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화) 나라는 습관
용건을 마친 김경주 씨가 조용히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정변이 따라 나가서 한참을 있다가 들어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멍하게 있다가, 정변의 모습이 보이자 퍼붓었다.
“미친 거 아냐!”
“내가 왜 뉴욕까지 가서 몇 달을 지내냐고.."
"아니, 언니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자기 입으로도 말했잖아."
"여기는 로펌이라고! 사회복지사나 병원이 아니라.”
내가 뭐라 뭐라 계속 말을 하자, 정변이 가만히 쳐다보다가 대답한다.
“두 달이야. 그리고, 부동산을 구입했다잖아."
"자녀도 없는 사람의 Estate Sale(사망한자의 유산을 처분하는 것)이래."
"그 집을 살 때 집 안에 있는 물건까지 다 사서, 정리할 것이 많아.”
차분한 그의 말투에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돈이 많으니 그냥 버리면 될 일이라고도 했다가, 아니면, 정변이 직접 가서 처리하면 되겠다고 했다.
“돈이 많긴 하지. 그 집 다이닝룸에 걸린 진수덕 화백의 그림 하나면 그 아파트 사고도 남지.”
“내가 연말을 맨해튼에서 보낸다? Not bad!”
정변이 한층 더 차분한 일상의 톤으로 내 말을 또박또박 맞받아쳤다.
말을 멈추고, 그를 노려 보았다.
정변도 팔짱을 끼고, 내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암튼, 나는 안 하는 걸로.”
몸을 돌려 그를 외면하면서 내 결론을 잘라 말했다.
“왜? 쎄라”
정변이 물었다.
“이런 일까지 할 거였음, 너의 로펌에 들어오지 않았지. 나는 이 방에서 혼자 페이퍼웤 하는 게 좋아서, 그래서, 계속 여기서 일 한 거야.”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라는 말은 삼켰다.
“나도 알아, 쎄라가 혼자 일 하는 걸 좋아하는 거.”
“밥도 혼자 먹은 걸 좋아하지.”
“시간이 날 때면, 늘 창문 밖만 바라보고”
“주말에도 혼자 집에서 티브이만 봐”
"아무도 안 만나고! 그저 사람들을 피하기만 하지”
정변이 나직나직하게 읊조렸다.
이게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힘줄이 터질 듯이 힘을 주고 정변을 노려 보았다.
정변도 눈에 힘을 주고, 내 시선을 맞받았다.
“뭐가 문제지? 쎄라”
“Estate Sale처리를 의뢰받았고, 그 장소가 뉴욕이고.. 그래서 그곳에 출장을 가서, 머물면서 처리하는 건데”
정변과 나는 꽤 오랫동안 말다툼을 벌였고, 서로를 말로 몇 번을 쳐 죽였다.
이렇게 싸울 때면,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며 싸웠다.
전투력으로 충전되고 배가된 총기가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언어를 더 정확하고 명료하게 구사하게 한다.
“정변, 왜 이래? 그녀가 원하는 게 부동산 건을 다루는 걸까? 저렇게 막막하고 광범위한 가정문제 가져온 클라이언트들이, 두고두고 얼마나 말이 많고 기 털리게 하는 줄 몰라?”
“수임계약서에 부동산 처리 껀만 올리면 되는 일이야.”
“그러면 네가 가. 뉴욕”
“왜? 내가? 쎄라는 뉴욕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
그다음부터는 논리도 근본도 없는 감정싸움이었다.
허를 찔린 사람이 있는 대부분의 논쟁이 그러하듯이, 허둥지둥한 말들이 이곳저곳으로 방향을 틀며 마구 달렸다.
나는 정변이 명예라는 허명을 쫒아서 실상의 무능을 감추고 있다고 그를 비난했다.
사무실을 이리 비싼 곳에 렌트를 한 그의 허영도 힐난했다.
또,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작은 흠들도 죄다 끄집어내어 디테일하게 비난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변은 침묵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하는 어느 말에도 자극받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더 약 올랐다.
“.......”
“.......”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뭐가 두려운 거지? 쎄라”
대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 같지 않았다.
정변은 나를 쳐다보던 눈에 힘을 풀더니 나직이 속삭였다.
“... 겁.. 겁.. 겁보...”
그러고는 내가 미처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방을 나가 버렸다.
퇴근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왔다.
페어팩스로 돌아가는 전철 시간이 넉넉히 남아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언덕 밑으로 요트를 세워 놓은 피어(Pier)가 보였다.
거리엔 점점 짧아만 지는 햇빛을 한 오라기도 놓치지 않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시간에 거리를 나와 본 적도, 이리 걸어 본 적도 없는 거 같다.
북적이는 인파에 홀로 어색하다는 비로소 들었다.
정변과 함께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같이 가 본 적이 있는 있는 피어 근처에 카페가 보였다.
잠시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집어 올까 하다가 그냥 다시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 주면 열심히 연습하는 정변이었다.
그래도, 겁보라는 말을 겁쟁이로 정정해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찔리니까.
#첫 번째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
#두 번째 그림은 앙리 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