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소중하지
육회를 먹고
지난주 금요일에 B, F와 만났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우리는 어어, 어디 가지, 어디 가지, 카톡에서 무의미한 말풍선을 몇 번 보냈다. 망설임 끝에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커피 마시고 육비 먹자 육비! 내 카톡에 B가 육비가 뭐냐고 물었다. 육회비빔밥이요. B는 이렇게 답장했다. 누가 그걸 그렇게 줄여 말하나요. 다들 이렇게 말하지 않나? 아니었다. 나만 줄여 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별다줄…
카페에서 단호박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면서 노닥거리다가 육회를 먹으러 갔다. 육회비빔밥, 계란 노른자가 얹어 나오는 육회, 오징어 파전을 시켜서 먹었다. 우린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오십 번쯤 떨면서 별 쓸모없는 말을 했다. 쓸모없는 말은 자리를 옮겨서도 이어졌다.
해가 길어져서 일곱 시가 넘은 시간에도 거리는 아직 밝았다. 해가 쨍쨍할 때 시작된 아무 말은 하늘이 푸르스름해질 때에야 그쳤다. 나는 B, S와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다. 안녕, 안녕. 손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갈 길로 나뉘어 걸었다. 헤어지자마자 다음엔 또 언제 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서로 너무 바빠서 만나려면 아주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나는 이 친구들이 너무 좋아. 콧노래를 룰루 부르며 정류장으로 걸었다.
우유를 사고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서 샤워를 마친 참이었다. 엄마가 너 많이 바쁘니? 했다. 뭔가 제안하고 싶은데 내가 피곤할까 봐 참는 눈치였다. 왜애, 뭔데. 그랬더니 엄마는 우유를 사러 가야 한다고 한다. 샤워도 마쳤고 잠옷도 입었지만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엄마랑 슈퍼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엄마랑 슈퍼로 가는 길에 동네의 작은 옷집을 몇 개 구경하고 이 옷은 이렇니 저 옷은 저렇니 수다를 떨었다. 막상 슈퍼에 도착하니 엄마는 내가 바쁘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우유 하나를 집어 황급히 떠나려고 했다. 우유 옆에 있던 요거트를 하나 집었다. 엄마, 나 이거 사주라. 엄마는 두 개 사라고 했다. 그래서 두 개를 집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웬 차가 아슬하게 우리를 지나갔다. 엄마는 젊은 나보다 빠르게 반응하면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곤 빠르게 두 마디를 했다. 미친놈. 근데 너 운동 좀 했구나? 두 문장이 너무 격이 다른 문장이라 웃겼다. 우리 엄마도 참 아무 말이나 잘해, 막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도 깔깔 웃었다.
오랜만에 엄마랑 웃고 걸어본 것 같다. 엄마와 나에게, 앞으로 걱정 없이 아픈 사람도 없이 웃고 걸을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이제 더 이상 엄마, 나중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다.
어울리는 즐거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아마 그때는 여러 일로 멘탈이 안 좋은 게 컸을 것이고, 사람들이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풀 죽은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는 이상한 말이다. 왜 친구들을, 가족들을 건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가족과 친구들은 최소 5년 이상씩 나를 봐왔다. 내 거지 같은 면을 훤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관계를 맞대온 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후 저 유별난 새끼 또 지랄이네, 하고 넘어갈 여유가 그들에겐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니까 그런 이유들이 어떻게 보면 그들이 나를 진짜로 좋아하는 무언가인 셈이다.
사람이 너무 괴롭고 지친다고 말했을 때, B는 말해줬다. 어떤 작가의 일기를 보면 사람들이 싫다고 잔뜩 써놓곤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함께 하는 즐거움‘이라는 말을 썼다고. 아마 너도 그럴 거라고. B의 말은 맞았다. 몇 년조차 아닌 단 몇 주만에, 나는 사람들과 말과 웃음을 나누는 게 다시 행복해졌다. B가, 엄마가, 내 마음을 건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