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고 콜콜한 이야기들
한밤의 택시 속 이야기.
우연히 잡아탄 택시의 기사님은 말이 많았다. '조용하게 가고 싶어요' 따위를 등록해둔 어플로 택시를 잡으면 기사님들은 목적지까지 굳은 침묵을 지킨다. 나란히 묵언 수행이라도 하듯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오랜만에 겪는 수다스러운 타인과의 동행이 나쁘지 않았다. 30대, 각자 일에 골몰하며 시간을 쪼개 아는 사람만 만나면서 좁아진 만남의 폭이 이런 식으로 메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사님은 다섯 살, 세 살 난 손녀들을 자랑하다가 이윽고 장성한 딸 아들을, 딸보다 딸 같다는 며느리를 자랑했다. 며느리와 둘이서 종종 커피를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한다는 기사님은 척 보기에도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갑자기 세상을 등진 기사님의 오랜 친구 이야기도 나왔다. 기사님은 3년을 끊은 담배를 그때부터 다시 태웠다고 했다. 그는 대략 우리 아빠 연배였는데 60년 넘게 살고 연륜이 쌓여도 이별에는 관록이 쌓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맞장구 정도만 치고 있었는데 이동하는 내내 기사님은 계속 이 얘기, 저 얘기들을 했다. 그의 얘기는 삼삼하니 재밌었다. 화목한 여느 가정과 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 어찌 보면 유난스럽지만 제일 재밌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사님이 많이 심심하셨나 보다, 생각했고 우리 엄마나 아빠가 내 또래의 청년을 붙들고 이런 식으로 말을 걸려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 낯선 청년이 본인의 자식들보다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줄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동행.
기사님이 나를 몇 살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뭔가를 조금 못해도 좋으니 그저 즐겁고 표현을 잘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친구가 시한부 삶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 마음이 몹시 아프셨나 보다. 가슴이 울컹거렸다. 나도 그런 마음이 뭔지 안다고 말하진 않았다. 택시에서 내려주면 살면서 다시는 볼 일 없을 젊은이에게, 어쩌면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이에게 그런 말을 보태는 기사님에게 기고만장하게 저도 알아요, 다 알아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들어주면 족한 말에 말없이 고개를 주억댔다. 힘드셨군요, 그래요. 갑작스러이 이별한 이를 오래도록 꽉 끌어안고 사는 당신의 마음을 저도 조금은 알아요. 우리는 모두 같은 종점으로 걷지요. 그 사실은 슬프지만 이상하게 위안이 되지요.
아이구,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네요. 그는 멋쩍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 재밌었어요. 감사를 표하고 택시 문을 탁 닫았다. 부웅- 천천히 떠나는 택시의 뒷면을 보면서 그가 밤이 내도록 내달릴 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손님을 만나길, 너무 쓸쓸하지 않길 빌었다. 그동안 내가 잘하거나 잘하지 못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같은 곳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걸음을 나란하고 단란하게 만드는 건 그의 말마따나 즐거움과 표현이다. 모르던 사실은 아니지만 알던 것을 새삼스레 틔워주는 것 역시 의미 있다. 그를 동행이라 부르기 족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