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던 날들의 일기
첫 번째 이야기
오늘 일부 지방에는 눈 소식이 있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학교 앞에서 살던 어느 날이 생각난다. 스물다섯 이후로 수도 없이 많은 눈을 보았을 텐데 꼭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랑 살았다. 과제를 바쁘게 하던 중 눈이 내렸다. 새벽에 우리는 눈 온다! 탄성 같은 외마디 이후로 코트를 챙겨 나갔다. 뽀득거리는 눈을 밟으며 우리는 커서 뭐가 될까 궁금했다. 무엇이 되든 깨끗한 눈빛의 어른이 되자 다짐했던 우리는... 눈 오면 내일 길 얼어서 출퇴근 어렵겠다 불평하는 직장인1과 독일에서 맥주를 왕창 먹는 석박 유학생1이 되었다.
우리는 뭐가 될까? 물은 때는 같은 교재를 보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같이 자라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나는 다 자라버린 것 같다.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고 친구의 우직함과 학문을 향한 열정을 부러워하지만 아마 그 친구는 불확실한 내일을 걱정하면서 내 평온한 일상을 부러워하는 날도 있겠지.
두 번째 이야기
첫 번째 수능을 보던 날 눈이 얼어붙은 길을 아빠랑 걸어 고사장에 갔다. 그리고 시험은 시원하게 말아먹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한 입도 먹질 못했다.
11년 대입 수능 1교시는 ‘불시험’이었다. 언어에 제일 자신 있는 수험생은 어려운 언어에 말려 멘탈이 터졌다. 수리 영어 사탐을 연이어 망하고 나간 학교 교문엔 엄마가 있었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단번에 찾으면서, 펭귄들이 다 똑같아 보여도 자기 새끼는 이런 식으로 알아보는 모양이라는 싱거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왈칵 울면서 인생이 망했다고 소리쳤다. 엄마는 이게 뭐라고 인생이 망하니, 하면서 같이 울었다. 수능 후 꼬박 이틀을 앓아누워서 담임은 내가 자살한 줄 알고 전화를 미친듯이 했다.
2, 3, 5 각종 숫자가 범람한 수능 성적표를 받아오던 날도 눈이 펑펑 내렸다. 언어에 말려 망했는데 아니러니하게도 언어는 백분위 98의 1등급이었다. 세상이 나랑 장난치는 것 같았다. 흙과 섞여 더러워진 눈을 밟고 집으로 가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끔 그 열아홉의 내가 문득문득 가엾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었니.
두 번째 이야기의 꼬리
두 번째 수능은 혼자 갔다. 눈은 안 내렸지만 아주 추웠다. 도시락은 맛있었고 그해에도 어김없이 교문에는 엄마를 얼싸안고 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끝내 내가 졸업한 학교는 정시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논술을 볼까 말까 하다가 보러 갔다. 배가 몹시 고파 꼬르륵거렸고 나중엔 소리가 너무 커서 조교가 내 옆에서 왔다 갔다 했다.
논술 답안지를 제출하면서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더랬다. 여기는 붙었다, 하고. 재수를 한 해부터 수시는 여섯 개만 쓸 수 있었는데 결국 수시에서 그 학교만 붙었다. 등록 후 수능을 한 번 더 봤지만 재수 때 붙은 그 학교를 졸업했다.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 나눴을 때 나처럼 그 학교만 붙어서 온 친구들이 꽤 됐다. 인연이란 게 있나 보다. 어찌 됐든 나는 그 학교에서 최고의 친구들을 얻었고 젊음을 만학도처럼 누렸다. 최고의 인연인 셈이다.
세 번째 이야기
3학년, 선배들 졸업식에 참석했던 날도 눈이 그득 쌓여 있었다. 선배들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새내기 맞이 프로그램이 있어 급하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면서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가 새롭게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 나의 삶은 모두 학교가 무대였으니까.
열아홉부터 스물여섯까지의 눈 오는 날은 학교에서 일어난 여러 추억과 맞물려 차곡차곡 있는데 학교 졸업 이후로는 딱히 그런 게 없다. 소속감의 부재와 불안한 내일에 치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눈 오는 날의 감상 따위를 내 손으로 버린 걸까.
네 번째 이야기
내 인생에 가장 많은 눈을 본 건 2019년 1월이었다. 나는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2개월 치 알바비를 몽땅 털어 삿포로에 여행을 갔다. 오래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서 커피 마시며 러브레터의 명장면을 주워 섬기면서 나는 한겨울의 삿포로에 가는 게 로망이야, 말했고 친구는 그랬다. “당장 표를 끊자” 그렇게 어버버 항공권을 바로 예약했다.
여행이란 게 늘 그렇듯 항공권이 확정되면 일사천리다. 그렇게 최저가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노숙하고 새벽 비행기를 탔다. 삿포로의 첫 인상은 추위였다. 정말 매우 매우 추웠다. 눈이 거짓말 안 하고 허리까지 쌓여 있었고 길은 몹시 미끄러웠으며 까마귀들이 한국의 비둘기처럼 정말 많았다. 우리가 얼어붙은 길 위를 비틀댈 때 뒤에서 술 걸친 아저씨들이 유쾌하게 외친 말이 생각난다. “삿포로노 히토쟈 나이!(삿포로 사람이 아니구만)”
삿포로의 명소 비에이-후라노 투어는 정말 춥고 정말 예뻤다. 같이 투어하는 사람들은 어찌나 열성적인지 눈과 바람이 휘몰아치는데도 사진을 찍을 때면 패딩을 벗고 코트 차림으로 오래도록 카메라 앞에서 웃었다.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본다고 말하니 가이드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는 눈이 적게 온 편이에요.”
어쩌면 삿포로에 사는 사람들은 매해 올해는 눈이 적게 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눈이 와야 많이 온 거라고 맞장구를 쳐줄까 싱거운 생각과 함께 그해 겨울 삿포로 여행은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