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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Mar 20. 2021

꽃도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팔자를 고친다

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게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꽃도 송찬호 시인을 만나면

이리 운명을 바꾸고 만다


찔레꽃

스캔들 메이커 장미도 아니고,

서슬 퍼레 사연을 묻고 싶은 동백도 아니고,

제철 장사 반짝하는, 반짝 피었다 지는 벚꽃도 아니고,

찔레꽃 곱게 피인, 남쪽나라 내 고향이 고작 떠오르던 꽃이었을 뿐인데


웨딩케잌 노래를 떠 올리는 첫사랑을 떠나고,

곱고 궂은 청춘을 품은 고향도 떠났다가,

얼결에 오른 무대 위 광대역마저 떠난 후,

뒤뜰 뒷산에서 다시 마주친 꽃으로 태어난다.


예나 지금이나 벙어리처럼 하얬기나 한 채로

예나 지금이나 마알간 백치미를 뿜으며

변한 거 하나 없이

역시, 변한 듯, 변하지 않듯, 변한 거 하나 없는, 나를 보는 꽃으로 말이다





#그림 위는 시인의 시, 그림 아래는 쑥언늬 사설

#그림은 피카소, 장미와 재클린

#찔레꽃 시에는 찔레꽃 사진을 넣는 그런 진부함을 피하고 싶었다

#찔레꽃 그림 못 찾아서, 넣은 것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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