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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Feb 14. 2024

정말 오랜만에 카페에서 멍을 때렸어

<오늘은 수요일>에 넣을까 [긴낮짧밤]에 넣을까 고민되는 글

   끝없는 강박

   나는 카페를 좋아했어. 커피에 대단한 취향을 가진 건 아니고. 카페에 가는 이유는 커피도 있었지만 그보단 나를 충전하는 시간에 가까웠어. 고칼로리의 크림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입에 물고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으며 카페 안팎의 사람들을 구경했어. 운이 좋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볼 수도 있었지. 책을 읽기도 하고. 카페에서 제일 많이 한 건 ‘멍 때리기’였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반추하고, 몰아치는 부끄러움과 후회를 느꼈어. 아주 간혹 내가 잘한 일도 있었어.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뿌듯한 일도 있었지.


   낭만적인 생각도 많이 했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일생의 한 순간을 뚫어져라 관찰했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겠지, 어쩌면 이런 식으로 내 뺨을 쓸고 간 운명이 많았겠지, 그런 생각들을 했어. 그다음엔 항상 감미로운 감수성이 내 심장을 똑, 똑 물방울처럼 뚫었어. 장소는 대학로, 신촌, 왕십리, 개포동… 다양했지만 명확하게 생각이 나. 순간을 살아야 한단 생각들이었어. 기쁜 순간은 물론이고 짜증 나는 순간도 고맙게 받아 들어야 한다거나, 사람들을 더 다정하게 대해야겠다거나. 잘 지키진 못했어. 결심이란 건 깨부수기 위해 만드는 허술한 모래성에 불과하곤 하니까. 어쨌든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들은 행복했어.


   카페에서 그런 걸 하지 않은 지 참 오래됐어. 대학을 졸업한 뒤엔 카페는 작업장이었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적성 검사 공부를 했어. 다른 얘기긴 하지만 초중고 12년, 대학교 4년(물론 나는 6년…)을 공부하고도 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 않니. 그것도 막상 직장에 들어가면 쓰지 않을 공부를 말이야. 여하튼,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자격증들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미간을 밭고랑처럼 깊이 파며 들여다보는 날의 연속이었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다르진 않았어. 나는 노트북을 켜고, 마우스를 연결하고, usb를 꽂아 파일을 열어 키보드를 타닥거렸어. 아주 공손하게 통화를 하다가 마음속으로 통탄이나 분노를 느끼며 전화를 끊고 신경질적으로 단 것들을 시켜 먹었지. 카페는 철저히 뭔가를 해야 하는 곳이 되어갔어.


   얼마 전에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있었어. 마침 책도 노트북도 없었어. 습관적으로 혼자서 쇼츠와 릴스를 마구잡이로 보다가 핸드폰을 내렸어. 핸드폰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녔어. 그냥 배터리가 없었고 나는 콘센트가 없는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야. 운명이란 건 그런 우스운 방식으로 살그마니 숨어들어. 나는 그제야 생각을 해본 거야. 그러고 보니 혼자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있는 건 얼마만이지? 난 왜 그토록 사랑했던 순간들을 즐기지 않게 된 거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어. 사냥꾼에 쫓기는 토끼처럼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단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맘먹고 즐겨

   나는 걸음이 정말 빠르거든. 다들 나와 걷다가 머지않아 급한 일이 있냐고들 묻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늦춰. 같이 걷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그 습관은 잘 고쳐지지가 않네. 그것도 아마 내 급한 성격이나 강박과 관련이 있을 거야. 생각에 골몰할수록 걸음은 점점 빨라져서, 혼자 걷다 보면 숨이 헉헉 차오를 때가 있단다. 예전에는 임박한 일정이 없는데도 시계를 계속 들여다봤어.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시계(?)를 들고 다니면서도 손목시계를 빼놓고 나가는 적이 없었지. 시간을 확인하면 뭘 했느냐고? 그냥 손목을 다시 내렸어. 그게 다야.


   가끔 그런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시계 토끼 같았어. 계속 시계를 보고 급해, 시간이 없어,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걔 있잖아. 그 토끼가 뭘 하는진 아무도 모르지만 혼자 계속 조급해하며 돌아다니잖아. 내가 걔가 아닐까 생각했어. 하는 건 없는데 틈만 나면 시계를 보고 뜀박질에 가까운 속도로 걸어 다니는 녀석. 그 토끼는 멍 때리며 느긋하게 걸어본 적이 있을까? 주변 풍경이란 걸 본 적은 있을까 궁금해지네. 그래도 차 마시는 모임엔 용케도 나갔다는 생각도 들어. 하긴 나도 용케 친구들이랑 커피는 많이 마셨다.


   아마 계속 시계를 쳐다보는 내 행동이 친구들의 마음을 덩달아 불안케 만들기도 했을 거야. 친구들이 말은 안 했어도. 가끔 친구들은 에둘러 말해줬어. 진정 좀 해, 누가 쫓아와? 그러게 말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달렸어. 종종 명언에 이런 표현이 등장해. 멈추지 말라, 뛰어라, 일어나라… 멈추지 않는 게 꼭 앞으로 나아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는 늘 뛰고 있었지만 캣휠을 돌리는 것처럼 제자리였어. 어쩌면 크게 빙 돌아 후퇴했을 수도 있고. 누가 알겠어.


   토끼를 정말 좋아해. 두 마리의 토끼를 키우고 있어. 어릴 때도 토끼 캐릭터들의 스티커나 지우개를 산더미처럼 모았지. 아까워서 글씨 위에 문대지도 못한 싸구려 고무지우개들은 어디로 가버렸지? 이사할 때 쓰레기 봉지에 아무렇게나 넣어져 소각장에서 마지막을 맞이했겠지. 그랬기를 바라. 죄 없는 어느 바다거북의 내장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기를. 토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차치하고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를 만난다면 앞발을 동그랗게 모아 쥐고 말해주고 싶었어. 이봐, 그렇게 급할 필요 없잖아. 뜨거운 차를 좀 천천히 마시도록 해. 말도 좀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말이야.


    그 토끼에게 하고픈 말은 어쩌면 자의식을 향한 투사일 수도 있겠네. 이봐, 누가 쫓아오나? 급할 게 뭐 있니.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자고. 여유는 넉넉한 시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넉넉한 마음에서 오는 거야. 지금의 내 생각은 그래. 그 생각은 내일이 되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즐겁고자 마음먹어야 한다고 봐. 불행과 다르지 않아. 불행하고자 마음먹고선 엄마의 다정한 말씨에서도 끝없이 불행을 찾아내서 대거리했던 수많은 어제가 생각나.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어. 쫓기거나 고립되지 않기로 했어. 되도록 같이 걷는 사람을 위해 천천히 걸으려고 뇌에 힘을 꽉 주고 있어.


   아참, 요즘은 손목시계를 끌러놓고 다녀. 좋은 징조인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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