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헬스 일기
데드리프트는 이것저것 신경써야 해요
데드리프트는 엉거주춤 앉은 자세에서 시작한다. 바벨을 들면서 엉덩이를 앞으로 보내며 일어났다가, 다시 엉거주춤 앉는 운동이다. 바벨은 몸에 최대한 붙여야 한다. 몸을 곧추 세웠을 때는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쥐어짜야 한다. 바벨을 내리면서 다시 엉거주춤 앉을 때는 허리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겨드랑이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겨드랑이에서 이어지는 광배에 힘을 잘 주지 못하면 허리가 아프다. 이해한 대로 적다 보니 간지, 아니 본새 나는 설명이 어려움을 양해해 주시길.
나는 데드리프트를 80kg 정도 다룬다. 여성 기준으로 체중의 1.6~1.7 배 이상이면 ‘쫌 하네?’에 속한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데드리프트는 ‘좀 하는’ 사람인 셈인데, 데드리프트가 쉽지는 않다. 특히 나는 발바닥을 쓰는 데 어려움이 많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꽉 움켜쥐는 감각, 몸을 곧추 세우면서 발 앞코를 지그시 눌러놓는 느낌을 종종 잃어버린다. 후천적으로 발의 아치가 무너졌던 터라 더 그렇다고 한다. 내가 데드리프트를 할 때 트레이너에게 듣는 잔소리(?)의 8할은 “발바닥! 발바닥! 앞 꽉 눌러!!”다. 트레이너는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준다. 발바닥을 잘 누르면 신기할 정도로 바벨이 몸에 딱 붙어 올라오는 걸 알 수 있다.
주로 발바닥 이야기만 들어서, 발바닥 문제만 없으면 (근데 발바닥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발바닥 게슈탈트 붕괴올 것 같아요 발바닥닥다라닥..) 데드리프트를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트레이너가 진지한 얼굴로 새로운 문제를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발 앞코를 누르는 것에 집착하면서부터 중심을 너무 앞에 실어놓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데드리프트를 하고 다음날 무릎이 조금 아팠다. 통증이 심각하거나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지만 그게 정상적인 근육통의 범위는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바벨을 움켜쥐고 올라올 준비를 하는 내게 트레이너는 무게를 더 뒤쪽에 실으라고 주문했다. 순간적으로 뒤꿈치에 실릴 정도로 무게 중심을 옮기세요! 그래요, 거기서 들기 시작해요! 트레이너가 말한 ‘거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뒤축이었다. 나는 왠지 겁을 잔뜩 먹었다. 바벨을 쥐었던 손을 풀었다. PT를 진행한 이래 처음 있었던 일이다. 트레이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슨 문제 있냐고 물었다. 그게요… 아까 거기서 바벨을 들려고 하면 뒤로 넘어질까 봐 못하겠어요. 80kg 바벨을 들고 뒤로 넘어가는 일은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트레이너는 웃었다. 그럼 우선 조금만 보내봅시다.
나를 신뢰하기
중심을 뒤에 실었다. 수백 번도 더 했던 데드리프트지만 생경했다. 처음부터 다시 데드리프트를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약간만 중심축을 이동한 것인데도 넘어질까 봐 심장이 벌렁거렸다. 우선 거기서 시작해요. 시작! 트레이너의 호령과 함께 힘껏 들었다. 신경 쓸 게 많아지면 마음이 급해져서 호흡과 동작이 과하게 빨라진다. 그럴 때는 일부러 속도를 많이 늦추어야 정속에 가깝다. 천천히, 천천히 생각하면서. 한 회를 마치고 앉으면 트레이너는 뒤로, 뒤로!를 외쳤다. 익숙지 않은 범위에서 힘을 쓰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칭찬에 박한 나의 트레이너는 잘했어요, 거듭 말하면서 영상을 보여줬다. 어쩐 일로 이렇게 칭찬을 하는가 했더니 정말로 잘했더라고. 사람의 신기한 점은 아주 작은 반복을 통해서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세트의 시작에는 당황하고 어정쩡한 나의 모습이 있었다. 영상의 끝으로 갈수록 침착하게, 그리고 트레이너가 요구했던 ‘거기’에 가깝게 무게 중심을 옮겨서 바벨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나는 쑥스러움도 잊고 와, 진짜 잘했다!, 말해버리고 있었다.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본인이 봐도 잘했죠? 물어왔다. 막상 해보니까 어때요, 뒤로 안 넘어가죠?라고도 했다. 그런데 또 해보라고 하면 혼자서는 이렇게 못할 것 같은데요. 혼자서는 나자빠질 것 같아요.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안 넘어집니다. 방금도 안 넘어졌잖아요. 스스로 믿고 맡겨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원판을 갈아 끼우면서 트레이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다. 멋져 보이려고 하는 말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말들이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아니면 그의 담백한 말에 내가 너무 과한 해석을 아전인수격으로 갖다 붙이곤 하는 걸까. 어쨌든 그가 하는 여러 말에서 파생된 생각을 통해 이 브런치 연재 시리즈를 지켜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넘어지지 않고 완벽한 데드리프트를 성공했다.
혼자서도 안 넘어질 수 있을까? 그와 PT를 진행한 뒤로 혼자 데드리프트를 하는 적이 잘 없어서, 혼자서도 안 넘어지는지 시험해보진 못했다. 낙상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어물정거리게 한다. 회피할까, 말까. 나는 도망이나 회피에 예민하다. 언제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번 길을 벗어난다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봐 도망치는 쪽보다 그 자리에서 견디는 쪽을 택해왔지만 그게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거나 호방함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도망치는 것 또한 도망치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다. 나는 늘 한 발을 걸쳐놨다. 완전히 도망치지도 직면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만큼만 꽁지를 뺐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내 입으로 절대로 하지 않는 말이 있다. 나 열심히 살았어 같은 말. 그런 건 반쪽짜리 도망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다만 무게 중심을 뒤로 보냈을 때도 내 엉덩이와 다리는 생각보다 견고히 버텨서 바벨과 내 상체를 들었다. 열심히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데드리프트를 했어. 그것만은 신용해도 좋을 말입니다. 앞으로도 다리와 엉덩이를 신뢰하고 몸을 맡겨도 되겠지요. 하다 보면 언젠가 내 다리 이상으로 스스로의 열심을 신용해 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