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밈혜윤 Nov 19. 2022

[긴낮짧밤] 2022년 이른 연말정산

올해도 세금 그거 아닙니다.

   작년과 올해

   2022년의 수능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수능을 본 게 언제였는지 차근히 헤아려보면 벌써 10년이 됐는데도 수능이 끝나면 한 해가 여문 느낌이 든다. 그런 탓에 나는 매년 수능 즈음부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곤 했다. 대체로 울적하고 실망스러웠는데, 내가 뭘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는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올해도 수능이 지나고 한 해가 닫혀가는 기분이 드니 2022년의 나를 연말 정산하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 어디에서 울컥대는 기분을 토해냈는지. 이러한 나의 전반적인 연말정산은 2021년에 처음으로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한 해의 나를 한눈에 그려내기 좋았다.


   이 글의 제목에 함께 있는 이미지는 작년에 처음으로 인스타에 썼던 연말정산 글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2021년의 힘들고 지쳤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이 2020년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2022년이 2021년보다 낫기를 소망했다. 2022년의 11개월을 살아내고 돌아보건대, 나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2020년에 주저앉아 있었다면 2021년은 그보다는 좀 나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2022년은 좀 더 활개를 쳤다. 숨이 턱 막힐 때도 호흡을 멈추지 않으며 달리기도 웅크리기도 했다. 2022년은 2021년보다 덜 울었고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어렵게 또는 어렵지 않게 말을 했다. 불안하고 힘겨웠다고. 내 손 닿는 모든 것들이 망가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무엇보다 내가, 다름 아닌 내가 시시각각 망가지는 것 같았다고.


   2022년의 나를 완성한 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우습고 조금씩 귀여운 나의 사람들. 내 짠한 자기 고백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말을 보태지 않고 듣던 우직한 사람들, '나도 불안했다'며 공감하던 세심한 사람들, 본인이 더 눈물을 글썽이던 여린 사람들,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전체보기로 넘어가야 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남겨준 다정한 사람들... 조금씩 우습고 굉장히 다정한 사람들. 2021년엔 무엇이 두려워서 다정한 이들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을까. 아마 쿨하고 멋지지 않은 나의 남루함을 보이면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확실히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지. 그걸 진작 알았다면 작년은 좀 덜 외롭고 덜 피폐했을지도 모르는데.


   2022년의 나는

 -2022년의 1월부터 11월까지 드라마 11편, 영화 15편, 다큐멘터리 6편, 뮤지컬 1편, 소설 3권을 봤다.  

 -다가올 연말에는 1편의 뮤지컬과 1회의 콘서트를 예매해뒀다.

 -친구들과 하던 팟캐스트 시즌 하나를 무사히 마쳤고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팟캐스트를 시작해서 3개의 에피소드를 올렸다.

 -몇 차례인지 셀 수도 없는 맛집과 카페를 찾았다. 카드 내역을 뒤져보니 한 달에 커피값만 30만 원을 쓰고 있었다(조금 반성함).

 -나를 너무 괴롭게 하던 사람들과 장소를 떠났다.

 -마음의 평화를 제법 되찾았다. 이젠 숨을 쉰다. 다시 농담 따먹기 투성이 대화를 한다. 약 없이도 잠을 잘 잔다. 새벽에 눈물 흘리지 않고 시답잖은 농담을 구경하다가 잠에 든다. 그리곤 꿈도 없는 잠을 잔다.

 -곧 친구들과 실탄 사격을 하러 갈 거고,

 -친구들의 홈파티에 가서 배달음식 먹고 누워서 티비 보고 허튼소리를 할 거고,

 -멋들어진 레스토랑에 갈 거고,

 -향후 5년의 계획을 세웠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먼저 약속을 잡았다(정말 잘한 거).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다(제일 잘한 거).

 -돈을 왕창 썼다(못한 거)


   올해는 외롭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맙다고 자주 생각했다. 고맙다고 늘 생각했지만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도망다니기 바빴던 2020년, 2021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구렁텅이에서 악착같이 기어나왔다. 동굴 밖에 무엇이 있겠어, 체념했던 나지만 동굴 밖 햇볕 아래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신나는 곳이었다. 아무튼 2022년은 2021년보다 훨씬 좋은 해였다. 2023년은 2022년보다 훨씬 더 좋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만들고 말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긴낮짧밤] 여름아 잘 가, 난 씩씩한 가을을 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