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리는 사람이 이끄는 감정싸움

(소설 17화) 나라는 습관

by 쑥과마눌

정변이 전화를 한 것은 추수감사절 휴가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곳에 온 후로, 저녁이 되면,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창가를 비집고 들어 오는 강 바람소리를 들었다.


내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창 밖으로 빛나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의 야경이었지만,

늘 넋을 놓게 하는 것은 그렇게 들어 오는 여러 가지 바람 소리였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은 꽃으로도, 잎으로도, 공기로도, 바람으로도, 변하여,

우리 곁에 머무는 것 같았다.


바람이 서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귀 기울이는 사람 앞에서,

자신들의 사연을 앞다투어 늘어놓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참이라, 갑자기 울려진 핸드폰 진동에,

나는 순간 식겁을 하였다.


download.jpg

정변의 이름이 휴대폰에 떴다.

정변에게는 온갖 감정들이 딱 입에 올려 말하기 치사할 만큼의 양으로 있었다.

화도, 짜증도, 섭섭함도, 각각의 양은 적어도, 총량은 무시 못 할 만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내가 한 일을 이메일로 보고 했을 뿐,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사무실에서 늘 보는 사이라, 평상시에도 서로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전화기에 뜬 그의 이름이 낯설어서 잠시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FBI agent, Sarah, speaking”

“큭!”

웃긴, 웃기냐.

“쎄라, 여전하구나”

웃음을 얼른 정리하면서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밝다.

“뭐어가?”

내 무뚝뚝한 반응에 그가 정색을 한 목소리로 물었다.

“쎄라, 어떻게 지내?”

네가 나는 여전하다며?

“집 잘 지키고 있어. 아무도 없지만.”

“김경주 씨가 그러는데, 원래 진수덕 화백이랑 언니랑은 그렇게 스케치 여행을 잘 다니 신대. 아프리카도 가고..”

“저번 이메일에 벌써 말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나는 여기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야?”

정변의 말을 자르며, 퉁명스레 물었다.

“잘 지낸다며? 아주 예쁘게 하고 다니면서, 뉴요커들에게 패션이 뭔가를 보이는 중이라던데.”

랭이 뭐라 했나 보다.

“....”

어이도 없고, 답답하니 할 말도 없어서,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

정변도 따라 침묵했다.

“쎄라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아무 말 안 하는 데도 막 한국말로 욕하는 느낌이 들어”

귀신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서서히 내뿜었다.

“쎄라, 뉴욕은 어때? 좀 많이 돌아다녔어?”

“관광하러 왔니?”

정변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면서, 시큰둥하게 딴 소리로 받았다.


그래, 난 이 건물 안에만 있다.

이 건물 안에서 있으면, 나는 안전하다.

그 어떤 과거의 인물들을 우연히 만날 위험이 없다.

랭을 만나러 나갈 때가 되면,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나간다.

랭과 함께 머무는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 공간에서는 활기차다가,

다시 길바닥으로 나오면, 나느 거북이가 고개를 등껍질에 넣듯이 몸을 움츠리고 다닌다.

랭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으니 정변도 알고 있으리라.

랭과 정변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홀로 억울해졌다.


왜 내가 좀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상처 받은 사람이면 왜 그 상처를 직시해야 하는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현명한 거지.

니들이 뭘 알아?

속으로 정변에게, 랭에게, 그리고, 나를 위한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 속사포처럼 퍼붓었다.

각각의 생각에 빠져, 전화기를 붙들고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이 서로의 침묵을 공유했다.


그러다가, 불쑥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정변, 내 생각인데, 나는 변호사 일보다 몸을 써서 하는 일이 적성인 거 같아. 이곳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피곤해서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챙겨 먹게 되네. 이참에 전직을 해 볼까 고민 중이야”

“전직?”

“응, 직업을 바꾸는 거 말이야”


정변이 다시 침묵했다.

정변은 확실히 전화로 어필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나마 용건을 말한 대목이 있어도 침묵이 반이다.

랭은 정변이랑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 눈치던데, 참으로 사랑의 힘은 크다.

나는 슬슬 통화를 마무리할 분위기를 풍겼다.

정변에게는 온갖 감정들이 딱 입에 올려 말하기 치사할 만큼의 양으로 있었다.

화도, 짜증도, 섭섭함도, 각각의 양은 적어도, 총량은 무시 못 할 만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내가 한 일을 이메일로 보고 했을 뿐,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사무실에서 늘 보는 사이라, 서로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전화기에 뜬 그의 이름이 낯설어서 잠시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FBI agent, Sarah, speaking”

“큭!”

웃긴, 웃기냐.

“쎄라, 여전하구나”

웃음을 얼른 정리하면서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밝다.

“뭐어가?”

내 무뚝뚝한 반응에 그가 정색을 한 목소리로 물었다.

“쎄라, 어떻게 지내?”

네가 나는 여전하다며?

“집 잘 지키고 있어. 아무도 없지만.”

“김경주 씨가 그러는데, 원래 진수덕 화백이랑 언니랑은 그렇게 스케치 여행을 잘 다니 신대. 아프리카도 가고..”

“저번 이메일에 벌써 말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나는 여기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야?”

정변의 말을 자르며, 퉁명스레 물었다.

“잘 지낸다며? 아주 예쁘게 하고 다니면서, 뉴요커들에게 패션이 뭔가를 보이는 중이라던데.”

랭이 뭐라 했나 보다.

“....”

어이도 없고, 답답하니 할 말도 없어서,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

정변도 따라 침묵했다.

“쎄라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아무 말 안 하는 데도 막 한국말로 욕하는 느낌이 들어”

귀신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서서히 내뿜었다.

“쎄라, 뉴욕은 어때? 좀 많이 돌아다녔어?”

“관광하러 왔니?”

정변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면서, 시큰둥하게 딴 소리로 받았다.

그래, 난 이 건물 안에만 있다.

이 건물 안에서는 그 어떤 과거의 인물을 만날 위험이 없다.

랭을 만나러 나갈 때도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나간다.

랭과 함께 머무는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에서는 활기차다가,

다시 길바닥으로 나오면 거북이가 고개를 등껍질에 넣듯이 몸을 움츠리고 다닌다.

랭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으니 정변도 알고 있으리라.

랭과 정변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홀로 억울해졌다.

왜 내가 좀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상처 받은 사람이면 왜 그 상처를 직시해야 하는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현명한 거지.

니들은 뭘 알아?

속으로 정변에게, 랭에게, 그리고, 나를 위한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 속사포처럼 퍼붓었다.

각각의 생각에 빠져, 서로의 침묵을 공유했다.

그러다가, 불쑥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정변, 내 생각인데, 나는 변호사 일보다 몸을 써서 하는 일이 적성인 거 같아. 이곳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피곤해서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챙겨 먹게 되네. 이참에 전직을 해 볼까 고민 중이야”

“전직?”

“응, 직업을 바꾸는 거 말이야”

정변이 다시 침묵했다.

정변은 확실히 전화 타입이 아니다.

그나마 용건을 말한 대목이 있어도 침묵이 반이다.

랭은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 눈치던데, 참으로 사랑의 힘은 크다.

나는 슬슬 통화를 마무리할 분위기를 풍겼다.

download (10).jpg

그때였다.

정변이 조만간 뉴욕으로 올라오겠다고 말을 한 것은.

“왜?”

의아해서 내가 물었다.

“왜..?”

정변이 내 물음에 물음으로 반응하더니, 명료한 대답이 들려왔다.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내 CoWorker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귀신도 안 무섭고 미친 사람도 안 무서운데, 길거리는 무서워 혼자 못 다닌다고 해서, 하드 트레이닝을 시켜야 할 것 같아서고..”

또 시작이다.

랭하고 짰나보다.


“둘째는... I feel something is missing....And...I...I miss it”




#그림은 모두 살바토르 달리


이전 16화동그랑 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