속적으로 언니에게 세뇌당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그림을 빼앗아 갈 거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녀가 다시 말을 멈추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형사 소송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감방에서 오랫동안 갇혀 벌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민사 소송에서 피해자는 고액의 보상을 받기 원한다.
그러나, 가사 소송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상처 주는 일을 그만두고 변해서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서, 가사 소송은 어렵고 진이 빠진다.
나는 그녀가 사용한 ‘도움’이라는 단어가 예사롭지 않아 부담스러웠다.
그녀도 내 눈치를 알아챘는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변호사 업무가 꼭 법적 소송만을 대리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중재(Arbitration)의 역할을 맡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물론 있다.
기업이나 사업체가 계약서를 작성할 때, 당사자간에 분쟁이 발생할 시에 어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항목을 문구로 삽입한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같이 하면 갈등이 생긴다. 원래 갈등이란 부대끼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숱한 거래들 중에 분쟁은 일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법원에 가서 진을 빼기 싫다는 합리적인 생각이 중재 항목을 계약서에 빼놓지 않고 넣게 한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어떻게 중재를 맡길 것인지의 항목을 상호 동의하에 써넣는다.
그녀 정도의 부유한 고객이라면 중재라는 단어를 쉬이 떠 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가족 간의 다툼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저도 알아요. 이 문제가 대책이 없다는 걸.."
"이미 조언도 많이 받았었고, 별로 승산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녀가 잠시 말을 골랐다.
“오히려 언니분을 더 자극할 수 있어요.”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로펌이 돈이 아무리 궁해도 가망 없는 케이스는 가망 없다고 말해줘야 한다.
그녀가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쎄라가 제발 절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쎄라 같은 사람이 우리 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좋겠죠. 그러나, 어떻게?
정변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맞추다가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다 계획이 있는 듯하였다.
그녀는 언니와 진수덕 화백이 살고 있는 뉴욕의 아파트 같은 층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계약을 했다고 한다.⠀⠀⠀⠀⠀⠀⠀⠀⠀⠀⠀⠀⠀⠀
“사실 구입을 망설였는데, 저번에 우리 집에 쎄라가 방문하고 난 뒤에 결정했어요.”
나 때문에?
“쎄라가 그 집 매매를 마무리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집에 살면서 말이에요.”
살면서?
“네?”⠀⠀⠀⠀⠀⠀⠀⠀⠀⠀⠀⠀⠀⠀⠀
이번에는 정변도 나도 똑같이 동시에 되물었다. ⠀⠀⠀⠀⠀⠀⠀⠀⠀⠀⠀⠀⠀⠀⠀⠀⠀
그녀가 우리의 반응을 예상한 듯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 ⠀⠀⠀⠀
“언니는 카운슬링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고립되어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나와 세상에 대해 혼자만의 의심과 망상에 빠져 있죠.”
“섣부르게 변호사를 보내거나 하고 싶지 않아요.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을 자극만 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엄마랑 같이 있어서, 예측 못할 상황도 만들기가 싫어요.”
말을 조심스럽게 했지만, 언니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들렸다. ⠀⠀⠀⠀⠀⠀⠀⠀⠀⠀⠀⠀⠀⠀⠀⠀⠀⠀
“그러니, 쎄라가 지금부터 연말연시 두 달 정도만 그 아파트에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거기 살면서, 오가며 그냥 기색만 살피면 되어요."
"사람은 오가는지. 엄마가 어떠신지. 엄마랑 언니는 어찌하고 있는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언니 집을 방문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그곳에 머물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알아내도 괜찮아요.”
담담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 말을 이어 갈수록 갈라졌다. ⠀⠀⠀⠀⠀⠀⠀⠀⠀⠀⠀⠀⠀⠀⠀⠀⠀ ⠀⠀⠀⠀⠀⠀⠀⠀⠀⠀⠀⠀⠀⠀⠀⠀⠀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수임의 영역이 뚜렷하지 않은 요청을 덜컥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자기 마음대로, 나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나를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할 계획으로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타인이 포함된 일을 마음껏 상상하고, 그 자유로운 상상력을 이렇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
⠀⠀⠀⠀⠀⠀⠀⠀⠀⠀⠀⠀⠀
“ 글쎄요. 부동산 매매건을 빼고, 나머지는 제가 어찌할 영역의 일이 아닌 거 같아요.”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
“알아요. 쎄라. 이 제안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지. 제가 얼마나 실례하는 지도요.”
그녀가 그리 말해 주니,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일도 가사 소송을 위해 상담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법적인 조력 외에도 의외의 것을 요청하는 상황들을 많이 만난다.
어디에 같이 가주길, 가서 같이 만나 주기를, 무언가를 자신과 같이 하는 것들이다.
법적인 일 이외에도, 일상생활의 영역까지 함께 해 주길 바라는 요구 해 온다.
내 지옥 같은 현실을 내가 말해서 네가 다 알고 있고, 나는 홀로 가는 이 지옥이 너무나도 무섭다.
그러니, 부디 나와 일상에 아주 소소한 일이라도 동행 해 주지 않겠냐는 절규이다.
변호인이 심정적인 서포트를 주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변호인이 아니라 같은 피해자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 케이스 역시 부동산 매매는 핑계이고, 내가 그 아파트에 살면서 언니를 만나서 설득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를 위하여.
⠀⠀⠀⠀⠀⠀⠀⠀⠀⠀⠀⠀
"쎄라,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길 바라요.”
“내가 한 모든 말들을 계약서로 쓰고, 비용도 모두 미리 지불할 거예요.”
“무엇보다 쎄라한테 찾아온 내 심정을 이해해 줘요."
" 쎄라도 사람들 많이 만나 봤으니 알죠. 사람이 얼마나 절박하면 이러는 지를..”
그녀가 말을 잠시 멈추고, 시선을 천장에 두더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 ⠀⠀⠀⠀⠀⠀⠀
그러고는, 들고 온 가방에서 USB 하나를 꺼내서 책상 위에 놓았다.
진수덕 화백에 관한 자료들이라 했다.
“쎄라, 제가 과한 요구를 하는 거 알아요."
"쎄라가 거절해도 이해해요.”
다시 이전의 단정한 모습으로 서둘러 돌아온 그녀가 스스로를 수습하듯이 말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까칠한 화가의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 이해해요.”
“ 파일을 여기에 두고 갈 테니, 생각해 보고 연락해 주세요.”
“ 네, 그럴게요.” ⠀⠀⠀⠀⠀⠀⠀⠀⠀⠀⠀⠀⠀⠀⠀⠀⠀
“아파트는 맨해튼에 있어요. 쎄라도 뉴욕에서 로스쿨 다녔다고 들었는데.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그곳에서 로스쿨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다.
“아파트가 리버사이드에 있어서, 뷰도 좋아요. 조지 워싱턴 브리지도 보이고..”
눈이 둥그레져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주소가..?”
“360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내가 로스쿨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던 동네다.
그리고, 여전히 전 남편이 다시 결혼을 하고,
다시 새로운 아내랑 살며,
늘 그러하듯이, 강가 공원으로 산책 가기 위해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는..
그 코너에 있는 아파트였다.
#사진과 글은 스스로 찍고, 썼으며,
#첫 두 그림은 피카소, 세번째 그림은 에디 호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