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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Dec 06. 2021

[긴낮짧밤] 겨울은 사랑이 많고 쓸쓸해

연말이면 나는 눅눅한 누룽지

   겨울은 쓸쓸해. 

   2021년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 당도했다. 2020년은 코로나의 발발로 많은 행사와 만남이 엎어져서 없는 듯이 지나갔다. 그래서 2021년을 맞을 때 얼떨떨했고 떠나보내기란 더욱 떨떠름하다. 나의 감정과 무관하게 시간을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2021년을 톺아보며 슬슬 정리해야겠다.


   겨울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쓸쓸함이 생각난다. 휘이익하고 바람 우는 소리가 나는 골목, 나뭇잎과 작별하고 꼿꼿하게 서있는 나무둥치 따위를 생각해서일까? 송년회니 크리스마스니 즐거운 것들보다는 마음 한 켠의 눅눅함을 생각하게 된다. 코트 한 자락으로는 견딜 수 없는 찬바람을 온 얼굴로 맞으면서 어둔 거리를 걸을 때면 부쩍 센치해졌다. 눈을 빠득빠득 밟으며 집으로 향할 때마다 길은 매우 적막했고 세상에 꼭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엔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걷다 보면 나를 외롭게 하는 길목은 반드시 끝이 나고 훈기 어린 집에 당도했다. 집 앞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내가 방금 왜 울었지, 생각하다 보면 이유를 몰라 답답하기도 했고 조금 더 울고 싶기도 했다.


   내가 방금 왜 울었지. 어림 잡아 열 번의 겨울을 거치며 계속 생각하다가 답을 내렸다. 겨울은 그냥 그런 계절이라고. 일 년을 지내며 충분히 흘리지 못한 눈물의 연말정산 같은 거라고. 자의식이 그럭저럭 정립된 뒤로 나는 남들 앞에서 울면 안 되고 슬픔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탓에 슬픔과 눈물을 만끽할 시간이 매년 부족했던 것 같다. 슬픔과 눈물도 바람에 우연히 날아든 민들레 홀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건만. 겨울은 매년 쓸쓸하고 눈물 흘리게 하고 나는 그런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은 사랑이 많아.

   겨울은 내가 사랑을 많이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떠들썩하게 이런저런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술잔을 흔들거리면서 마음이 헤풀어진다. 옆에 앉은 친구의 익숙한 버릇, 표정 따위를 보면 새삼스럽게 내가 얘를 왜 좋아했지, 깨닫는다.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 혹은 송년회를 할 때 우리는 고단한 한 해를 버텨낸 우리를 자축하며 말했다. "진짜 수고했다, 짠!" 입버릇처럼 매년 해온 말이지만 어딘가 감미로운 구석이 있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무방비한 마음으로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치고 어깨를 두드리고 웃다 보면 내 안의 거침없는 사랑을 느낀다. 내 인생에 내 마음을 명료히 알았던 순간은 극히 적지만 그런 순간은 늘 또렷했다. 그런 순간만큼은 커다란 감정이, 앞으로의 삶이 두렵지 않다.


   직접 만나지 못해도 마음에 둔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 메세지가 오면 특히 반갑고 용기가 고맙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연락해볼까 싶다가도 괜히 어색해 지워버렸던 메세지들. 나도 좀 더 용기 내서 진작 보낼걸. 머쓱한 후회를 느낄 때가 있다. 후회 뒤에는 고마움과 자주 만날 때의 여러 기억들이 버무려져 따라온다. 내가 지난 일 년을 뭘 하며 보냈는지 자책으로 괴로울 때 그런 메세지로 나는 미소 지었고 그제야 지나는 한 해에 자책을 돌돌 말아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내게 연락해준 다정한 사람들에게 어색함 따위를 핑계 삼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더 다정한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면서. 그렇게 맞는 연말과 연초는 비록 지난 일년 나의 성취가 미진했어도 다 괜찮은 것 같았다.


   연말이 온다. 올해야말로 나는 다정한 연락을 먼저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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