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아

by 밈혜윤

모르겠어

오랜만에 S와 시간을 보냈다. S는 일이 너무 바빴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는 애였다.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도리어 S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S와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S를 자괴감에 빠지게 할까 봐 물러나 있던 시간이 지나간 계절처럼 마음에 걸려 있다. S를 위해 비켜나 있던 시간이 때로는 S를 외롭게 하기도 했을까? 아니다. S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S는 작은 행동으로 타인의 마음을 의심하는, 나 같은 ‘하여자’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S는 해쓱해져 있었다. S는 모르겠어, 모르겠어, 되풀이했다. S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자신이 무얼 하는지 확신이 가득해 보였던 아이였는데.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방향을 가르쳐주던 아이였는데. 나는 S에게 답을 준 적도 없고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냥 치킨을 씹으며 들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다만 같이 있었다. 무슨 위로 한 마디를 못하냐고,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치킨을 입에서 굴렸다. 파우더를 입힌 치킨은 알싸했다. 다음날 우리는 사이좋게 배탈이 났다. 치킨이 생각보다 더럽게 매웠나 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아

S는 내일을 생각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오늘로써 모든 게 끝났으면,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의 경중을 나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나는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루기로 결심했다. 아주 가벼운 농담처럼 말하고 있어도 내 쪽에서 무겁게 다루어 말해도 괜찮다는 것, 아니 때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때때로 나는 비겁하지만 가끔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S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아. 살아있기만 해도 괜찮아.


S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말이 없었다. 아마 같은 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짚어볼 수 있는 비슷한 슬픔과 비워둔 마음 한 구석을 생각했을 것이다. S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았을 테고, 내가 어떤 처절한 마음으로 S에게 간청하고 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낯간지러운 표현에 익숙하지 않지만 한 마디의 용기가 S를, 혹은 다른 친구들을 더 살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수십 수백 번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S가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다음날 일찍 출근해서 또 귀가 아프도록 통화를 하고 일을 해야 할 S를 먼저 집으로 보냈다. 아주 뜨거웠던 낮과 달리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밤 바람을 맞으면서, 왜 S가 아주 힘들어지기 전에는 S에게 성큼 다가서지 않고 떨어져 있었는지 생각했다. S는 바쁘니까? S는 당장 내가 엄청 연락하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지난 시간의 마음이 무어라 말하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달라졌다 믿으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 같기도.


어쨌든 S가 힘들다고 말해주어서 다행이라고, 이 기회를 바탕으로 S에게 딱 붙어서 지내야겠다고… 날벌레를 쫓으며 역으로 걸었다. 다음엔 그 근처에서 망고 빙수를 사 먹여야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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