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8화) 나라는 습관
정변과 통화를 마쳤을 때,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해서 갸웃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답답해 뵈는 나라는 인간을 개조해서 갱생의 삶을 살게 하자는 것이겠지.
그런데, 두 번째 이유는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았다.
무얼 missing 한다는 말인지.
그간 랭이랑의 관계가 진척되어서 전화로만 대화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말인지.
그렇다면, 왜 it을 쓰고 her를 쓰지 않았는지.
정변과 통화를 할 때에는 미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뉴욕으로 올라온다는 사실에 일단 놀라고 정신이 팔렸다.
이 곳에 정변이 등장한다면, 이제 조금씩 안정감을 가져가던 마음이 균형을 잃을 것이다.
그 특유의 존재감으로 나를 들볶을 것 같다는 걱정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가 했던 다른 말들에 대해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 올랐다.
랭에게 귀띔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잠깐 망설였지만,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정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이 아파트 건물 안에만 갇혀 지내는 것 같았다.
스스로도 그런 사실에 슬슬 불쾌해지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감옥은 대부분 스스로가 만든다.
그중에 지은 죄 없는 사람이 스스로 만드는 감옥이 제일 서글프다.
창 밖의 야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나는 진품을 감별하는 사람처럼 세세히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와는 다른 풍경을 알아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바람소리 대신에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곧장 샤워를 하고 최대한 차려입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일층 짐에서 운동하는 대신, 건물 밖의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로 했다.
아파트의 로비를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 거리를 잠깐 걷다가 들어오고, 다시 좀 더 걸으러 밖으로 나갔다.
반복적으로 계속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했다.
머릿속으로 전남편을 마주쳤을 때, 벌어질 갖가지의 일들이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들처럼 펼쳐졌다.
상황별로 주고받을 대사들을 머릿속으로 썼다가 지웠다가 외쳤다가 속삭였다가 여러 번 하였다.
파티룸에 상주하는 이 건물 공주파 할머님들 중 하나가 아까부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벌써 한 바퀴를 돌고 와서, 로비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할머님이 예의 그 공주 화법을 시작했다.
자신은 딱히 나를 귀찮게 할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을 건단다.
그러면서, 자신의 폰이 이상한 거 같지 않냐며 내게 폰을 보여준다.
앱을 까는 법이 알고 싶은가 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앱을 깔아 주기를 원한다.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고, 그러다가 로비로 잠깐 들어왔다.
그러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할머니들이 번갈아 가며 폰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이 구역의 호구로 자리매김을 단단히 한 모양이다.
걸으러 나갈 때마다 조금씩 전남편과 살았던 블록 쪽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이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어디를 가든 그의 집과는 반대방향으로만 둘러 다녔다.
그러다가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기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와 내가 부부일 때 함께 들렸던 한국인이 하는 델리에도 들렸다.
그곳 주인아저씨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 오직 머리카락만 희끗하게 변한 상태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보아도, 예의 그 표정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전에 내가 즐겨 먹던 깍두기를 사기도 했다.
그 델리에서는 그의 아파트가 대각선으로 보였다.
순탄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생활이었다.
어느 하루, 남편이 미안하지만 이젠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했을 때까지.
그날도 그는 미안하지만..으로 말을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저 것 좀 가져다 줄래.
미안하지만.. 이 것 좀 네가 해 줄래.
그럴 때 쓰이던 미안하지만.. 화법이 부부의 연을 끝낼 때도 별다른 톤의 변화 없이 사용되었다.
멍하니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고 서 있는 나를 두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짐을 들고나가려는 것을 보고서야, 그를 막아서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으니까.
내가 무심결에 그의 몸을 잡자, 그는 당혹스러운 듯 한 발짝 물러나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그에게 다가서서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가 동시에 자신의 몸을 그 거리만큼 이동해 내게서 멀어졌다.
전남편은 끝내 내게 미안하지만 같이 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사무적일 때에만 사용하던 영어로 내게 말하는 것과 나랑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전남편이 그렇게 집에서 나가고, 이틀 뒤에 그의 어머니가 스패니쉬 페인트공이랑 나타났다.
얼떨떨한 얼굴로 맞이하는 나를 힐끗 한번 보더니,
그녀는 페이트 공을 서둘러 전남편의 서재로 들여보내 놓고 거실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멀뚱히 계속 서 있던 내게 말했다.
“사흘 내에 나갔으면 좋겠어.”
“그보다 더 빠르면, 더 좋고.”
자신이 말을 마칠 때마다 동시에 자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할 말을 다한 듯, 일어나서 외투의 단추를 하나씩 천천히 채워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말없이 서 있는 내 얼굴을 가까이서 찬찬히 쳐다보았다.
나를 살피던 그녀의 눈에 어떤 광채가 반짝였는데,
그 번들거리는 눈빛에는 신남과 누를 수 없는 호기심이 섞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도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숱하게 무시하고 지냈던 시어머니의 어록이 아니라,
그때 보였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나랑 자신의 아들이 헤어진다는 사실에 기쁠 수도 있고, 신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내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현관문을 향하여 천천히 내 곁을 지나쳤다.
그리곤, 내 어깨를 살짝 부딪치고는 작지만 밝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번에는 그 정도 눈치는 있겠지?”
전남편의 가족은 뭐든 세트플레이였다.
언어도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로 사용했다.
사적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언어로 관계를 정의했다.
얼굴도 두 개로 환영과 천대, 속마음과 대외적 사교를 차별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이 한 역할을 맡아서 짝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 날처럼.
전 남편의 부모도 참아 온 것이 많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던 나를 향한 멸시를 아들을 위해 꾸욱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들에게 계륵 같은 며느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이곳으로 이민 왔던 칠십 년대의 한국과 그들이 기억하는 칠십 년대의 며느리처럼 완전히 무시하고 막 부리기에는 내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미국식의 한 개인으로 존중하기엔 고까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이 사농공상의 계급 대신에 머릿속에 세팅하고 있는 고귀한 학벌이 내겐 없었고, 내 부모님 역시 그들이 존중하는 전문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거슬린 것은 내가 그들이 무슨 뜻이고 무슨 의미로 그러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가진 계급의식을 인정하고 그것에 편입되려 하지 않은 것에 있다.
나는 알아서 움츠려 들지도 부족함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잘나지도 않았는데 독립적이라 묘하게 거슬리며,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 아는 거 같은데 모른 체하는 것에 분했으리라.
나 또한 그런 부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의 언짢은 속마음에 대하여 순간순간 느낌이 있었고, 끊임없이 감지되는 시그널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미국 생활의 수평적 구조에 잘 맞추어 매끄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면 깊숙이 가부장의 잣대를 가지고,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이중잣대가 제대로 쓰일 곳은 바로 그들이 맞이한 한국인 며느리라는 사실을 남편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설명 한다한들 이해도 못하려니와, 그 역시 그 집안의 공기와 같은 문화에 완전히 젖은 사람이 아닌가. 그 누구도 기존의 있었던 가족의 구성원으로 새로 편입되면서 투쟁이나 개혁을 외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혈연과 사랑으로 완강하게 결합된 가족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고 일부러 눈을 감았다.
나는 남편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니까.
나 역시 사랑해서 참았던 일이었다.
사랑해서 그들의 느끼는 강도가 어느 정도인 지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지난날의 장소를 다시 가보면, 골목마다 기억들이 똬리를 틀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한 구석의 사물도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않고 지나쳐질 수 없다.
모두 내가 비운 자리를 지키며, 다시 만나기를 벼르고 있었나 보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로 예전을 돌이켜 본다.
지난날들은 드라마의 에피소드다.
각각의 챕터에 강조되고 줌인되는 것들은 모두 가장 아픈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재생될 때마다 그 부분의 에피소드들은 분량이 많아지고 효과 장치들이 좋아져서 더욱 생생해진다.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확대 생산된 디테일이 많아져서,
이제는 실제 어떤 일이 가장 큰 상처가 되었는지, 누가 가장 아프게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둑이 무너지니까,
많은 일들이 그동안 참고 기다렸다는 듯이 순차적으로 일어났고,
상처는 복리이자처럼 굴러서 정신없이 연속적으로 새끼를 쳤다.
불행은 패키지로 온다.
견디는 일 외에는 어떠한 선택지가 없어서 불행은 더욱 불행하다.
뻔한 결말을 알고도 그 뻔한 파국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야 한다.
그 도중에는 절대로 무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오도 가도 못하는 버려진 위성처럼 불행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무기력하게 막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세월은 창 밖의 나무에게만 흘렀다.
전남편과의 사랑은 감은 태엽이 다 풀어진 시계처럼 식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대상에게로 향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사랑할 새로운 대상을 발견한 그가 지체 없이 나에게서 떠난 것이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는 사랑의 부재만 남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빛을 잃은 일상이 남는다.
그렇게 남루한 모습이 본래의 내 것인듯해서, 나조차도 내 편을 들지 않는다.
상처는 그렇게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주인이 되어서 나를 부렸다.
덮어 두었던 감정들이 전남편의 집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후부터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고일어났다.
켜켜이 오래, 그리고, 많이도 쌓여 있었던 각질처럼 하나씩 촉을 세우고 나를 향해 악을 쓰는 거 같았다.
날마다 걷고 또 걸으러 나갔다.
거리를 만나고, 기억들을 만나고, 쳐다보기 싫은 감정들을 만났다.
오랜 시간 잠복되어 있어서 질릴 만큼 많은 묵은 감정들이 무거웠다.
이제는 모두 떨구고 가볍게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그 집이, 그냥 길이고, 그냥 집이라는 걸 확인하고 돌아올 것이다.
온 신경이 온통 뒤죽박죽 한 감정들로 곤두서서 일층의 파티룸을 지나쳤다.
나갈 때, 언뜻 인디언풍의 옷을 입은 동양 여인의 모습이 보인 것도 같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주문처럼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했다.
그를 향해서, 나를 향해서.
그 집 앞을 다 걸어서 지나쳐서 코너에 다다랐을 즈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첫 그림은 에디 호퍼, 나머지 그림은 앙리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