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릴 적,
지금의 나보다 십 년은 더 젊었을 엄마가
중학생이던 나한테 즐겨 말씀하시길..
엄마가 버스토큰을 큰 부담 없이 쓰는 것처럼
내가 택시를 부담 없이 타고 다닐 만큼만 잘 살았으면 한다며
기승전 공부를 강조하 셨었다.
당시 엄마는 오래된 신경통으로
걸음걸이도 뒤뚱거렸고,
자주 아파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택시를 타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신듯하다.
그러한 사정을 알바 없는 나는
별 감흥도, 반응도 없이 시큰둥하였었다.
그래도
그 시절
환경미화 시간을 위해
내게 할당된 장미 몇 송이를 사서
하얀 종이 안에 들고 가는 내내
그 꽃을 싼 종이가 물에 젖어 찢어 질까
손과 발을 집중해 조심조심 걸어가면서
그 향기를 내내 맡으며 가면서
나중에 집안에 꽃다발을 턱턱 들여놓고 살 만큼만 살았으면..
하고 엄마 말투를 되뇌곤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공부는 못했어도
꿈은 이루어지더라고..ㅎㅎ
교회에 얼굴 비추는 수요모임에서
만난 할머님이 계신다.
칠십 대 중반이시고,
이민 온 지 오십 년이신데,
내 쌍팔년도 유머 코드에 소녀처럼 웃으신다.
그분은 오랫동안
근처 화원에서 타이밍 못 맞춰
뒤 떨어진 꽃들을 헐값에 모아서
노인들에게도 배달해주고,
소외된 단체에게도 기부해주고..
그러저러한 일들을 할아버지와 함께 하시고 계셨다고 한다.
이번 봄에 들어서는
매주 커다란 이삿집 박스로
한 박스씩 따로 모았다가
꽃 좋아라 하는 나에게 주신다.
철이 지난 것은, 철이 지난 대로 뿌리를 모으고..
화분이 작아 미어터지는 것은, 그런대로 분갈이를 해주고..
비밀 첩보요원이 접선을 하듯 다가오셔서
나를 조용히 끌고, 차 트렁크로 데려가 떨이를 넘기신다.
어디로 가든 목적지 가면 되는 거 아님?!!
난 돈이 허벌나게 많아서
천정 높은 큰 방에 고풍스러운 탁자에다가 터억
지체 높으신 벽난로 위에다가도 터억
나 같은 뚱띵이 네 명은 위로 옆으로 들어갈 엄청난 거울 앞에도 터억
마구 그리 살 줄 알았는데..
성실하나, 빚이 많은 남편 만나
귀여우나, 손 많이 가는 아들들들 낳고
구라 빨 세나, 사람에 쉬이 지치는 인간이 되어
사냥 대신 소파 밀착형 큰 굴 짓고,
낚싯대 드리우며, 오가는 사람들에 말이나 걸며 사니
이리 척척 꿈이 이루어진다. 크..
꿈을 이룸이 이리 쉬운 줄 알았더라면
어려운 꿈을 꿀 것을 말이다.
지금부터 얻어 온 꽃들
오며 가며 주운 꽃들 사진의 방출이다.
얻어 온 노란 튤립이다.
집에 있던 작은 꽃병과 너무나 어울려 흡족했다.
이 날은 노란 꽃이 식탁에 놓인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노란 카레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른 날에는 다른 기념으로도 노란 카레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날이 좋아서..
날이 나빠서..
혹은, 날이 적당해서.. 말이다.
할머니께서 주신 튤립 시리즈들 중 자색 튤립이다.
봄 끝에는 봄 끝물 꽃들을..
여름 끝에는 여름꽃들을..
가을 끝에는 가을꽃들을.. 주시고,
겨울에는 꽃들처럼 쉬시겠다 하신다.
해마다 오월 첫 주면
아이들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위한 꽃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늘 그 역할을 담당하던 우리 집 화단의 작약이 올해는 한 주 일찍 피어났다.
그 덕분에 올해는 이 튤립이
올해 아이들 손에 들려 선생님께로 작약 대신 향하였다.
두 송이씩 가져오랬는데
우리 집 삼 형제를 위하여
이쁘게 한 화분에 여섯 송이가 피어서
센스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말 나온 김에 찍어 본 우리 집 앞 화단의 작약이다.
미친 듯이 피어나서
무게를 못 이긴다고 난리를 친다.
꽃들에게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
늙으면 꽃들에게 연금은 어찌 지급되려는지.
허나, 지금은 그 향기가 기개롭고..
온 동네 벌들은 다 불러 모으고 파티 중이다.
늘 가는 숲길에 어느 날부터 찔레꽃 향이 그득했다.
향기가 나는 곳으로 걸어가 보니
고목 위로 결혼식 부케처럼 쏟아지는 찔레꽃이 보였다.
고향생각이..
집 생각이 난다.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이라..
번지수는 틀리다만,
노랫말 가사는 고향의 향마저 세뇌하는 듯하다.
애들 손에 쥐어 보내긴
너무 피어버린
빗방울 때문에 더욱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작약을
몇 송이 잘라
화병에 꽂아 둔다.
꽃 복에 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