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5화) 나라는 습관
랭에게는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멀쩡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살았던 생활공간에 머문다는 사실이 심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주인공이 갑자기 사라진 무대 위에 소품처럼 온 아파트의 구석구석에 쌓인 물건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전주인을 소개하고, 진행되었던 이야기를 계속하자는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는 전체적으로 별 다른 인테리어가 없이 심플했다.
모던한 검정 가죽 소파가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소파 뒤로 허드슨강의 뷰가 커단 한 면을 차지했고,
그 맞은편으로 커다란 텔레비전이 다른 한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놓인 벽면의 코너에는 수납장으로 쓰이던 작은 책꽂이가 있었다.
그 책꽂이 위로 한 때 이곳 인테리어 업계를 휩쓸었던 젠 스타일의 아이콘인 부처님 두상과 향을 피우는 향로가 놓였다.
부처님 앞에는 그녀의 젊고 아름다웠을 적 사진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그 조합이 추모라는 이름으로 앞 날을 알고 일부러 설치한 거처럼 보였다.
가버린 젊음을 기억에서 궁극에는 이렇게 떠나버릴 스스로를 추모하는 제단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구색을 갖춘 거실과 달리, 침실에는 매트리스만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부엌은 요리를 한 흔적은 커녕 사용한 일도 드물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냉장고와 팬트리는 텅 비어 있었고, 기본적인 용기나 컵 마저도 없어서 플라스틱 포크 정도만 굴러 다녔다.
집안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열어 살펴보다가, 전주인이 사용하던 옷장을 열어보고는 흠칫 했다. 전주인이 전체적인 집 분위기로 보여주던 미니멀리즘 콘셉트를 한방에 날릴 엄청난 옷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유품 정리사가 된 나는 그 규모에 먼저 기가 질렸었다.
침실 옆에 워크인 옷장의 입구에는 크고 넉넉한 사이즈의 검은색 옷들이 주르륵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 부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세면의 벽은 사이즈 0나 XS인 옷들이 넘쳐났다.
이십 대 여성이나 입을만한 파격적이고 패션너블 한 옷들이었다.
그런 옷들은 그녀가 사무실 겸 운동하는 곳으로 쓰던 방의 커다란 옷장에도 가득했다.
옷들이 가격표가 그대로 붙은 채로 요가매트 옆에, 아령 옆에, 그리고, 한창때 그녀의 사진 옆에 한 무더기씩 쌓여 있었다.
나는 우선적으로 관공서에 연락해서 필요한 일부터 하고,
그다음에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녀 앞으로 배달 오던 우편물과 구독을 끊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영업의 종말이었다.
그 한 문장을 전하면,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일들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마자, 나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물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김경주 씨는 목록에 적힌 몇몇 가구와 가전제품을 제외한 것들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사 와서 전 주인의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이래로 계속 드나들며 지켜보아도, 진수덕 화백의 아파트는 인기척이 없고 컴컴했다.
그래서, 늘 진수덕 화백의 아파트의 문이 보이게, 나무로 된 현관문을 손바닥만큼 열어 놓고 있었다.
마음이 부대낄 때면, 몸을 부대끼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바지런히 움직이며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집안을 구역별로 나누고, 한 구역씩 정해서 치우는 걸로 계획을 세우고 물건을 처분해 갔다.
현관에서 가까운 부엌에서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으로 내려가 운동을 하는 것과 저녁에 랭이랑 식사를 하는 시간만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물건을 정리하며 보냈다.
한 사람의 흔적이 내 손 끝에서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전주인이 남긴 각종 비타민과 프로틴 파우더, 다이어트 보조제를 담은 수많은 약통을 버렸다.
세어 보니 스무 개도 넘는 요가용 팬츠와 탑도 버렸다.
옷장마다 빼곡하게 차고 넘치는 옷은 정리해서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중에서 내가 입을 만한 몇 가지 겨울 옷을 챙겨서 남겨 놓았다.
뉴욕보다 따뜻한 페어팩스에서 캐리어 하나에 모든 걸 챙겨 넣고 온 지라, 곧 다가 올 이곳의 추위를 생각하면 옷이 부족했었다.
진수덕화백의 집이 내내 비어 있어서, 이곳에서 두 달을 가득 채워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입어보지 않았던 색깔과 스타일의 옷들이지만, 돌아갈 때까지 입고 다니기로 했다.
옷들이 다 작은 사이즈의 것이라 바지는 맞지도 않았고 그중에 원피스와 웃옷들만이 맞았다.
이게 모두 작은 가슴 덕이다.
용량이 가장 큰 사이즈로 쓰레기봉투를 사 와서 옷을 양껏 담아 놓았다.
그리고, 구세군을 비롯한 몇몇 기부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옷들을 가지러 오면, 봉지를 넘기고 수령증을 받았다.
커다란 검정 쓰레기봉투를 네 봉지씩 들고 로비에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기부단체의 차가 현관 앞에 도착하면 넘겨주기를 몇 번을 하였다.
이곳은 낮에는 복도에서 오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 한적한 아파트이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내가 커다란 검정 비닐 덩어리와 함께 로비에 나타나면,
드문드문 익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는 사람이 생겼다.
전주인이 구독하던 수많은 잡지 중에 시일이 많이 지난 것은 버리고,
최신 것으로만 몇 권을 가지고 짐 옆에 파티룸에 내려갔다.
그곳은 이곳에 사는 백인 할머니들이 주로 모여 있는 곳으로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늘 사람이 있는 장소이다.
할머니들은 그루프로 말아 완성시킨 듯한 간 헤어스타일을 하고, 아침 느지막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시간을 보냈다.
여자애들이 무리를 지어 위계를 나누고,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구분하며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들의 변함없는 행동은 여전한데, 그 사이 세월만 흘러 보내서 나이만 늙은 것 같았다.
온갖 촉을 세우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겉으로는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척 새침했지만, 지나다닐 때 마다 할 머니들의 시선이 따라다니는 게 느껴졌다.
들고 간 잡지를 내려 놓으며 마침 방에 있던 할머니들께 관심 있으시면 읽으시라고 했다.
다들 시큰둥하면서, 네가 원한다면 두고 가는 걸 허락한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물론 무척이나 흔한 땡큐도 듣지 못했다.
그 할머니들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뭐랄까.
한껏 멋을 낸 힙한 차림에 바닐라 라테를 한 손에 들고,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스무 살 남짓의 여자아이들을 생각나게 했다.
다른 한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힐끗거리며 의식하고 가는 그런 여자아이들의 노인 버전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늘 그곳에 모여 수다를 떨다가, 카드놀이를 하기도 하며, 명절과 이벤트를 함께 하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추수감사절에 먹을 케이터링 서비스를 메뉴를 고르며 심각하게 소곤거리도 하며, 낮게 웃기도 하고 있었다.
주류와 비주류를 그룹 안에서 나누고, 랭킹에 맞게 대하고, 은근한 눈빛과 나지막이 가십을 떠드는듯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살던 대로 사는 모습에 아직 기력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물건들을 비워내고 나니, 같은 아파트가 배는 넓어진 듯했다.
곳곳을 비워냈지만, 젠 인테리어의 부처님과 향로와 그녀의 사진액자는 그대로 두었다.
물건을 치우다가 발견한 그녀의 다른 사진들도 상자 하나에 모아 담아서 그 옆에 놓았다.
휑하니 넓어진 공간이 되니, 어두워지는 밤이면 허드슨강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있는 틈을 비집고 바람은 기어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온 집안을 한 바퀴 스쳐 돌아 나가며, 그리운 사람을 부르는듯한 소리를 내곤 했다.
#첫번째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 마지막 그림은 게오르게 그로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