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 달 했던 요가 일기
요가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 할 줄 알았던 유도를 3달 만에 집어치운 주제에 브런치에 떡하니 글을 올리기까지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운동에 대해 쓰기가 멋쩍다. 유입이 없으면 괜찮은데, 생각보다 유도 키워드를 통한 유입이 좀 있어서 더욱 무안하다. 아무튼 요가를 시작한 건 사실이니까, 또 관련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겸연쩍음을 갈무리하기 위한 변명 먼저 쓰자면 유도하면서 너무 많이 다쳐서 반강제로 그만뒀다. 누가 머리채를 잡아 그만두라고 고함친 건 아니니 '반강제'라는 말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잦은 부상만 아니면 좀 더 배울 마음은 있었다. 석 달 동안 유도장에서 유도는 별로 못 배웠지만 인생에 대해 고찰하고 글도 두 편이나 뽑아냈으니 나름대로 뭔가 배웠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그만둔 운동 얘기는 이만하겠다.
"언젠가 하게 되실 거예요"
내가 요가를 등록했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해질 때쯤 첫 수업을 들었다. 요가 선생님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헬로키티 마스크와 대조적으로 잔뜩 성난 등 근육을 가졌다. 선생님이 보여준 자세를 내가 따라하면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며 티칭을 하는 식이었는데, 선생님이 내 몸에 손을 댈 때마다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곡소리는 점점 우렁차게 거듭났다. 요가를 배우러 왔는지 득음을 하러 왔는지. 태어나서 처음 존재를 깨닫게 된 관절들을 사용하면서 눈이 팽팽 돌아갔다.
선생님은 어려운 동작을 선보이며 자꾸만 기본 자세라고 했다. 요가 지도자 사이에서만 기본인 게 아닌가 의심이 엄습했다. 으으 선생님, 기본이 너무 어려운데요. 선생님은 햇살 같이 반짝반짝하고 맨질맨질한 얼굴로 웃었다. 아프죠. 어렵죠. 그런데 언젠가 하게 되실 거예요. 네? 무슨 뜻이죠?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첫 요가를 끝내고 반쯤 정신이 나간 나는, 3주 정도 요가 선배님인 여동생에게 말했다. 요가 하는 사람들이 왜 화를 잘 안 내는 줄 알아? 자기 자신과 항상 싸우고 있기 때문이야... 별 말도 안 되는(물론 내 기준에서) 자세로 몸을 꼬고 환하게 미소 지으려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신체와 매번 투쟁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 과정에서 부정적 에너지는 자기 투쟁의 재료로 승화시켜버린 거라고, 결론적으로 곧은 등과 흔들림 없는 기분이 남은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검은 띠를 딸 때까지 하겠다던 유도를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가도 지긋이 오래 하고 싶다. 나도 굽지 않은 어깨와 곧은 등을 가지고, 그처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에 너무 오래도록 분노를 품는다. 화가 난 일, 유쾌하지 않은 일을 오래도록 되새김질하면서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를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돌돌 말려 있는지 생각한다.
요가가 끝날 때마다 요가 선생님은 말한다. 옴 샨티샨티. 오늘도 호흡을 나누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래도록 '저 XX 왜 저러지?'와 '다 죽었으면' 사이를 옮겨 다니던 나는 그 말에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인간은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가. 타인을 나보다 우러러 보지도 하대하지도 않으려면 얼마나 인간을 귀히 여겨야 하는가. 내가 그런 마음을 가져본 건 얼마만큼 오래 전이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 까무룩한 날들에 걸쳐 타인을 증오하면서 결국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요가 선생님 말마따나 언젠가는 지금 하지 못하는 동작들을 하게 되겠지. 언젠가는 쭉 뻗은 등과 고운 마음과 눈을 갖게 되겠지. 언젠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