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월요일엔 갑작스럽게 배가 아팠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내렸다. 배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우산을 펼 정신도 없어서 비를 맞으며 택시를 잡았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따블, 따따블을 외치면서라도 올라타고 싶었다. 다행히 어플을 통해 따블을 외치지 않고도 잡아탔다. 우산을 갖고도 비에 흠뻑 젖은 몰골을 보고 기사님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어디 아픕니까. 조금요, 괜찮아요. 다행이군요. 기사님은 나는 듯이 쌩쌩 달렸다.
경기도 본가로 가다가 행선지를 마포구로 바꾼 참이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기사님께 말해서 경기도로 방향을 돌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신경질이 났다. 아파 죽겠는데 경기도에 어느 세월에 가. 따져보면 강남에서 마포구로 가나 용인으로 가나 차로 달리는 건 그게 그거였겠지만 경기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내 전셋집에 들어가서 전기장판이나 틀고 눕고 싶었다. 찍소리도 못 낼 만큼 아플 땐 엄마 옆에 있고 싶지만 적당히 아플 땐 엄마가 없는 곳에 있고 싶다. 그냥 좀 조용히 있고 싶었다. 아무도 호들갑 떨지 않는 내 집, 내 숨소리 말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집. 고요함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날이 있고 고요함에 나를 던져 넣고 싶은 날이 있다.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겨 난리였지만 내가 탄 택시는 막힘 없이 달려서 잘 도착했다. 너무 피로했다. 겨우 몸을 씻고 푹 쓰러지듯 누우면서 아까 먹은 불닭볶음면이 문제였나, 저녁을 굶어서 그런가, 하루를 복기하다가 잠들었다. 엄마한테 너무 신경질적이었던 것 같다. 엄마들의 걱정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불가피하게 자식들을 곤두서게 한다.
전기장판 위에서 영화를 한 편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수요일 - 영화 주간의 시작
날이 많이 어두웠다. 비는 오다가 말다가 또 오다가 말다가 했다. 평소엔 생각나지 않던 것들이 꼭 배가 아프면 먹고 싶어 진다. 팝콘을 먹으러 영화관에 갔다. 나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는 것 같다. 팝콘 먹는 김에 영화를 보는 개념이라고 할까.
학교 근처에 살았던 스물다섯부터 스물여섯까지 영화관을 정말 자주 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갔는데, 보통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영화관으로 향했다. 알바하느라 먹지 못한 저녁을 간단히 때울 겸 오징어나 핫도그를 사서 영화를 봤다. 아주 재밌는 영화도 있었고 하품만 연발하다 나오는 즉시 잊어버리는 재미없는 영화도 있었다. 이런저런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 평론가 같은 걸 꿈꾸진 않았다. 좋아하는 것들은 취미의 영역에만 머물렀으면 했다.
수요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냥 그랬지만 미친 듯이 영화를 보아 재끼던 때의 문을 툭, 건드려 연 것 같았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봤다. 최신 개봉작도 옛날 영화도 왕창 봤다. 한 주동안 본 영화 중 최고는 의외로 <불량공주 모모코>였다. 로리타 양장 차림의 소녀 포스터에 기겁해서 기를 쓰고 피해 다니던 영화였고 역시나 일본 영화답게 다소 유치했지만 제대로인 B급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금토일 - 사는 게 만만치 않을 때.
영화를 보는 시간은 좋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스크린 속에서는 이러저러한 큰일이 일어나지만 러닝타임 안에 반드시 해결됐고 나는 영화관을 떠나면 그만이란 게 가뿐했다. 영화 상영 동안엔 엄마 아빠도 싸우지 않았고 비난과 소음을 듣지 않아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 사실을 눈치챘던 십 대 때부터 기분이 나락으로 내려가면 영화로 도망쳤다.
영화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영화 이후의 주인공의 삶은 종종 그렸다. 해피엔딩을 맞은 주인공도 시간이 지나면 불행하지 않았을까. 불행한 엔딩을 맞은 주인공은 언젠가는 행복해졌을까.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필연적으로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되리란 사실은 나를 울적하게도 기쁘게도 만들었다. 중요한 걸 스포 당한 느낌, 그래서 사는 게 더 기대되지 않는 느낌이 더 자주 들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단순한 플롯의 히어로/히로인 영화만 봤다.
플랫폼에 내가 별점을 남긴 영화만 대략 700편이다. 그 적지 않은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영화를 만들거나 평론하고 싶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건, 언젠가는 꼭 소설을 쓸 거라고 생각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내 만만한 도피처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겠고 내 마음을 지면에 펼쳐놓는 게 더 익숙한 탓도 있겠다. 언젠가는 꼭 쓸 수 있을 거라 믿어왔지만 정말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지... 아무 것도 담보할 수 없다.
심지어 이번 주에는 무엇이 살기 만만치 않게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 뭔가 가슴을 턱 틀어막고 있는데 나는 그게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마음이 조각나서 구겨졌을까.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키보드를 타닥이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인생이 영화 보는 것처럼 만만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이렇게 마음이 시끌벅적할 땐 눈물 쏙 빠지게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 진이 빠지게 울고 코를 팽 풀어버리고 가벼워지고 싶다. 하지만 영화 700여 편을 보고 깨달은 사실은, 인생은 영화 한두 편으로 좋은 편이나 나쁜 편으로 내달음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는 거, 만만치 않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