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화) 나라는 습관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고 그녀에게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이주일 정도 지난 후였다.
그 이주일 동안 정변은 한국인 유학생이 연루된 형사사건에 관여하게 되어 바빴다.
형사 사건 경험이 부족한 정변은 이 동네에서 형사사건 전문으로 유명한 맥 허트 변호사랑 같이 공동변론을 맡았다.
맥 허트 변호사는 형사 출신이라 경찰 내에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의 경찰들은 그 어느 조직보다도 끈끈한 동료애와 그들만의 동료의식을 공유한다.
그런 배경 때문이었는지, 그는 유달리 굵직굵직한 사건을 잘 맡고, 또 이겨낸 경력이 많았다.
정변은 맥 허트 변호사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전략을 짜고 판례를 찾으며 온갖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역할은 맥 허트 변호사를 보좌하는 일이겠지만, 사실상 정변 홀로 분투하며 전담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재판이 열리면, 맥 허트는 정변의 피땀 눈물로 작성된 케이스들과 논리를 가지고 재판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노련하게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돈을 벌 것이다.
물론 정변의 수고는 값진 경험으로 상환될 것이다.
그러나, 값진 경험은 경험에만 방점이 있어 돈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Winter is coming!”
며칠 만에야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정변을 보자, 내가 외쳤다.
그간 우리 사무실에는 새로 수임된 사건이 없어서 무척이나 한가로웠다.
추수감사절을 목전에 둔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휴가까지는 원래 늘 한가한 시즌이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 곳의 비싼 사무실 렌트를 포함하여 온갖 비용이 걱정되었다.
정변의 그 네모란 얼굴을 쳐다보니까,
'돈 되는 사건을 수임해 오란 말이닷!'.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용솟음쳤다.
그러나, 그 말은 삼켰다.
대신 가능한 최대한 무덤덤한 투로 이제 기술이나 배울까 생각 중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런 형편이라 화가 안주인께서 우리 사무실로 전화를 했을 때, 정변과 나는 무척 반가웠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단정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그녀가 우리 사무실에 진짜로 나타났을 때엔.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널찍한 정변의 방에서 서로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에, 그녀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 케이스는 세라가 맡아줬으면 해요. 세라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변이 대표선수인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가만.. 나..'만'..?
상담절차에 따라 메모를 작성하던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의 엄마가 어떻게 되셨는지 알고 싶어요.”
“못 뵌 지가 삼 년도 넘었고, 마지막으로 전화통화를 한 것도 이년이 넘었어요.”
“그 이후로 통 어떻게 된 것인지, 안부도, 소식도 알 수가 없어요.”
실종되셨다는 말인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내 얼굴을 스쳤다. ⠀⠀
그녀가 내 기색을 보더니, 찬찬히 설명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고 정돈된 발성의 내레이션이 지난 50여 년간의 긴 이야기를 훑었다.
그녀와 엄마인 화가 진수덕, 그리고, 그녀의 언니 이정선 씨에 관한 서사였다.
언니의 이름은 이정선이고, 그녀는 김경주이다.
진수덕 화백은 첫 결혼에서 이정선을 낳고, 짧은 결혼생활을 끝냈다.
그 후 오랜 기간 독신으로 지내다가 김경주의 부친을 만났다.
그와 결혼한 후에는 그의 후원 아래 생활의 안정을 찾고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 ⠀⠀
워낙 이정선이 어릴 때에 헤어져서, 이정선의 친부에 대한 기억은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때는 진수덕 화백이 유명해지기 전이고, 당시에 겪은 가난과 생활고에 대한 기억이 앨범 속의 사진처럼 몇 가지 남아 있을 뿐이다. ⠀⠀⠀⠀
이정선과 김경주는 나이 차이가 십 년 이상이 나서 서로 깊이 있는 내밀한 수준의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는 되지 못했다.
그래도 진수덕 화백이 워낙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집안 분위기가 훈훈했기에 나름의 자매애를 유지했다.
그러던 그들의 사이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김경주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
김경주는 대여섯 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홀리듯이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마당가에서 발견한 거미줄에 반해서 하루 종일 거미줄을 들여다 보았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 거미줄을 그렸다.
그다음에는 거미줄에 걸려 죽은 곤충들이 애틋하여 날마다 그것들을 기록하듯이 그렸다.
그런 그녀의 관심은 점차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그 영역을 넓혀 갔다.⠀⠀⠀⠀⠀⠀⠀⠀⠀⠀⠀⠀⠀⠀⠀⠀⠀⠀⠀⠀⠀
이정선 역시 미술에 재능을 타고났고, 열망과 관심이 있어서 그림을 시작했다.
언니의 주제는 엄마의 그것과 같아서 꽃과 자연이었다.
그러나, 이정선의 그림은 엄마의 후광 덕을 본다는 미술계의 평과 함께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진수덕 화백의 그림이 가지는 그 오묘한 분위기를 이정선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
진수덕은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아이들이 선택하고 하는 일을 열렬히 응원하는 엄마였다.
하지만, 그림에 관하여서는 그 누구가 누구를 이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는 오직 자신만이 열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 어떤 조언도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
김경주가 거미줄에 빠져서 미친 듯이 그려 댈 때, 진수덕은 그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가끔씩 몰두하는 김경주에게 다가와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아가, 그게 그리 이쁘냐 “라는 말과 함께.
점차로 김경주의 그림의 대상이 일그러진 사람의 몰골이나 상체가 없는 다리, 다 떨어진 사지육신을 그림의 영역을 넓혀 갔을 때에는 한참을 그림을 들여다보고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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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덕 화백의 조력자 역할을 단단히 하던 부친이 김경주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다.
그때부터는 언니가 아버지가 하던 모든 일들을 이어받아서 처리하게 되었다.
진수덕 화백은 훌륭하고 유능한 화가였으나, 현실적인 면에서는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경제적인 개념이 없어 셈에 약했으며, 매사가 즉흥적이라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돈된 마인드가 없었다.
특히나, 그림 작업할 때에는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로 몰두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화백의 일상이 유지되지 못했다.
그렇게 언니가 엄마의 매니저로 공적이며 사적인 영역에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고 몇 년이 흘렀다. 점점 언니는 엄마의 부와 명예 덕에 누리는 혜택에 대해서 되뇌며, 김경주에게 자신이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김경주는 예전에는 아빠에게 타 쓰던 돈을 언니에게 받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김경주가 쓰는 일상적인 지출에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내주었다.
하지만, 많지 않은 금액이라도 전시회를 열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데 돈을 사용하면, 그 비용에 대해 따지고 들면서 깐깐하고 인색하게 굴었다.
김경주가 전시회를 하는 시기에는 진수덕 화백의 스케줄을 조정해서, 엄마가 전시회에 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알았을 때에는 이해했다.
언니가 집안일을 돌보고 엄마의 조수로 온갖 일처리를 맡아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언니의 음습함은 엄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느라 자신의 세계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거라고 여겼다. ⠀
그렇지만, 언니에게 엄마의 그림자만 같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화려한 세계도 또한 원 없이 함께 했다.
빛과 그림자는 비율의 문제일 뿐, 늘 그렇듯이 패키지였다.
진수덕 화백의 독특한 그림과 개인적 카리스마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녀의 전시회에 몰려들었다.
누구나 만나고 인터뷰하고 싶어 했고, 누구나 화백의 그림을 소장하고 싶어 했다.
언니는 엄마와 늘 동행하며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영광을 함께 했다.
어느 시기가 되자, 진수덕 화백은 자신이 그린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소량만 그렸다.
그렇게 여러 번 고쳐가며 그린 그림을 자식처럼 아껴서 별로 팔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림값은 더욱 치솟았다.
도둑이 여러 번 집에 들었다.
그리고, 한 번은 몇 겹의 보안을 뚫고 들어 온 도둑이 세 점의 그림을 훔쳐가는 데 성공했다. ⠀⠀⠀⠀⠀⠀⠀⠀⠀⠀⠀⠀⠀⠀
진수덕 화백이 미국으로 이주를 결정한 것은 도난품인 그녀의 그림들이 버젓이 매매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다.
명백히 도난당했고 진수덕 화백의 것이 틀림없는데도, 도난당한 그림을 비싼 값으로 산 선의의 피해자를 우선한다는 법원에 판단은 절망적이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겪는 동안, 자매의 관계는 다른 가족들과 비슷한 형태로 유지되었다.
김경주는 그 기간 동안 결혼과 출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아에 치여 작품 활동을 접었었고,
진수덕 화백은 오랫동안 여행을 한 후에 새로운 주제인 자연 속의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늘 일정 정도의 음침함과 눅눅한 질시가 늘 있긴 해도 그럭저럭 잘 유지되던 그 관계는 세월과 더불어 균형을 잃었다. ⠀⠀⠀⠀⠀⠀⠀⠀⠀⠀⠀⠀
한국사회에서 진화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서서히 멀어졌고, 진화백의 새로운 주제는 예전 꽃만큼 인기가 없었다.
연로해진 그녀는 작품 활동을 예전같이 왕성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언니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경주가 그녀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하고부터 였다.
그 무렵부터, 언니는 진수덕 화백과 함께 점점 둘만의 고립된 생활을 만들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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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은 스스로 찍고, 썼으며,
#첫번째 그림은 피카소, 두번째 그림은 에디 호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