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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굴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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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Sep 01. 2017

비 오는 가을 초엽

이런 날들이 좋다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갔는데,
날씨는 여지없는 가을이고..
비까지 더하니, 

나갈 일 없는 나는
운치에 더없이 좋기만 하다. 


뒷마당으로 난 문을 열고,

자리를 마련하고,

판을 깔았다.

풍악을 올리고..

넋을 놓고 있다가,

날 추워지니,
여름이불들을 이젠 개비해야 하나,

이전 저런 의식의 흐름체로 생각들을 하다가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게..

결혼기념일이었다.


깨똑으로 남편한테 협박문자를 보내서

감히 네가 이런 날을 까먹냐고,

게시판에 흔한 속풀이 라임을 풀라다가

귀찮더라.



개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케잌이나 사 와서 

애들 먹이면 

설탕끼에 더 에너제틱해지고

꽃이나 한 다발 사 오면

동네 백일홍이 섭섭하다 할 꺼고..


결혼해서 얻은 건

우리 대중소 세 마리에

칠십까지 갚아야 할 주택 모기지와 각종 빚

그리고...

가슴을 서걱서걱 긁어 대는 김필 옵하의 노래를 담담히 들을 수 있는 마음 정도


사랑에 능하고

연애에 젬병이었던 

지난날의 나에게

귀찮아서 안 챙기고 싶은 결혼기념일을 선물한 남푠에게 

짠내 나는 감사를 전한다.



뒷 뜰의 감나무여

아침저녁 찬 바람에

조랑조랑 단감들은
이제 맛이 들겠구나

사람이건 자연이건

찬 맛을 봐야..

그것도  
뜨거운 맛 바로 뒤에 봐야만
맛이 드.. 들을까?

아닐걸..
그냥 용량대로 살으~

그래도 비까지 더해

단감을 조랑조랑 달고
여린 가지가 축축 쳐지니.. 


사랑한다며..

사랑한다며..

화장실 가는 엄마를 막아서던

한쪽 다리를 두 손으로 껴안던 둘째와

덩달아 울어대던 눕기밖에 못하던 막내를 안고

변기 위에 걸터앉던 지난날의 안 여렸던 비주얼의 나를 본 듯

애처롭구나.. 야.

지금이 좋다

청춘이고..

사랑이고..

다들 가지 시길

이 몸은 노룩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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