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게 너무 많았어. 낮에는 잘만 돌아다니는 길이 어둑해지면 무서웠던 것 같아. 가로등이 껌벅거리면서 어두웠다가 밝았다가 하는 놀이터 옆길은 밤이면 주황색 담배 불빛에 비치는 눈동자들이 있었어. 분명 아무 생각 없이 하루의 고뇌를 태우는 선량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거야. 그래도 무심히 나를 좇는 눈들이 무서웠어. 거미줄에 달랑달랑 매달려 잡아먹힐까 봐 무서웠어. 바퀴벌레도 밀린 숙제도. 너 그럴 거면 엄마 딸 그만하라는 말도. 부드럽지만 쌀쌀한 마음을 감추지 않은 채 내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무서움은 무지에서 비롯한다는 말에 동의해? 나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아. 늦은 밤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 불시에 나타나는 거미줄과 바퀴벌레는, 내가 알지 못해서 무서웠어.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아니야. 내가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엄마를 실망시켰다는 사실. 내가 대답해야 할 사람들이 가졌을 마음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어. 내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한숨 쉬게 만들었는지, 그런 순간에 내가 가진 악에 받친 억울함이 어떠했는지 너무 선연했어.
나는 곧잘 겁먹었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곁눈에 사람으로 보였던 쓰레기봉투에 깜짝 놀라고 사람들의 무심한 한 마디에 겁먹었어. 충족해야 할 것 같은 기대들에 가장 겁먹었던 듯하네. 나는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무해하다고 혹은 모자라지 않다고. 어느 법원에 나를 세우는지, 내가 증인인지 피고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기왕 증명해야 한다면 제대로 호소하고 싶었어.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길 바랐어.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게. 꺼져가는 누군가의 눈빛들에 내가 상처받지 않게.
점을 찍어, 과감하게
나는 시작과 마무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 시작과 마무리를 모두 잘하지 못하면 도대체 뭘 잘하냐는 질문이 삐죽하게 솟아오르겠지. 난 중간 과정은 잘 해온 것 같아.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것.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가능성을 가늠하기보다 일단 달려보는 쪽이었어. 어떻게 보면 충실하고 어떻게 보면 미련하지. 내달리기는 쉬운데 시작하고 종료하는 것은 왜 그리 어려울까.
그래서였나 봐. 마음먹었던 일이 꺾였을 때 다음 일로 뛰지 못했던 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안녕을 고하기 어려웠던 건. 내가 나를 아프게 하기를 멈추지 못했던 건. 나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어. 한 번 손댄 일은 꾸역꾸역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는 고집. 계획은 바뀌기도 하는 법인데. 중간에 손을 떼버릇하면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았어.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믿었어. 그래야 무언가가 될 거라고 간신히 믿어왔어. 덜컹이는 마음을 겨우겨우 붙들어 매면서 나는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서른이 되던 날을 기억해. 서른이 되던 2021년 1월 1일의 자정에 나는 조금 울었고 그보다 큰 자유로움을 느꼈어. 자의는 아니었지만 20대의 청춘을 마무리 짓고 30대의 청춘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왠지 용기가 되어주었어. 드디어 한 문단에 점을 찍어 마무리한 느낌이었다면 이해할까? 나는 그 문단에서 공허하게 엔터만 주구장창 치기도 하고 백스페이스를 자꾸자꾸 눌러 지나온 문장을 버정거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끝이 났으니 시원했나 봐. 눈물이 나더라고.
30대의 새로운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나는 노력해. 그래야 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고자 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생각들에 20대 때보다는 능숙하게 점을 찍어. 그러곤 돌아보지 않으려고 해. 돌아보는 것과 내가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이젠 알았어. 내가 사랑한 것들과 언제라도 작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작별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맘만이 사랑은 아닌 걸 아주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어. 때로는 점을 찍어야 해. 과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