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베이글에 커피
요즘 하루의 일과는 커피빈에서 시작한다. 커피빈의 쌀 블루베리 베이글을 먹고 헤이즐넛 시럽이 들어간 아이스 커피를 마신다. 오븐에 바삭하게 데워진 블루베리가 콕콕 박힌 쌀 베이글. 밀가루 베이글보단 성긴 식감이 마음에 든다. 오래오래 베이글을 씹고 시럽 맛이 달달하게 혀에 감기는 커피를 쪼록.
시험 공부를 시작한 뒤로 아침은 늘 조급했다. 빨리, 남들보다 빨리. 아니, 최소한 남들만큼 빨리. 일과를 최대한 이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식사도 거르고 빈속에 커피를 들이부으며 펜을 쥐고 책상에 앉았다. 누가 길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걸으며 내 진로를 방해하면 화가 났다. 빨리 가야 하는데. 고작해야 10초 남짓에 불과했을 시간을 가지고 화를 눌러 참았다.
그렇게 해서 아침에 정말 많은 걸 해내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러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다. 몸이 안 좋아졌고, 그보다 멘탈이 더 안 좋아졌다. 세 번에 한 번 꼴로 독서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찼다. 덥지 않은데 땀도 같이 났다. 공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엄습하는 불안의 크기를 생각하는 적이 더 많아지면서, 나는 아침에 서두르기를 그만두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 그것도 최선이야.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믿는 척하면서 아침에 카페로 온다. 절대 챙기지 않던 아침 식사를 챙긴다. 베이글을 일부러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킨다. 많이 씹는 게 싫어서 베이글은 입에도 대지 않던 나였다. 조급한 기분도 눌러 삼킨다. 어차피 아침에 이렇게 나를 진정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다음엔, 걷기
이렇게 아침 식사를 하면 책을 몇 장 읽는다. 소설이나, 요즘 새롭게 읽기 시작한 법구경 관련 책이나. 일부러 공부와 관련 없는 책으로 읽는다. 예전에 어디에서 봤는데, 줄글을 읽는 것이 생각보다 스트레스 완화에 크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창밖을 보며 나머지 커피를 쪼롭 마신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지치고 초조한 걸음을 구경한다. 가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그가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눈을 재빨리 돌린다. 저 사람은 속으로 내가 팔자 좋은 백수라고 생각하려나? 어쨌든 반은 맞는 얘기지, 뭐.
이제 나가서 조금 걷는다. 불안한 마음을 걷기로 풀었더니 지난 일주일은 거의 깨어있는 내내 걸었다. 어플로 확인해 보니 하루에 삼만 보씩 걸었다. 미친 거 아닌가? 어쩐지 바지춤이 다 한 움큼씩 남는다. 길고 통이 큰 청바지는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드레스 자락 잡듯이 잡고 걸어야 할 정도로 홀쭉해졌다. 역시 다이어트는 유산소가 짱인가 봐. 나는 다이어트를 한 건 아녔지만. 마음의 불안은 다이어트가 되었을까.
하루 3만 보 전후로 약 9일을 걷고 나니 몸의 기운이 빠졌다. 기운이 빠지면서 힘도 좀 빠졌다. 그러면서 마음은 왠지 좀 가벼워졌다. 내 인생은 2024년 여름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먹고살 일은 이 시험이 아니더라도 많다고… 측근들에게 장난으로 요즘 그런 말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해외 농장에서 코코넛 따고 있다고 해도 놀라지들 말어. 불안은 꼿꼿하게 서있으려고 할 때 더 심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 나는 그저 떠나고 싶을 뿐이던가.
베이글도 먹었고 커피도 한 쪼릅!만큼 남았다. 나가야지. 천천히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