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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Jan 11. 2022

유도 3개월 차, 노란띠 승급을 앞두었다

결국 세달 다녔던 유도 일기

   노란띠 승급을 앞두고. 유도장을 다닌 지 3개월 정도 됐다. 3개월을 연이어 다녔다면 꽤 실력도 늘고 승급도 두 달 차에 했을 터인데, 사정상 2021 봄에 2개월 다니고 쉬다가 2021년 겨울 초입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7, 8개월 만에 유도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다소 어색하기도 하고 많이 잊어버렸을 줄 알았다. 몸은 정직하게 배운 걸 기억하고 있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 같은데...?' 하는 모호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배움이란 건 거진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도 같다. 어떤 지식을 말해줄 때 전공생과 비전공생의 차이는, 전공생은 '왜'는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심사 보는 걸 구경해보니 노란띠로 올라가려면 기본적인 후방, 측방, 전방과 회전 낙법을 비롯해 유도의 가장 기본 기술인 밭다리와 안다리 정도를 보여야 하는 것 같다. 추가적으로 눌렀다가 빠져나오기를 보이기도 한다. 도장에 등록하고 매일 같이 반복하는 동작이기도 하다. 품띠, 검은띠처럼 높은 등급의 보유자도 예외는 없다. 시작은 언제나 낙법과 밭다리, 안다리다.


   성실하게 나아가기. 처음에는 낙법이고 기술이고 정확성이 떨어진다. 낙법과 기술을 ‘구사한다’기보다 팔다리를 유사하게 ‘휘젓는 것’에 가깝다. 어떤 원리인지 알 리가 만무하고 내 동작의 디테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냥 시키니까 꾸준히 하는 거다. 때때로 높은 띠 소유자들이 선보이는 공중 회전 낙법이나 화려한 기술을 볼 때면 현실감이 없었다. 인간이 저런 걸 할 수 있다고...? 낙법에도 허덕대는 내가 그런 걸 하게 되는 날은 요원했다. 하지만 꾸준함은 반드시 응답 받는다. 매일 같이 팔다리를 휘젓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찌르르 온다. 아, 이렇게 하라는 말이었구나.


   한 번 그런 느낌이 오면 드디어 '구사'에 가까워진다. 다리만 흉내를 내던 동작에서 이제는 팔과 고개 각도를 신경쓸 여유가 생긴다. 다섯 개의 기술을 배웠지만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동작은 한 개 정도다. 두 개는 천천히 감을 익혀가는 단계고, 나머지 두 개는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관장님은 계속 내가 고쳐야 할 것들에 조언을 쏟아내시지만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고만 있다. 명확한 느낌으로 꽂히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소금기 묻은 얼굴로 상대방의 도복춤을 잡아 당기고 흐느적댈 것이다. 아무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 완벽하게 하려는 것보다 멀리 데려다 주기도 한다는 걸 유도장에서 배우고 있다.


   유도, 중심의 미학. 이유도 원리도 모르고 어설프게 따라왔지만 여태까지의 배움을 종합해볼 때, 유도는 중심의 스포츠다. 내가 거는 모든 기술은 상대방의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함이고 또한 내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버텨야 한다. 인생이란 녀석의 본질을 꿰뚫는 스포츠 아닐까. 사는 대로 생각지 않고 생각대로 살기 위해서는 내 중심을 사수해야 한다. 내 중심을 지키려면 방어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나를 흔드는 것에 악착 같이 덤벼들어 싸워야 한다.


   유도를 하면 문득문득 지키는 것에만 안주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싸웠어야 했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패배감을 맛보지 않으려고 덤벼들기를 포기해버렸던 시간들이 헛되다고 생각한다. 분명 뭔가를 지키려고 방어만 했는데 뭘 지켜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 앞의 패배를 피해 머물렀던 곳은 전장도 아니었고 요새도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인생에 몇 번이고 참패했던 것 같다.


   관장님은, 내 그럭저럭한 실력을 곧잘 칭찬해주면서도 승급 대상에 올려주지 않았다. 이유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였다. 흰 띠 초급자가 20 정도만 해도 되는 걸, 70 이상을 하려고 바둥대다가 다칠 위험이 크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관장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반 정도는 기뻤고 반 정도는 이상하게 울먹울먹했다. 내가 아직 욕심과 투지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뻤다. 그걸 여태 잘 쓰지 못한 나의 나태함은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속상함에 오래 젖어 있지는 않았다. 나의 유도가 이제 시작이듯 내 인생의 중심 잡기도 이제 시작이란 걸 이제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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