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심약해서 잔인한 장면을 못 봅니다.
생긴 건 안 약해 보입니다.
제가 모피를 입고 나가면, 사람들은 제가 잡아서 입고 다니는 줄 압니다.
그런 인상착의의 제가 오늘 피철철 칠갑엔딩을 하고야만 빈센죠를
무려 눈썹 하나도 흔들리지 않고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 많은 것의 교체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악에 대항하는 변호사의 세대교체입니다.
홍차영의 아버지, 가난한 자를 돕던 지푸라기역을 하던 홍유찬변호사는 시작하자마자 죽습니다.
아빠 홍변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인권변호사의 정형적인 삶을 살다, 또, 그리 죽습니다.
아빠 홍변이 스스로 토로하듯이, 뻔뻔하고 지독한 속물의 딸의 성정이 자신이 하는 일에도 필요하다는 걸,
자신의 방식이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청자들도 그렇습니다.
훌륭한 인격과 향기로운 인간성의 고운 인권변호사 개인의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싸움이
고맙고 존경스럽지만, 맘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둘째는 악으로 묘사되는 대상의 교체입니다.
막강한 재벌은 싸이코패쓰로 제끼고, 응징외에는 아무 감정도 없는 거 같은데,
사법부에 대한 조소와 비판은 그 뚜까 패는 고비고비마다 절절합니다.
장수말벌로 시작된 젊은 날의 김종인을 떠올리게 하는 판사에 대한 묘사나,
그저 잘나가는 악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일관된 태도 검사출신 최변과 한승혁이에 대한 혼찌껌이
주요 서사를 이룹니다.
마지막회에 인과응보처럼 자세히 묘사된 세 명의 잔인한 죽음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남부지검앞에 피철철 한승혁 남부지검장과 줌바 춤 음악을 배경으로 불탄 최명희,
그리고 싸패 재벌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묘사되어도 될 만큼인데, 그들은 알까요?
세째는 조빈센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정의에 대한 논의는 꼭 필요한 일이며,
정의에 대한 고민은 세대와 시대를 흘러 영원히 논의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지는 것이 뻔한 세계와 관계 앞에서 독야청청 외쳐되는 것으로 소모되는
그 정의란 무엇인가에 사람들은 지쳤습니다.
빈센조에는 그런 클리셰가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잘못해도 이러믄 쓰나..류의 자의식 강한 선비질이 없어, 카타르시스
스스로를 선이라 주장하지 않으니, 운신의 폭이 한결 자유로워서 카타르시스
쓰레기가 너도 쓰레기잖아..하니, 어~인정! 너 치우는 쓰레기 맞음요! 역시 카타르시스
오십보나 백보나...라는 말은 백보측에서 퍼트린 프로파겐다입니다.
먼저 도망간 놈은 사기를 떨어 뜨린 죄, 남은 놈을 위험하게 한 죄등등, 암튼 더 쓰레기 맞습니다.
네째로는 알고 보니 대단했던, 어느 한 순간도 속물 평민임을 잊지 않는 금가프라자 면면과
인자기 비둘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평소 운동1도 안하는 거 같은데, 일타다피 무협속 협객액션은 그냥 전설로
*라이타 하나로 툭하면 불 싸지르는, 저러다 밤에 오줌 몇번 쌌을 우리 빈변 송중기의 연기가 좋았음
*그 라이터는 소장각
*홍차영과의 로맨스포함, 19회는 버리고 싶었음
*옥택연의 훌륭한 피지컬과 넘나 아쉬운 연기 /곽동연이 저 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내내 상상
*마지막회에 최명희에게 빈변이 말합니다. 포식자가 잡으러 오는데, 왜 숨지않고 도망가냐고..
검사출신 최명희가 말합니다. 자신도 어찌할 지를 모른다고, 자신도 늘 포식자역할만 해서리.
*그렇습니다
*콩그레츄레이션~유어~라이터~포에버~돈 로맨스~언틸 파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