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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Nov 03. 2022

3년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잘 가

   나의 청춘은 너의 것이었다.

   우리는, 스물아홉이 되던 1월에 만났다. 동갑내기? 너무 친구 같지, 연애로는 별로야, 라는 생각을 바꿔준 사람이었다. 동갑내기의 한 치 빈틈없는 세대 공감과 편안함, 그리고 샛길로 졸졸 흘러나오는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우린 통하는 게 많았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가사도 같았고 웃음 코드도 잘 맞았고 식성도 비슷했다. 둘이 있을 때 제일 재밌는 사이였다. 그저 재미있게 3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났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우리는, 사랑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는 나를 사랑했다. 3년 동안 나는 너랑 세상에 둘만 남겨져도 두려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생각난다. 사귀기 전에 했던 질문.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뭐야? 동시에 말하자. 하나, 둘, 셋. 우린 짠 것처럼 같은 가사를 말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트로이 시반의 노래 <Youth>의 가사 ‘My youth is yours’였다. 나는 고백하던 날에 내 청춘을 너에게 주겠다고 했다. 너는 구겨지고 아름답지 않은 내 청춘을 받아 들었다. 서로의 청춘을 서로에게 헌사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끝났다. 스물아홉부터 서른하나의 가을까지 내 청춘은 너의 것이었고 너의 청춘은 내 것이었다. 서로의 것을 돌려주고서 우린 등을 마주하고 반대쪽으로 걸었다.


   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헤어짐을 고했다. 나는 눈물 흘리는 네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마찬가지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받아들였다. 지하철 역 앞에서 반대로 걸을 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의 3년이 이렇게 끝났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나는 한 번 돌아봤다. 너는 아직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억지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우리는 정말로 돌아서서 서로를 떠났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천천히 홍대와 합정 일대를 걸어 다녔다. 홍대, 합정, 한강… 곳곳을 쏘다니던, 우리의 좋았던 날들이 많이 생각났다.  


   덕분에.

   작년의 나는 너무 힘들었다. 인간이 바닥을 찍으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라고 숱하게 생각한 날들이었다. 울적하고 무기력해서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내 존재의 이유를 무상하게 묻던 날들. 나는 너와 데이트를 하다가도 이유 없이 왈칵 울었고 마음이 너무 시끄러워서 별 것 아닌 너의 말에도 트집을 잡았고 혹은 말문을 닫아걸었었다. 너는 그런 내게 마음을 세심히 썼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끌고 와서 나를 꺼내 좋은 곳을 데려가고 다시 집에 넣어줬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 기분을 살폈고 함께 병원을 가줬다. 너에겐 아무런 멘탈이슈가 없었는데도. 너의 기약 없는 투쟁을 생각한다. 막막하고, 또 막막하고 속절없이 무너졌을 너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지금 다시 좋아진 건, 200% 너 덕분이다. 난 너에게 큰 빚을 졌다.


   너는 올해가 힘들었지. 나는 이제 내 빚을 갚을 차례라고 생각했다. 네가 그러했듯이 내가 노력하고 보듬으며 갚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도저히 너무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너는 네가 날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네가 마지막까지 끔찍이 두려워했던 건 다름 아닌 네가 나에게 흠집 내는 것이었잖니. 한 번만 더 해보잔 내 말을 뿌리치면서도 너는 그랬다. 나 때문에 상처받는 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미안해. 그래도 넌 멋지고 좋은 사람이야.


   멋지고 좋은 사람. 그래, 나는 늘 멋지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지. 누구에게든 그랬지만 특히 너에게 그랬다. 결국 마지막까지 그런 말을 들었으니 괜찮은 연애, 괜찮은 헤어짐이었던 걸까.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이었을지 헤어지고 수십 번 생각했다. 내가 다 잘한 것만 같았는데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네가 나를 만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졌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젠틀하고 부드러웠던 우리를 여러 번 복기했다. 고맙다. 마지막에 네가 정 떼려고 모질게 굴었다면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내게 물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너는 늘 내게 말했다. 나 덕분에 너는 일도 잘하고, 세상에서 제일 괜찮고 멋진 사람 같고, 타인을 향한 깊은 신뢰를 가져볼 수 있었다고.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하곤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너 덕분에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힘을 얻었고, 좋은 열애를 하고, 그 연애의 끝을 잘 닫은 것 같다. 고맙다. 네가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너의 운명을 향해 씩씩하게 성큼성큼 걸어나가길 바란다. 나도 네가 되찾아준 나의 활기와 힘을 가지고 앞으로 나의 길을 걸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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