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나온 증명사진이 좋았다는 일기
이 글의 시작
인간은 자신의 사진을 볼 때 상당히 수준 높은 메타 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정녕 나의 형상이 맞는지 의문과 불신을 달리고, 마침내는 체념에 다다른다. 주로 필터와 보정이 점철된 셀카 어플을 많이 쓰고 그 어플에서 행복한 결과물을 누려 버릇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내가 보는 것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진리에 노출되면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주어지면 뭐든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직면을 유예하다가 마침내 눈에 쾌쾌한 소금기를 매달고 받아들였다. 거창하게 동굴의 죄수 비유까지 갈 것 없이, 내 얘기다.
그러니까 앞 문단을 정리하자면 이 글은 내가 신분증 사진을 새로 찍고, 보정 전 내 사진에 흠칫 놀랐다가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30대, 무려 12년 전 내 얼굴이 박힌 주민등록증이 낯설고 지루해서 새로 찍었다. 바꿀까? 바꾸자! 5초 만에 결심하고 5분 내로 사진관을 예약한 충동의 끝판왕이었다. 이제 이 글은, 자아존중감까지 나아간다.
자아존중감
스튜디오의 젊은 사장은 내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마주하며 힘겹게 골라낸 내 사진에, 망설이지 않는 손놀림으로 보정을 입히기 시작했다. 피부 잡티와 목주름을 지워주곤 머리칼이 비어 보이는 곳과 입술 색을 조금 채워줬다. 입매와 잔머리까지 단정하게 정리하는 그의 손을 보면서 여기까지는 남녀노소 누가 와도 천편일률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정이겠지, 그럼 객관적인 준수함이란 머리숱과 주름과 입술 색에 달렸구나, 따위의 잡생각을 했다. 어디 더 수정해드릴까요? 불쑥 침묵을 깨고 사장이 명랑하게 물었다. 음. 5초 정도 고민하는 체하다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괜찮아요. 이걸로 충분히 좋아요.
정말요? 되묻는 사장의 말에 부러 더 수정할 거리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일순 느꼈다. 천천히 보고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내 기분을 눈치챈 듯 사장은 재차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더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후닥닥 사진을 받아 나왔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조금 더 수정하지 그랬냐고 했고 그래서 약간 복잡한 기분을 느꼈지만... 더 손을 댔다면 다시 한번 고도의 메타 인지 속에 헤엄쳤을 것이다. 이게 진짜 내 얼굴이 맞나 의문스러웠을 것이고, '진짜 나'는 어떤 개념인지 고뇌했을 것이며, 나아가 포토샵이나 필터가 잔뜩 들어간 가짜 얼굴을 진실로 덜컥 믿어버리는 슬프고 우매한 짓을 해버렸을 거다. 내 신분증에는 진실된 나(라고 생각되는)의 모습이 있는 편이 좋다. 그게 턱이 네모고 별로 안 예쁜 것 같아도. 그러고 보면 나는 자아존중감이 대단한 사람인 걸까!
평범과 축복 사이
이사를 앞둔 터라 시간을 쪼개 집을 보러 다닌다. 그중 한 아저씨는 스스로를 성미산로 헬창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50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울뚝불뚝한 팔뚝을 가졌다. 운동, 특히 헬스를 오래 한 사람들은 기이하리만큼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귀납적으로 많다. 맑은 마음을 내보이는 창문 같은 눈으로 아저씨는 말했다. 고객님은 축복받은 체형입니다.
왜냐고 묻자 그는 단순명료하게 말했다. 너무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으니까! 심심한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안이 벙벙했다. 아저씨, 그런 걸 우리는 평범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그렇지만 평범이란 시시한 말을 축복받은, 이라고 멋지게 가꿔놓을 줄 아는 그가 여간 마음에 든 게 아니었다. 앞으로 인생을 그렇게 써야겠다. 가장 평범한 나, 에 두 줄을 찍찍 긋고 가장 축복받은 나, 라고.
아빠 친구의 아들딸 중에서 유독 자주 언급되는 아빠 친구 딸(소위 '아친딸')이 있다. 그녀는 하필이면 나랑 나이도 같고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나 그랬고 화려한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부티 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모든 부모의 바람대로 멋진 사람과 결혼까지 했다. 그녀가 언급될 때마다 나를 향해 따라붙는 이야기는 별로 유쾌한 내용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이름이 대화에 올라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 자체가 싫은 건 아니고, 그 뒤에 슬며시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의 못난 감정이 싫다. 내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생각들은 말의 의도를 곡해한다. 열등감인 줄 알면서도 부모가 그의 이름을 말할 때면 삐뚜름한 생각으로 결론을 짓고 만다. 그런 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근데 저도 많이 답답해요.
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스스로의 열등감을 후회하고 개탄하면서 하는 생각이 있다. 나 정도 착하고 웃기면 됐잖아요. 이 정도 효심과 외모면 괜찮잖아요. 사람 안 때렸으면 됐잖아요!! 다시 한번 평범에 줄 찍찍. 최고의 딸, 이라고 쓰기. 축복받은 아버지, 라고 고쳐 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