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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Aug 27. 2022

[긴낮짧밤] 여름아 잘 가, 난 씩씩한 가을을 살게

   처서가 지났다.

   절기는 신비롭다. 입춘이 지나면 훈풍이 섞여 들고 입추가 지나면 여름이 조금씩 자취를 감춘다. 처서까지 지나니 일교차가 제법 커서 저녁엔 쌀쌀하다. 언제까지라도 지구의 모든 것을 녹여낼 것 같던 맹렬한 기세의 여름이 한 걸음 물러난 게 느껴진다. 나는 네 개의 계절 중 지금처럼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문턱을 머뭇대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


   가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많은 애는 아니었지만 학교를 좋아했다. 은행과 단풍이 곱게 옷을 갈아입은 골목은 예뻤고 비라도 내리면 물든 이파리가 주단처럼 깔렸다. 높아진 하늘과 시원한 공기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아폴로를 씹고 동네를 쏘다녔다. 가을은 낮이 짧아진 대신 노을이 길었다. 파란 하늘이 주황빛으로, 보랏빛으로 번지면서 모든 것들이 푸르게 보이는 이른바 '푸른 시간'이 되면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집에 가는 길엔 어묵 냄새, 와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운 좋게 용돈이 좀 있는 날엔 어묵과 와플을 번갈아 사 먹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가을을 더더욱 사랑하게 됐는데, 내가 다닌 과는 가을부터 연극제를 준비해서 겨울에 공연을 올렸다. 할 일도 가야 할 약속도 많은 대학생들이 시간을 모아 서툴게 극본을 편집하고 연기를 갈고닦고 무대를 만들어 올리는 과정은 보기 뿌듯했다. 반팔이나 얇은 긴팔을 입고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학교의 외진 강의실에서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을 죽이고 술을 마셔 몸을 덥혔다. 그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뭔가를 완성해냈다고 느꼈다. 그 느낌만 해도 내 학비와 시간은 값어치를 충분히 했다.


   안녕, 여름.

   전술한 모든 아름다운 내용은 가을의 초입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가을이 너무 깊어지면 나는 태도를 바꿔 쓸쓸함을 느꼈다. 겨울이 다가옴을 느꼈기 때문이다. 겨울은 한 해가 꼼짝없이 다 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코트 자락을 쥐고 찬 바람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을 때의 외로움, 훌륭하지 못했던 지난 세 계절의 속상함을 겨울이면 오래오래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고 물으면 대충 여름, 하고 말을 얼버무린다. 어차피 물은 사람도 '여름 끝자락, 가을이 올락 말락 한, 더우면서 추운 것 같기도 한 선선한 때만 좋아해요'의 장황한 답을 원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가을은 일 년 중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의 계절 같다. 봄여름에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날. 학교가 봄여름의 1학기, 가을겨울의 2학기로 나눠져 있는 탓도 있고, 내가 8세부터 27세까지의 긴 시간에 걸쳐 학교에 소속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시작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봄과 가을만 새로운 시작과 기회의 계절이냐고? 그냥 내 강박이다. 1년은 두 개의 큰 기간으로 나뉘고 각 기간은 봄, 가을에만 시작하기 때문이다. 웃긴 말이지만 내게 있어 여름과 겨울은 마무리 짓는 계절이다.


   이번 여름은 특히 힘겨운 마무리의 계절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가 사이로 '적정한' 가격의 이사할 집과 대출을 알아보느라, 이사 일정을 조율하느라 진을 쏙 뺐다. 주 2회 운동 일정 외의 다른 일은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잠을 덜 자고 부지런을 떨어서 나의 서너 배쯤 되는 일정을 소화할 텐데.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텐데. 게으르고 쓸모없어 보이는 내 일상, 전혀 멋지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나의 삶. 무의미한 생각들이 여름 내내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당장 일어나서 열성을 쏟을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너무 괴로워서 울고 싶었다. 눈물은 잘 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눈물을 죽죽 흘렸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흐릿하게나마 '알아간다'는 사실이다. 추리 소설 속 마나님들처럼 한 계절 내내 신경쇠약을 앓았던 나는 '마무리짓는 계절의 나'다. 여름의 나, 겨울의 나는 대개 그런 상태였다. 여름이 끝나면 가을 잠깐 동안은 항상 기분이 좋았다가, 안타깝지만 깊어진 가을부터 겨울까지 다시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리곤 봄이 오면 또 내내 기쁠 것이고 여름의 뙤약볕을 그리워할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모든 사실을 이제 나는 익숙하게 알고 있다.


   가을이 온다. 우울하고 괴로운 여름의 나는 이제 보내줘야 한다. 덜 날카롭고 울적한 겨울을 맞으려면 가을에 고심해두어야 한다. 어떤 모습으로 가을겨울을 보낼지. 봄에 다짐한 것들은 이미 엄청나게 무너지고 망가졌으므로, 새로운 결심과 마음이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노력도 할 수 없다.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몹시 씩씩하게 내가 어때서? 내가 왜 망해? 말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이번 가을겨울의 모토로 정했다. 내가 왜 망해?


   여름아 잘 가. 나는 씩씩한 모토를 들고 씩씩한 가을을 살아낼게. 안녕, 여름. 안녕,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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