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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Jun 19. 2024

충동적으로 공항에 갔다

   출국 아니고 외출

   답답한 날이었다. 시원~하고 살맛 나는 날이 있듯이 유독 밥맛 없는 날이 있는데, 이런 날에 나는 많이 걷는다. 걷다 보면 3만 보를 걷는 날도 있고 그렇다. 거의 깨어있는 내내 걸어 다니면 하루에도 3만 보를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걷는 것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어디 먼 곳을 좀 다녀오고 싶었다. 대전, 부산, 제주도, 거제 따위를 늘어놨다. 그리고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일정은 전혀 없었다. 사실 여권이 수중에 있었다면 일본으로 무작정 떠났을 수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권은 수중에 없었고 덕분에 나는 인천공항 마실 정도로 싸게 막을 수 있었다. 출국이나 환송 목적 없이 덜렁 인천공항에 가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는 길에 펼쳐진 바다나 하늘, 필시 무인도일 섬들은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다. 공항에서는 에어팟을 뺐다. 아, 공항 소음. 정말 그리웠어.


   마지막으로 출국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대만 가오슝을 떠나면서, 그리고 돌아오면서 바스러졌던 마음들이 새삼스러웠다. 그때도 쉼을 다짐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맨날 쉼에 대해 입만 살아서 떠든다. 이 정도면 쉼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좀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그런데 방법을! 모르지!


   배가 너무 고파서 우선 밥을 먹기로 했다. 출국장으로 넘어가지 않고도 고를 수 있는 메뉴는 생각보다 많았다. 넓게 분포된 푸드코트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식당만 어림잡아 열댓 개가 되는 것 같았고 한참을 신중히 고른 끝에 나는 순두부찌개를 골랐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게 순두부지만 또 공항에 목적 없이 와서 먹는 순두부찌개는 특별하지 않은가. 옛날에 공항에서 먹는 밥은 엄청 비싸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서, 유난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떠남과 돌아옴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이 즐거운 까닭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말을 조금만 뒤틀어 보면,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떠날 수 있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여권만 있었더라면 성사되었을 갑작스러운 떠남에 대해 생각했다. 여권과 카드만 덜렁 들고 짐도 없이 타국에 가버렸다면 어땠을까?


   어떻긴, 다들 황당해하겠지. 사람들의 황당해하는 반응에 왠지 즐거워지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전에 누가 그랬다. 혜윤이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장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러 공항에 있다고 해도 자긴 그렇게 놀라지 않을 거라고. 그리곤 기껏 지구 반대편에 갔다가 다다음날 한국에 들어와서 기념품 나눠줄 것 같단 우스갯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남이 나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 중에 손에 꼽는 재밌는 말이다.


   그 말이 재미난 이유는 이 말을 한 사람이 나의 변덕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맨날 자유 타령 여행 타령을 하면서도 해외여행을 짧게 다녀오는 이유다. 당장 새롭고 신기해서 행복해 죽을 것 같다가도 나흘 정도 지나면 새로울 것도 없고 지루해진다. 이제 별로 새로운 게 없어, 혹은 궁금하지 않아,라는 기분이 들면 급격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그런 애였다.


   해외에서 며칠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평생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한국으로 가는 길이 설레고 재밌었다. 비행기가 내륙으로 들어가는 인천 앞바다와 자잘한 섬의 풍경은 언제나 새로웠다. 낯섦을 찾아 떠났던 여행길의 종착점은 언제나 돌아오는 길의 새로움이었다. 한국 바다에 인천에 이런 섬이 있었나? 저런 다리가 있었나? 아, 푸르러...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또 떠남과 새로움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공항 라운지에 한참 앉아 있었다. 마음이 좀 정리됐다. 인천공항으로 외출 다녀오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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