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고 정신 승리하는 일기
어느 날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턱이 아플 정도로 이를 악물기 시작한 건. 아무런 의식 없이 힘을 주는 습관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서, 혹은 작업을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면 턱이 뻣뻣해진 관절통을 호소했다. 턱을 어루만지면서 이런 것 좀 그만해야지, 결심해도 순간뿐. 어느새 나는 다시 턱이 아플 정도로 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다. 하품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딱 소리는 좀 거슬리긴 했지만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딱딱 소리를 asmr처럼 무시하고 입을 벌렸다.
문제로 여겨진 건 약 1년 전부터였다. 한 번씩 턱에서 뭔가 움직이는 느낌과 불쾌한 통증을 느꼈다. 알고 보니 그건 턱 디스크가 있어야 할 곳에서 빠지는 증세였다. 무심히 넘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또 무시하기 시작했다. 점점 잦아졌다. 그래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지 않을 핑계는 여러 개가 구비되어 있다. 시간이 없어서, 병원은 하루 날 잡고 가야 하잖아, 병원 다녀오면 하지 말라는 것들이 이런저런 게 있잖아, 근데 나는 바쁘거든… 정말 병원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무서워서다. 정말 심각한 상황일까 봐. 손이 덜덜 떨리는 돈을 내야 할까 봐. 당연한 사실이지만 병원을 미룰수록 상황은 심각해지고 금액은 로켓을 쏘아 올릴 정도가 된다.
친구랑 커피 마실 시간은 있지만 병원에 갈 시간은 없던, 선택적 바쁨 인간이 병원을 가게 된 이유는 그야말로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탓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물을 마시려는데 입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입을 벌려 보려다가 그리 오래지 않아 포기했다. 이대로 힘을 주어 억지로 벌리면 되돌릴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 생각 뒤를 생쥐처럼 쫓아오던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급히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숙련된 의사가 경쾌한 탁! 타타탁!! 소리를 내며 턱을 원상복귀 시켜줬다. 그럼에도 한동안 무서워서 입을 크게 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 의사가 물었다. 크게 아프진 않았어서, 참을 정돈 아녔어요. 꽤 아팠을 건데. 의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길게 설명했다. 이런저런 표현과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요는 조졌다는 말이다. 그래. 조졌다. 자꾸 이를 앙무는 습관 때문에 턱 디스크가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지르고 저작근은 커진 덩치를 뽐내고 있었다. 젠장. 어쩐지 얼굴이 좀 커 보이는 것 같더라니.
이를 앙다물며 버티는 습관
평소에 건강한 입, 턱, 혀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 줄 아는가? 건강한 사람들은 관심을 두어본 적도 없을 텐데, 나도 요번에 처음 알았다. 턱은 입천장 가운데에 딱 붙어 있어야 하고, 이는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닿지 않게 2~3mm 정도 떠있어야 한다. 윗니 아랫니가 붙은 것만으로도 구강의학적으로는 이를 앙무는 것이라 턱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위아래 이를 떨어뜨리고 있어 보니 매우 어색하다. 근래엔 늘 윗니 아랫니를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잘 때는 의식적으로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으니 스플린트란 걸 맞췄다. 나처럼 이를 악무는 사람들이나 이를 가는 사람들의 습관 교정에 좋다고 한다. 확실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뻐근한 기분이 없어졌다.
스플린트 가격은 70만 원 전후다. 220만 원의 34% 정도밖에 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150여 만원은 어디에 썼는가 궁금할 텐데, 근육 보톡스 3회 분의 가격이다. 좌우 관자놀이 부근과 양쪽 턱, 네 곳에 3회 맞기로 했다. 미용 목적의 턱 근육 보톡스는 얼굴 아래에만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씹는 행위를 할 때 관자놀이 쪽 근육과 턱 근육이 보조를 맞추기 때문에, 턱 근육만 보톡스로 줄여놨을 경우 관자놀이 쪽의 근육과 합을 맞추기 위해 턱 근육이 노오력을 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악물기나 이갈이가 심해진다는데, 그렇게까지 노력할 일이야? 들을수록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네 곳에 정말 따끔하고 욱신거리는 주사를 맞았다. 한 부위에도 서너 곳으로 나눠서 맞았다. 관자놀이는 아프기만 했지만 턱은 신기하게도 평소에 뻐근하고 얼얼하던 곳들에 주삿바늘이 파고들었다. 보톡스가 몸으로 들어오는 불쾌한 이물감은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2회분을 추가로 결제해 버렸다. 내 잘못된 습관에 대한 업보다. 왜 이런 습관이 들었는지 잘 생각해 보았다. 이를 악무는 건 내가 견디는 방식이었다.
공부를 해야 할 때, 일을 할 때, 작업을 할 때… 집중해서 견뎌야 할 때. 집중해서 견뎌야 하는 것이 좋을 리는 만무하다. 대부분 싫은 것을 우리는 ‘견뎌낸다’고 말한다. 싫은 것. 싫지만 해야 하는 것. 언젠가 동생은 나에게 물은 적 있다. 언니는 왜 그렇게 모든 걸 해야 하는 숙제처럼 살아? 숙제 좀 안 해도 돼.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숙제를 이를 갈아가며 했던 건, 숙제를 안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회피했다는 느낌이 싫어서다. 스스로 용서할 만큼 마무리 짓는 게 중요하니까.
회피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괴로움에 밀어 넣는 것과, 적당히 흐린 눈 하고 회피하면서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것 중 어떤 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내 방식이 잘못됐다고 할 건 없다만 썩 권장할 만한 것 같지도 않다. 사는 건 밸런스 게임의 연속인 것 같다. 어쨌든 220만 원을 쓰고 턱의 불편함은 놀라울 정도로 줄어서, 이미 쓴 돈에는 괴로움을 갖지 않기로 했다. 220만 원으로 내 턱관절은 나를 용서하였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