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을 몰랐기에 많이 약속했지
통닭구이 하나에 삼계탕.
원래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 복날이 찾아오면 어릴 때 내 젊은 엄마가 손으로 뜨거운 통닭 살을 발라 소금을 찍어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까지만 회상할 것을 그랬다. 아뿔싸. 기억은 예고 없이 가장 아픈 것을 집어들고 튀어오른다.
기억은 성북동의 누룽지백숙 집을 수면 위로 퍼냈다. 그날 성북구 백숙 집에선 네댓명이 만나기로 했다. 아마 내가 그날 지각을 했던 것 같다. 마을버스 종점에 급하게 내려 달려가니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 없이 언니 왔냐고 진짜 덥지 않냐고 웃으며 맞아줬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메밀전에 누룽지백숙을 시켜먹고, 땀을 뻘뻘 흘리고 대단치도 않을 이야기들을 줄곧 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어디까지 이어져있을지도 모르면서 다음에 또 오자는 둥 일년에 한 번은 오자는 둥 약속 같은 걸 남발해댔다. 바닥 장판이 투박했던 누룽지백숙 집에서. 여대생들의 미래와 희망을 서술하긴 아무래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바로 그 곳에서.
그날과 오늘.
눈동자마저 태울듯이 뜨거웠던 그날의 태양과 무더위에도 넘실댔던 우리의 생기는, 돌이켜보면 다름 아닌 우리의 것이었음에도 잘 믿기지 않는다. 실은 그랬던 우리가 단 몇 년 만에 이렇게 제각각 낡고 다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게 더 맞는 말일 거다. 영원할 것 같던 누군가와 멀어지고 결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던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에 베여 우리는 조금씩 다쳤다. 어느날 보면 그 균열은 생각보다 큰 구멍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걸 영영 메꿀 수 없을 것 같아서 멍해진다.
그럼에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 없는 사실은 떠난 이는 모종의 이유가 있어 떠났고, 생각지 못한 이가 어떠한 이유로 다가온다는 것. 그들의 거취에 관한 이유를 내가 명명백백 이해할 수는 없으나 다가오는 이를 수용하듯 떠난 이의 결정도 존중해야 하리라.
입이 쓰다, 고 끝내야 할 것 같지만 삐그덕대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참 맛있었다. 곁들여 나온 인삼주 한 모금에 닭을 잔뜩 찢어서, 국물에 찹쌀을 가득 말아 올려서 꼿꼿하게 다 먹었다. 어쨌거나 나에겐 내가 남았다. 과거의 잘못과 실수만 곱씹으며 슬프게 살진 않을 테다. 그해 뜨거운 여름날 성북구 누룽지백숙 집에 함께한 친구들 얼굴이 생각난다. 다가올 여름 복날은 반드시 그때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쉽게 약속하고 쉽게 잊는 건 생떼같이 살아갈 날이 무수해 지겹기까지 한 젊은 사람들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쉽게 약속하고 쉽게 이행하는 조금은 집요하고 특이한 친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