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6화) 나라는 습관
해 질 녘이 되면 아파트를 나와서 랭의 다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향했다.
걸어서 10여분밖에 안 되는 거리에 큰 학교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한 일이었다.
학교 카페테리아는 세계 어느 구석을 가더라도 그 맛없음이 만국 공통이다.
그래도, 샐러드와 빵조각의 맛은 그 하향평준화의 신화를 비집고 평타 이상을 늘 쳐내는 것이라 먹을만했다.
학기가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바쁜 랭이 더욱 바빠 보였다.
그녀가 서두르지 않고 일을 끝내고 나를 만나러 오게, 따로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내가 동 아시안 도서관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 지하에는 온갖 한국 책들을 그득했다.
그것들을 읽으면서 있으면, 랭이 자기 할 일들을 마치고 나타났다.
무엇을 준비하거나, 시험을 대비용이 아닌, 재미로 책을 뒤적여 읽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진수덕 화백에 관한 부담스러운 업무만 아니면, 이런 나날이 계속되는 삶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석조건물의 도서관은 천장이 높고 방열이 잘 안되어서 끊임없이 히팅이 나오고 있었다.
기껏해야 각 분야의 개론인 입문서 101을 가르치면서, 살 떨리게 비싼 등록금을 받는 아이비 대학의 돈은 대부분 이렇게 난방비와 전기료로 대부분 흘러가는 것 같다.
물론, 쟁여 놓는 이익금 외에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은 그 학교에 다니는 비용을 이리 비싸게 청구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서 랭이 나를 쳐다보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동그란 얼굴, 동그란 머리통, 동그란 어깨, 몸의 어느 것 하나 모난 부분이 없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가 지어졌다.
펀드를 받고 시작했다고 해도 랭이 이렇게 비싼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랭은 시민단체에서도 독특한 존재였다.
시민단체의 복지사와 자원봉사들이 활동하고 지원하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힘든 곳이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가족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렇게 갈등이 고조되면, 가족 내의 약한 이들이 취약해지고,
그중에 가장 크게 희생되는 대상은 아이들이다.
스트레스는 흘러 흘러 가장 약하고 여린 곳을 향해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나도 학업적 성취를 이루고, 좋은 학교에 진학해 안정된 직장을 얻는 아이들도 간혹 드물게는 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힘든 것을 이루어 내고야 만 아이들은 그곳을 떠난다.
남아서 계속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부모와 같이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오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고, 어린 나이에 노인이 되어간다.
하지만, 랭은 달랐다.
랭은 그곳에서 자라고도 많이 배웠으며, 그 배운 것을 가지고 자신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의미 있는 일이고 보람도 느끼긴 하지만,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박봉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에는 의외로 부유하고 좋은 배경을 가진 고학력의 사람들이 많다.
혜택 받은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들이, 자신이 누렸던 것을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을 위한 단체에서 일을 한다.
진짜로 잘 자라서 자신이 누린 것에 대한 감사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에 나는 아마도 그들이 자신의 장래를 위한 정치적인 야심으로 그런다고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음을 같이 일을 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야심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겪어 보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정변도 그렇게 잘 자란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그들의 복되고 어진 마음을 행동으로 실행하게 만든 데에는
그들에게는 학비론이 없다는 것이 제일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깨에 지고 시작하는 수십만 불의 학비론이 없다는 건,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데 치명적인 배경이 된다.
그런 윤택한 배경의 사람들 사이에 랭은 유일하게 자신의 출신 배경과 활동하는 지역이 같은 사람이었다.
랭도 저소득층 출신이니 학비론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랭의 배경으로 공부를 잘 해내기란 쉽지 않다.
어린 부모의 걱정을 같이 지고 사는 아이가 학문의 모호함을 집중해서 터득해 간다는 건,
속세의 한 복판에서 도를 닦는 일이다.
그러나 랭은 해냈고, 다시 돌아왔고, 자신이 자란 환경을 위해 일한다.
랭은 공기처럼,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그곳의 문화와 그곳에서 통하는 화법을 알았다.
랭은 그곳의 단체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모두의 고리와 같았다.
랭이 와서 가만히 내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추수감사절 전에 하는 수업을 모두 마쳤다며 홀가분하게 웃는다.
랭이 살고 있는 곳은 학교가 대학원생들에게 제공하는 Carlton Arms이라는 숙고였다.
각 층마다 두 개의 유닛이 있고, 한 유닛당 대여섯 개의 방들과 공동으로 쓰는 부엌과 샤워실로 되어 있다.
오지랖 넓고 부지런한 그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유닛에서 추수감사절 동안 남아있을 학생들을 위해 터키를 굽기로 했단다.
커다란 터키 한 마리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적을 추수감사절 기간 내내 만들 수 있다.
시험을 이주 앞둔 추수감사절의 나흘 휴가는 최후의 만찬 같은 휴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공동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책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해가며, 쉬엄쉬엄 준비를 했다.
랭은 마트에서 사 온 이미 손질된 터키를 포장만 벗겨서 그대로 오븐에 앉혔다.
디저트는 초대한 애들이 하나씩 사 오기로 했다.
나는 같이 먹을 매쉬포테이토와 크랜베리 소스를 만들었다.
미국 요리는 요리랄 것이 없는 요리이다.
통조림을 사고 샐러드용 야채만 사면 되었다.
초대한 애들은 랭 덕분에 오가며 인사를 해서, 모두 안면이 있는 아이들이다.
돈밥통이라고 부르는 세명의 청춘들인데, 그들은 모두 법대에 다녔다.
어디나 그러하듯 신입이 온갖 코스프레는 다한다.
내가 변호사인지 모르는 이 돈밥통도 그러하다.
요새 전주인이 남겨 둔 옷으로 칠갑을 해서 다니느라, 묘해진 내 분위기가 그들의 허세를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페어팩스에서 늘 입고 다니던 검은 정장이나 무채색 계열의 옷들은 유지하기 편했고, 무엇보다 무난했다.
가볍지는 않지만, 도드라지지도 않아서 군중 속에서 진지한 익명으로 숨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그런 분위기가 없어져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전주인이 쌓아 놓고 떠난 옷들이 일으키는 이런 소란스러움도 나름 재미있었다.
내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돈밥통 청춘은 오늘 아주 수다스러웠다.
여자 앞에서 떠는 세 남자의 허세가 절정을 향해 달린다.
세상의 시름과 정의와 공정의 짐을 지고 가느라, 지금 그들의 어깨가 빠질 지경이란다.
당장의 시험이 발목을 잡지만 말이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까지 나름 늙을 만큼 늙은 그들이지만,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애처럼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들의 허풍과 허세에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가며 웃어 주었다.
그러다가, 슬슬 싫증이 날 때 즈음 피식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돈(Don)아, 니 이름은 한국말로 머니(money)야"
"밥(Bob)아 니 이름은 한국말로 볼 오브 라이스(bowl of rice)야"
톰이 순서를 기다리다가 지 이름을 안 부르니, 나선다.
"나는?"
"너는 톰이지."
"컴온~뭔가 있을 거야"
"톰이라니까"
"컴온~분명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라고!"
무슨 말을 해도, 컴온으로 시작해서 컴온 가이(Come on Guy)다.
그가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왜 한국요리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너네 명절에 왜 한국요리를 하냐고 되물었다.
컴온~
잡채를 먹어 보았는데, 엄청 건강식이고 맛있더란다.
내가 외쳤다.
"컴온, 그거 손 더럽게 많이 가!"
컴온 가이가 컴온을 몇 번을 외치는 동안, 돈과 밥이 다시 죽상으로 첫 시험 이야기에 코를 빠뜨린다.
자신이 지나온 시절의 트랙을 밟고 있는 젊음을 보면,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드가 된다.
서투름이 늙은 그들을 귀엽고 사랑스럽게까지 만든다.
아까부터 세 녀석들이 다 호시탐탐 내 붙은 원피스를 힐끔씩 쳐다보는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마저도 한창때인 그들의 혈관에 피 대신 흐를지도 모를 정액때문이려니하고 이해가 갈 정도다.
이렇게 생기가 가득하고 재기에 넘치는 젊음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에게 안전한 단어만 조심스럽게 골라하는 재미없는 인간형으로 변한다.
더 이상의 위트 넘치는 말도, 유머도, 더 이상 입에 안 올릴 때면, 졸업을 하게 되고 말이다.
지난 세월은 집 한 채 값의 빚이 되어 그들의 어깨에 걸쳐지고,
그 대가로 받은 법률 학위로 월가나 어느 큰 보험회사의 숱한 사내변호사 중 하나가 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큰 고객이 몰면 모는 대로 몰리면서, 몇 년간 돈만 벌다가 어느 날 쓸쓸해질 것이다.
회사 측의 과실이 분명한 케이스인데도, 장애가 되어 나타난 초라한 한 개인을 상대로
기를 죽이려 우르르 병풍으로 나타난 날일 수도 있고,
갚아도 갚아도 묘하게 명목만 바뀔 뿐, 변하지 않는 액수에 절망한 날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다 버리고 은퇴해 버린 친구의 소식을 들은 날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쉬면서 창밖을 보았다.
건물들 사이의 계단이 서로 사다리 타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오가며 음식을 자꾸 돈밥통 트리오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오늘은 터키나 먹고 쉬는 걸로.
아무리 벌어도, 그리고, 아무리 갚아도, 갚아도 갚아지지 않을 학비론은
니 나이가 40고개를 넘을 즈음 쫑이 날터이니, 애 닳아하지 말지니.
미국인이라 애 같은 것은 닳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만인가.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별 다르게 살피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이야기를 해도 진이 빠지지 않고,
잠잘 녘에 마시는 허브티처럼 몽골몽골 졸리는, 놓쳐도 좋은 수다를 떠는 게.
이곳에 온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모든 그림은 살바토르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