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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Feb 08. 2024

나의 30대는 어떨까 늘 궁금했어

   집에 어른 계시니? 안 계신데요...

   20대에 상상한 30대는 어른이었다. 직업, 친구, 연인, 자차, 자가. 모든 게 안정적이고 말 한마디를 해도 무게감이 뚝뚝 묻어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지갑이 두둑할 줄 알았다. 할 일을 미루지 않을 줄 알았다. 말 끝마다 붙는 상스러운 욕을 끊을 줄 알았다. 영원한 사랑을 만나 오롯이 나의 가족이 만들어질 줄 알았다. 


   오히려 20대보다 불안하다. 당연히 부유해지진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회피하려 몸부림을 친다. 영원한 사랑은 만나지 못했다. 영원한 사랑이란 개념을 생각조차 않는다. 여전히 친구들과는 각종 상스러운 말을 하며 낄낄거린다. 가끔 너무 유치해서 겸연쩍으면 이런 말을 덧붙여준다. "이딴 게 30대?"


   20대 때 만났던 30대 언니 오빠들을 떠올린다. 그때는 30대 언니오빠들이 '언니'나 '오빠'라기보다는 먼 친척 어른 같았다. 가까운 듯 멀었다. 은근한 기대와 존경을 담아 바라봤다. 내 기대 어린 눈빛을 느끼며 그들은 얼마나 곤란했을 것인가. 또 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낌없이 카드를 꺼내 긁어주던 그들은, 어떤 부분의 지출을 줄여 나에게 썼던 것일까.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이상하게 내리사랑의 풍조가 만연했던 그 시절에 살았으므로 나 또한 그 분위기에 젖어 있다. 동생들을 만나면 카드를 꺼내 긁는다. 나눠 내더라도 카드는 내가 긁어야 편하다. 


   카드 긁기에 보다 자유롭고 씀씀이가 커졌을 뿐인 나와 친구들은 많이 순화해서, 아직도 애 같다(우리끼리는 '애새끼'라는 다소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나와 친구들이 정말 좋아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사에서는 누구누구 대리입니다, 목소리를 잔뜩 깔고 전화를 하면서도 집에서는 누가 인터폰으로 "집에 어른 계시니?" 하면 "안 계신데요",라고 말끝을 흐린다는 얘기다. 어릴 때 친해진 사람과는 어릴 때 모습 그대로 대하게 된다. '어릴 때 친해진 사람'에는 부모님도 포함이다. 불리하면 20대보다 더 응석을 부린다. 엄마, 나 이거 해줘. 응애. 


   영원한 것은 없다

   20대와 비교해서 30대에 달라진 것이 있긴 있다. 우선 대개는 대리를 달았다. 건강 문제에 다소 예민해졌고, 머리숱이 줄었다. 다들 살려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자기 이름으로 억 소리 나는 대출을 받는다. 마음먹고 읽으려고 해도 책을 잘 안 읽게 된다. 새로운 인간관계나 사건이 잘 없기 때문에 만나면 회사 얘기, 집 얘기, 대출 얘기, 특히 옛날 얘기를 많이 한다.


   옛날 얘기에는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던 시절에 있었던 이러저러한 사건들도 포함되고,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우리의 찬란한 과거도 포함이다. 우리는 만나서 그때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한다. 지독한 다이어트의 압박에 시달렸지만 알고 보니 우리는 매우 날씬했었다. 못생겼다 생각한 때 실은 찌들지 않은 반짝이는 얼굴이 있었다. 돈 2만 원이 모자라서 말끝을 흐리며 약속을 피한 적이 있고, 누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 때 가속하여 스스로를 무너뜨리던 여러 생각과 감정이 있었다. 생각보다 재미나고 웃긴 일이 많았다.


   30대를 맞으면서, 어쩌면 나보다 영리한 아이들은 그보다 빨리, 20대의 우리를 괴롭히던 것들에서 탈출했다. 무궁히 확장될 것만 같던 우리의 세계가 점차 축소되는 시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고민 또한 덩치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다이어트나 외모에 다소 욕심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예뻐야 한다는 압박보다 균형 어린 삶을 향한 갈구가 더 크다. 2만 원이 없어서 근심스러운 날은 그럭저럭 벗어났다. 누군가 날 싫어하는 일이 여전히 괴롭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잠에 들기 전에 눈물을 흘렸던 심각한 고민거리들이 잊혔다. 혹은 그걸 왜 그렇게 괴로워했나 싶다며 웃는다. 하나도 안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커가는 우리들은 우릴 갉아먹던 것들을 흘려보냈다. 반드시 보내주어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배웠다. 영원한 고민은 없다. 다만 더 괜찮은 사람, 번듯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숙제는 영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붙들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 차이 같았던 몇 해의 차이 또한 덩치를 줄여서 다들 언니동생을 넘어선 친구가 되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 언니에 속하는 애들은 내리사랑을 실천하려고 애들 쓰고 있다. 동생들은 기를 쓰고 언니가 돈을 더 내지 않게 눈을 번뜩인다. 이렇듯 부유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착한 우리는 해를 거듭해도 상스런 말을 붙이며 껄껄 웃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가 영원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면 그건 모르겠다. 다만 만나서 어울릴 때 우리의 모습은 변치 않을 것만 같고 그건 제법 아름다운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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